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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묘링 Aug 13. 2021

아이스크림이 주식인 자식

그게 밥이냐

고등학생 신분일 때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석식을 먹은 후 친구들과 베라(31가지 아이스크림)로 달려갔다. 넷이서 주문한 아이스크림은 하프갤런 2개. 2인 1프갤런. 앉은자리에서 남김없이 다 먹고도 아쉬워했다. "정말 드시고 가시는 거예요?"  "네". 이들이 하프갤런 2개를 먹을 수 있을까란 의문이 담긴 직원의 질문과 '왜 못 먹어' 란 확신이 담긴 우리의 대화가 오고 갔다. 


밥스크림


대학생활을 타지에서 하게 되면서 아이스크림은 간식이 아닌 주식이 되었다. 밥을 챙겨 먹기보다 아이스크림을 먹는 게 더 행복했다. 당시 외할머니 집에 신세를 지던 상황이었고 외진 시골마을이었던 터라 편의시설이 없었다. 뭔가를 사 먹으려면 무조건 버스를 타고 나가야 했다. 그래서 더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에 끌렸을지도 모른다. 겨울에 먹는 아이스크림은 여름보다 더 매력적이다. 추워서 떨리는 몸 위에 두꺼운 담요 하나 두른 후 끊임없이 먹는 그 맛이란.. 중독이다. 


식사 때면 동기들과 학교 후문 식당가로 향했다. 내 손엔 그라시아 쿠앤크. 동기들은 밥을 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북적이는 피크타임이면 식당으로 향하기보단 강의실에서 먹었다. 사장님들에게 피해를 줄 순 없으니. 아침, 점심, 저녁 시간을 정해서 먹었다기 보단 그냥 먹고 싶으면 먹었다. 냉동실엔 아이스크림 비는 날이 없었다. 밥은 소중하니까. 


앉은자리에서 바 아이스크림 15개 이상은 기본으로 먹어치웠고 베라 패밀리(아이스크림 사이즈, 이름처럼 4인 이상 가족이 먹을 수 있는 양이다. 맛은 5가지를 고를 수 있다.)를 앉은자리에서 다 먹었다. 그렇게 먹다 보니 경제적 빈곤함이 찾아왔다. 눈물을 머금고 베라 먹는 빈도를 줄였다. 먹고 싶으면 새벽에도 먹었다. 살은 계속 빠져갔다. 


졸업 후 본가로 돌아와서도 이 식습관은 계속 유지되었다. 밥 대신 아이스크림. 밥 스크림. 그렇게 탄수화물을 좋아하던 자식이 아이스크림을 밥이라며 먹고 있다. 기가 찬다. 아무리 쓴소리를 해도 그걸 들으면서 아이스크림을 퍼먹고 있다. 포기했고 포기당했다. 


지금 현재는 건강을 위해 많이 참고 있지만 여전히 아이스크림을 사랑한다. 아이스크림은 주식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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