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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묘링 Aug 07. 2021

불편한 엄마

불편한 사이

엄마와 딸은 베프 같은 존재란 이야기가 있다. 그를 증명하듯 함께 쇼핑하고 밥 먹고 산책하는 한마디로 데이트하는 모녀를 각종 미디어와 sns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팔짱을 끼고 손을 잡은 모습까지. 이는 어느 정도 성향이 비슷한 모녀 사이에 적용되는 게 틀림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엄마와 불편한 사이다. 함께 있으면 엉덩이가 들썩일 만큼


성향은 중요하다.


남녀, 인간관계를 넘어 부모 자식 사이에서 성향은 큰 영향을 미친다. 성향은 기질, 성질이란 말로 쓰이기도 한다. 평소 사용하는 어투나 행동을 통해 파악되는 성향, 표현하자면 그녀는 불도저 나는 지랄 맞은 개복치다. 문득 이전 글에 언급되었던 '지랄 맞은 게 누굴 닮았나' 하던 부모님의 말이 생각난다. (그녀를 닮은 게 아닐까..) 그녀는 대부분의 일에 대체로 크게 반응한다. 높은 언성과 거친 말투가 기본으로 장착되어있달까. 사회생활하는 그녀의 말투는 정반대다. 조곤조곤하고 안정된 톤으로 대화를 이어나간다. 다시 말해 가족 구성원에겐 불도저 나가면 유모차란 거다. 그렇게 차분할 수 없다. 이를 목격한 후 적잖이 충격받았던 기억이 난다. '가족이란 이유로 편하게 대할 권리가 주어지는 건 아니다.' '편할수록 더 예의를 지켜야 한다.' 란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그녀는 불편한 존재로 다가왔다. 지랄 맞은 개복치는 많은 대미지를 입었고 쉬이 곁을 내어줄 수 없었다.


그래도 엄마니까란 이유로 살가운 딸처럼 대해보려 노력하기도 했다. 팔짱 끼고 산책하기를 시도했다. 스킨십을 좋아하지 않는 단 이유로 내팽개쳐졌다. 여름엔 더워서, 겨울엔 옷이 두꺼워서가 그 이유였다. 귀찮게 하지 말란 이유는 덤이었다. 나가서 같이 밥 먹기. 몇 번 시도해봤지만 가는 길부터 고난의 연속이었다. 대중교통으로 이동시 멀리 떨어져 앉기. 밥 먹을 때 아무 말 안 하기. 나도 모르는 조용히 먹고 돌아오기란 룰이 있었던 걸까. 영화 보러 가기. 시간 없단 이유로 거절. 다른 성향의 두 사람이 어울리기 위해선 서로가 노력해야 함을 깨달았다. 이를 느낄 수 있도록 삐걱거려준 그녀에게 감사의 마음이 들기도 한다. 


부모와 자식 사이도 편하지 않을 수 있다. 당연히 편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불편한 상태로 지내는 게 불편하지 않다. 선을 지키며 대화할 수 있고, 필요한 말을 끝으로 대화를 끝낼 수 있으며 잔소리로 분류되는 문장들은 끊을 순 없지만 그 빈도를 줄일 수 있다. 이렇게 써보니 생각보다 편한 부분이 많다. 그럼에도 그녀와 덜 불편해지고 싶다. 자식의 도리란 메모리카드가 탑재되어 있나 보다. 그녀의 하루는 어땠는지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등 궁금한 게 많아진다. 


자신만을 위해 살다 엄마란 이름을 가진 후 완전히 달라졌을 그녀의 삶을 상상해봤다. 지금보다 아내로서 해내야 할 일들이 많았을 것이다. 자식들은 어리고 배우자는 밤낮없이 일해야 했다. 큰 파도가 밀려오는 느낌이었다. 불편한 관계에서 덜 불편한 사이로 변해보려 한다. 그녀의 일대기를 글로 써보고 싶어 졌다. 그러려면 덜 불편해져야 한다. 글이 이렇게 또 나를 변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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