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에 머무는 빛, 행등(行灯)

by 도간


저녁 빛이 서서히 가라앉을 무렵, 히가시야마(東山)의 뒷골목이나 폰토초(先斗町)의 길고 좁은 골목에 들어서면, 전통 가게 문 앞과 낮게 드리운 처마 아래에 작은 행등(行灯)이 다소곳이 불을 밝히고 있다. 낮에는 거의 눈에 띄지 않던 등이 밤이 되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고, 등 안에서 스며 나온 빛이 골목 바닥을 얇게 적신다.

나무틀에 덧댄, 섬유 결이 살아 있는 일본 종이 와시(和紙)를 통과한 빛은 옅게 풀린 그림자를 길 위에 남기며 공간의 결을 차분히 드러낸다. 직선으로 쏟아지는 빛이 아니라, 한 겹 걸러 나와 가장자리를 부드럽게 풀어낸 빛이어서 가능한 풍경이다.



붉은 아카초칭이 손님을 향해 노골적으로 팔을 흔든다면, 행등의 빛은 한 발 물러선 채 조용히 시선을 붙든다. 행등 안에서 스며 나온 부드러운 빛이 벽과 골목 바닥에 고요히 내려앉고, 눈을 감았다 뜨는 사이 골목이 아스라이 흐트러진다. 작은 불빛 하나로도 골목의 깊이와 사람의 움직임, 밤공기 속에 떠도는 이야기까지 상상하게 만든다.


행등은 밝히기보다 여운을 남기는 등이다. 불꽃은 종이 뒤에 머물고, 한 번 걸러진 빛이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온다. 빛은 스스로를 드러내기보다, 공간과 공간 사이를 잇는다. 빛 속에서는 무엇이 분명해지기보다, 경계가 부드러워진다.



오늘날의 보행 등이나 산책로의 낮은 등도 이와 다르지 않다. 길 가장자리나 발밑에 놓인 조명처럼, 광원은 끝내 앞에 나서지 않는다. 도심의 호텔 객실 복도에서도 이런 빛을 만난다. 천장 안쪽이나 벽면 뒤에 숨은 조명이 바닥을 따라 길게 흐르고, 객실 문 앞만 또렷이 남긴다. 복도는 환해지기보다 잠잠해지고, 발걸음은 자연스레 낮아진다. 불꽃은 LED로 바뀌었지만, 걸음이 이어질 만큼의 밝기만 남긴 채 어둠을 완전히 지우지 않는다. 빛은 길을 잠시 열어 두었다가, 이내 배경으로 물러난다.


이런 빛은 어둠을 밀어내기 위한 조명이라기보다, 어둠과 나란히 놓인다. 더 밝히려는 마음이 아니라, 이 정도의 빛이면 충분하다는 감각이다. 행등의 불빛도 마찬가지다. 밤을 지배하지 않고, 몸을 낮춘다.



행등은 휴대용 랜턴처럼 가볍게 옮길 수 있어, 축제나 행사, 좁은 골목 어디서든 자리를 바꾼다. 처마 아래나 가게 문 앞, 골목 모서리에 놓일 때마다 빛의 높이와 각도도 달라진다. 낮은 위치에서 풀려 나오는 번지는 불빛은 위에서 내려오지 않고, 발치와 벽면을 따라 천천히 퍼진다. 시선은 아래로 향하고, 발걸음도 느려진다. 빛과 그림자가 살짝 흔들리는 순간, 몸도 흐름에 맞춰 반응한다.


행등은 한 곳에 고정되지 않는다. 석등이나 목등과 달리, 필요에 따라 옮겨지며 골목과 사람을 잇는 작은 매개다. 빛은 중심을 주장하지 않고, 잠시 빌려 쓴 자리처럼 공간에 스며 있다가 자리를 비우듯 옮겨 간다. 남는 것은 빛이 아니라, 그 자리를 스친 시간이다.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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