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문방구나 구멍가게에서 곧잘 뽑기 놀이를 했다. 그런 놀이가 유난히 많던 시절이었다. 100원짜리 동전을 넣고 돌리며 무엇이 나올지 설레던 마음. 그 감정과 닮은 순간을 일본의 신사(神社)에서 마주한다. 100엔으로 운세를 점쳐보는 종이 오미쿠지(おみくじ)에는 길과 흉이 적혀 있다. 오미쿠지 점괘를 확인한 뒤 경내의 정해진 곳에 묶어 두는 모습은 이미 익숙한 장면이 되었다. 흉이 나오면 액운을 남겨 두듯 묶고, 길이 나와도 효험을 붙잡고 과한 욕심을 경계하기 위해 묶어 둔다. 좋은 점괘는 챙기고 싶어진다. 반대로 흉한 점괘 앞에서는 떨쳐 버리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든다. 묶는다는 것은 물러나는 게 아니다. 버림이 아니라 흉한 기운을 신사의 경계 안에 봉인하는 일이다.
가방에 달거나 지갑에 넣어 늘 지니고 다닐 수 있도록 만든 작은 부적, 오마모리(お守り) 역시 같은 맥락이다. 교통안전, 학업 성취, 건강, 인연 등 저마다의 바람에 맞는 것을 골라 몸에 지니거나 가방에 단다. 작은 물건에 소망을 담아 신에게 맡긴다. 전해 두고 싶은 마음과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겹쳐, 어떤 이는 종이를 묶어 두고, 어떤 이는 작은 부적을 간직한 채 돌아간다.
신이 인간의 소원을 모두 들어준다는 믿음만 있는 것은 아니다. 히로시마현 구레 미타라이(御手洗)의 덴만신사(天満神社)에 있는 ‘가능문(可能門)’에서는 문을 지날 때 한 가지 소원만 빌어야 한다. 과도한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뜻이다. 문은 소망을 허락하되, 한 번에 하나로 제한한다. 신사는 아니지만, 교토 기요미즈데라(清水寺) 본당 아래의 ‘오토와 폭포(音羽の滝)’도 비슷하다. 세 갈래 물줄기가 흘러내리는데 각각 장수, 학업 성취, 연애운을 상징한다. 물을 한 모금 마시려는 줄이 폭포 아래로 길게 이어진다. 보통은 그중 하나만 골라 마셔야 한다고 알려져 있다. 두 줄기까지는 괜찮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세 줄기를 모두 마시면 욕심을 부린 것으로 여겨 굴러온 복마저 달아난다는 말이 따라붙는다.
신사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에마(絵馬)다. 원래 신에게 말을 바치던 풍습에서 유래했지만, 지금은 나무 판에 소원을 적어 봉납하는 형태로 남아 있다. 에마에 소원을 적는 행위는 오미쿠지나 오마모리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물성으로 바꾸어 신에게 전하는 의례다.
대부분의 에마는 상단이 삼각형으로 솟은 박공지붕을 본뜬 오각형 판이다. 작은 집의 지붕을 잘라낸 듯해, 바람을 담는 그릇으로 오래도록 표준이 되어 왔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 모양은 달라진다. 복어로 유명한 시모노세키(下関)에는 복어 모양의 에마를 내거는 신사가 있고, 교토의 후시미 이나리 대사(伏見稲荷大社)에서는 신의 사자로 여겨지는 여우 얼굴을 본뜬 에마를 볼 수 있다. 같은 소망이라도, 그것을 담는 판은 장소의 상징을 닮는다. 수많은 사람의 기원이 나무 판에 적혀 겹겹이 걸린 모습은, 개인의 바람이 모여 만들어낸 풍경이다.
관광지에서의 심심풀이 점괘처럼 느껴지던 에마가 다른 무게로 다가온 적이 있다. 태평양 전쟁 A급 전범 14명이 합사된 도쿄의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에서 한국어로 쓰인 에마를 발견했을 때, 마음 한편이 편치 않았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언어가 달랐을 뿐인데, 누군가의 소망이 이곳에 어긋난 채 놓여 있다는 느낌이었다. 서로 다른 역사 인식에서 오는 낯섦과 함께, 그곳에 남겨진 글은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불편함으로 남았다.
어릴 적 즐겼던 뽑기 놀이의 설렘은, 운세를 점쳐 본 종이를 묶거나 나무판에 소원을 적는 행위와 닮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좋은 결과를 기대하게 된다. 종이와 나무판이 경내에 하나둘 매달리며 서로의 기원이 겹쳐진다. 사람들이 남긴 흔적이 쌓이는 만큼, 곁에는 귀엽고도 치밀한 상술이 함께 얽혀 있다. 손으로 쓴 마음이 눈에 보이는 형태로 진열된 공간을 지나는 순간, 신사는 기도의 장소이면서 동시에 욕망이 전시되는 장소라는 생각이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