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장보살의 붉은 턱받이, 아이를 향한 기도

by 도간


일본의 골목이나 사찰을 걷다 보면 작은 석상 목에 붉은 턱받이가 걸린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처음 보면 어떤 용도인지 바로 짐작하기 어렵다. 석상은 지장보살, 일본에서는 ‘오지조상(お地蔵さん)’이라 부른다. 목에 턱받이처럼 매달린 작은 천 조각, 오네부쓰마(おねぶつま)는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덧댄 것으로, 떠난 아이를 위로하고 영혼을 기리는 마음이 담긴 표식이다.


이와 맞닿아 있는 신앙이 미즈코 지조(水子地蔵)다. 직역하면 ‘물의 아이 지장’으로, 태어나지 못했거나 유산·사산·낙태 등으로 세상에 나오지 못한 아이를 뜻하는 ‘미즈코(水子)’를 위한 신앙이다. 물이라는 표현에는 아직 세상에 완전히 뿌리내리지 못한, 경계에 머문 생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지장보살은 본래 저승에서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로 알려져 있지만, 일본에서는 역할이 확장되어 어린 생의 영혼을 돌보는 대상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사찰 경내나 길가의 지조상에는 붉은 턱받이가 둘러지는 경우가 많다. 붉은 천은 아이를 향한 기도이자, 부모가 건네는 옷 한 벌과도 같다.



앞치마처럼 보이는 턱받이는 침 흘리는 아이의 옷을 보호하고 코와 입을 닦아주던 작은 천을 본뜬 것으로, 아이를 향한 보살핌을 대신한다. 붉은색은 병과 액운을 막고 생명력과 활기를 상징한다. 드물게 하얀색 턱받이가 걸리기도 하는데, 순수함과 영혼의 안정을 기원한다.



턱받이는 천을 떠서 지장보살 몸에 맞춰 만든다. 뜨개로 만든 것도 있으며, 한 땀 한 땀 부모의 마음과 염원을 얹는 행위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지장보살이 여러 기 서 있는 건, 이곳을 지나간 마음이 쌓였음을 말해준다. 오늘도 누군가는 작은 천을 걸고, 내일 마음을 이어간다. 지장보살에 겹쳐 걸린 턱받이를 보면, 세월을 지나며 겹겹이 쌓인 마음과 바람이, 저마다의 애잔한 사연을 전하는 듯하다.



이나리 신사(稲荷神社)는 쌀과 농업, 풍요와 사업 번창을 관장하는 신을 모시는 신사로, 일본 전역에 수많은 분사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교토의 후시미 이나리타이샤(伏見稲荷大社)로, 붉은 도리이 사이로 여우 석상이 신사의 상징처럼 서 있다. 여우는 사람들의 바람을 신에게 전하는 전령이다



여우 목에도 붉은 천이 걸려 있다. 색과 형태는 지장보살의 턱받이와 닮았지만 의미는 사뭇 다르다. 지장보살의 붉은 천이 떠난 아이를 향한 위로라면, 여우의 붉은 천은 살아 있는 이들의 소망을 실어 나르는 표식이다. 붉은 도리이 사이에서 여우는 서 있고, 목에 걸린 천은 누군가의 바람을 대신 전하고 있다. 풍요와 장사, 생업의 안녕을 비는 마음이 걸린 자리다.



지장보살의 붉은 턱받이가 떠난 아이의 넋을 위로하고 아이의 영혼을 기리는 표식이라면, 아이가 태어난 뒤 건강과 무사 안녕을 바라는 의식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태어난 지 한 달쯤 지나 가족이 신사를 찾아 아이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미야마이리(宮参り)다. 지역 신에게 탄생을 알리고 감사와 안녕을 비는 중요한 의례로, 지금도 많은 가족이 아이를 데리고 신사를 참배한다. 삶과 죽음이라는 서로 다른 방향이지만, 결국 아이를 향한 부모의 마음이다.


한국에서도 아이의 안녕을 기원하는 표식이 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집 앞에 금줄을 쳤는데, 새끼줄로 만들어 남자아이에게는 고추, 여자아이에게는 숯을 달아 아기의 성별을 표시하고 액운을 막았다. 밖의 기운은 여기까지, 발걸음도 조심하라는 무언의 경계이자 아이의 탄생을 축하하고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도 담겨 있었다. 출산 후 일정 기간 외부 출입을 삼가던 풍습과도 맞물려, 외부의 출입과 부정을 막고 새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경계가 눈에 보이게 세워졌다.



턱받이와 금줄은 방향은 달라도 부모의 마음과 염원을 담고 있다. 정성을 들여 천을 걸고, 수고를 들여 한 땀씩 얹었다. 지장보살 앞에는 턱받이가 쌓이고, 한국 집 앞에는 금줄이 걸렸다. 하나는 남아 풍경이 되고, 하나는 사라져 기억이 되지만, 아이를 향한 마음만은 같았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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