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믿음, 장난 같은 손길

by 도간


일본 미츠코시 백화점 정문 앞에는 한 쌍의 사자상이 서 있다. 1914년 도쿄 니혼바시 미츠코시 본점에 처음 설치된 뒤, 지점마다 같은 배치로 놓이며 백화점의 상징 역할을 해 왔다. 사자상은 영국 런던 트라팔가 광장의 넬슨 기념탑 아래 사자상을 모델로 삼은 조각상이다. 나폴레옹 전쟁 승리를 기념해 세워진 조각상이 바다를 건너와, 백화점 입구에서 방문객을 맞이하는 얼굴로 자리했다.

백화점 사자상 발을 쓰다듬으면 행운이 온다고 한다. 어디에도 쓰여 있지 않지만, 발등이 유독 금빛으로 반질거리는 걸 보면, 사람들이 지나가며 한 번씩 손을 올렸던 것이 느껴진다. 손길이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색을 만들었을 것이다.



후쿠오카 다자이후 텐만구 입구에는 황소상(御神牛)이 있다. 한문의 신 스가와라노 미치자네(菅原道真)를 모시는 신사에서, 황소는 미치자네가 각별히 아꼈다고 한다. 미치자네가 세상을 떠나면서 시신을 소가 운구하고, 소가 멈춘 자리에 자신의 무덤을 세워 달라고 부탁했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 전설 속 자리가 지금의 다자이후 텐만구가 되었고, 황소는 신사가 품은 이야기를 온몸으로 담고 있다.

사람들은 황소의 머리나 뿔을 쓰다듬으며 시험 합격과 학업 성취를 기원한다. 몸통을 문지르며 건강을, 배를 만지며 장사의 풍요를 바란다. 어디를 어떻게 만지는지는 금세 알 수 있다. 자주 손이 닿는 부위는 색이 다르게 닳아 있기 때문이다. 황소 앞에서는 사진을 남기기도 하고, 직접 만지기도 한다. 관광객과 신앙인이 구분 없이 오가는 풍경 속에서, 황소상은 다자이후 텐만구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신사 안에는 모두 열한 마리의 황소상이 있다. 전부 찾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따라붙는다. 피식 웃어 넘겼지만, 다자이후 텐만구를 여러 번 찾다 보니 어느 순간 ‘소 찾아 삼만리’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건 소원을 반드시 이루겠다는 신앙이라기보다, 안 하면 찜찜하고 하면 괜히 마음이 놓이는 몸의 버릇이다. 일본의 상징물 터치 문화는 신앙의 문턱을 낮춘 일종의 ‘안심용 치트키’다. 깊이 믿을 필요도 없고, 이벤트에 참여하듯 가볍게 다가가도 어색하지 않다.

이런 장면은 특정 장소에 국한되지 않는다. 도쿄 아사쿠사의 센소지(浅草寺)에서는 본당 앞 큰 향로(常香炉)의 연기를 손으로 끌어와 몸에 얹는다. 머리 쪽으로 모으는 사람도 많다. 가가와현의 고토히라구(金刀比羅宮)에서는 배 모형과 밧줄을 만지며 무사 항해와 상업 번창을 빈다. 오사카의 스미요시타이샤(住吉大社)에서는 ‘오모카루이시(重軽石)’라 불리는 돌을 소원을 떠올린 채 들어본다. 생각보다 가볍게 느껴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상징은 달라도, 손이 먼저 가는 방식은 닮아 있다. 의미를 다 알지 못해도 참여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한국에도 오래전부터 손으로 만지며 소원을 빌던 대상들이 있다. 강원도 강릉 정동진의 바위, 경북 청송 주왕산의 남근석, 제주도의 돌하루방이 그렇다. 돌하루방의 코를 만지면 아들을 낳는다는 설이 널리 알려져 있다. 불임 여성이나 부부는 다산과 아이를 기원하며 찾는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 이야기로만 남고, 만지는 행위가 일반화되어 있지는 않다. 여행 중 우연히 마주치기도 하지만, 배경을 알아야 손이 닿을 수 있다. 내 경험으로는, 손이 움직이기 전에, 설화가 먼저 귀에 닿는다. 전설이나 속설이 공간에 스며 있지 않고, 해설로 전해지며, 체험은 뒤로 밀린다. 그래서 만져보는 행위보다 고개를 끄덕이는 데서 멈추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반면 일본에서는 상업 공간이든 관광지든, 손을 먼저 뻗기 위해 긴 줄이 늘어서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다. 믿음의 깊이를 따지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설명을 듣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저 지나가다 한 번 만지거나 쓰다듬으면 괜히 마음이 놓인다. 가볍게 손을 얹어도, 손끝으로 느껴지는 마음은 각별하다. 이런 행동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비합리적 믿음에 기대어 마음을 안정시키는 방식과 닮았다. 특정 바위나 조형물, 부적(お守り. 오마모리)을 만지고 쓰다듬는 사례는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진위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무사안녕, 재물과 풍요, 건강과 지혜, 시험 합격이나 학업 성취, 사랑과 가정의 화목까지 바라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믿거나 말거나, 한 번 쓰다듬거나 잠시 앞에 서보는 그 순간이 남는다. 장난처럼 얹어도 된다. 어차피 잃을 건 없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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