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의 시간
혹시 산사태라도 났던 게 아닐까. 무너진 바위 더미로 발을 딛으며 생각한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깔딱 고개의 돌무더기는 헛웃음이 날 정도로 험악한 경사도를 자랑했다. 악산이란 본디 그런 것이다. 완만하게 시작해서 오랜 시간 편안한 길을 걸었다면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숨넘어가는 오르막길이 반드시 따른다. 귀에 들리는 건 스틱이 화강암을 내리찍는 건조하고 날카로운 소리와 내가 내뿜는 거친 숨소리뿐. 고강도 근력 운동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느리지만 리듬감 있게 치고 올려야 한다. 한 발짝 옮길 적마다 머릿속으로는 우리말로 풀어낸 반야심경을 읊었다.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온이 공한 것을 비추어 보고 온갖 고통을 건너느니라… 사리자여,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색이니, 감각, 생각, 행동, 의식도 그러하니라… 사리자여, 모든 법의 공한 형태는 생겨나지도 없어지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줄지도 않느니라, 그러므로 공 가운데는 실체가 없고 감각 생각 행동 의식도 없으며, 눈도 귀도 코도 혀도 몸도 의식도 없으며, 색깔도 소리도 향기도 맛도 감촉도 법도 없으며, 눈의 경계도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고, 무명도 무명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없고,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고, 고집멸도도 없으며, 지혜도 얻음도 없느니라…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보리살타는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뒤바뀐 헛된 생각을 멀리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며,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들도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므로 최상의 깨달음을 얻느니라….
나는 지금 이곳에서 육신의 고통을 느끼며 피가 돌고 숨을 쉬는 생물로써 존재함을 느끼는 동시에 나와 나 아닌 것의 구별이 점점 모호해진다. 반야심경이 말하듯 있음과 없음이 다르지 않다면…. 고통을 느끼는 것도, 그것을 생각하는 것도, 발을 떼고 올리는 것도, 그 모두를 인식하는 것도 전부 공하다. 공(空)은 비어 있지만 없음(無)과는 다르다….
왜? 나는 왜 이 깊은 산중에 제 발로 기어들어 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지?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산을 오르는 거지? 덧없는 자문도 힘에 적당히 부칠 때나 가능한 일이다. 숨이 가빠질수록, 끈질긴 육신의 고통이 임계점을 넘으면 어느 순간 고요해진다. 화가 나지도 기쁘지도 않은 상태로, 어스름한 여명 아래 회색빛의 거대하고 잔잔한 호수를 들여다보는 것과 같이. 철근 두 개로 고정해 둔 돌을 밟고 올라 바위틈에 뿌리내리고 가지를 드리운 소나무에 눈길이 머문다. 소나무는 그저 그 자리에 서 있다. 그 어떤 희로애락 없이…. 있음과 없음. 그 무엇에도 메이지 않고.
봉정암 널찍한 본당 안에 가부좌를 틀고 앉으니, 불상이 있어야 할 자리에 한쪽 벽을 가득 메운 유리창 너머로 햇살이 한 아름 쏟아져 들어온다. 종교 건축은 그 종교가 따르는 성인의 가르침을 닮았다. 가톨릭 대성당의 첨탑과 높이 자리한 창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초월적인 존재를 드높이며 그 안에 들어온 사람을 엄숙히 압도하고, 이슬람 모스크도 수백 수천 명이 엎드려 절할 수 있는 드넓은 회랑에 소리가 울려 퍼지도록 크고 둥근 돔을 얹는다. 이들은 군중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낮추고 유일신을 받드는 아브라함 계통 종교의 공통점이다. 반면 불교의 공간은 더욱 개인적인 인상을 준다. 절대자가 유일한 힘으로 인간을 고통으로부터 구원해 주리라 믿지 않고, 깨달음은 타인이 아니라 자신의 안으로부터 오는 것이라 가르치기 때문이겠다.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붙잡지 않는다는 문장이 불교의 태도를 말해주듯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법당의 문은 불자가 아닌 나도 잠시 그곳에 머물다 가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창밖으로 흐르는 풍경은 신선 세계의 일부를 옮겨놓은 듯하고, 시간마저 저 아래 속세의 시간과 다르게 흘러간다. 여기까지 오르느라 지친 몸에 주어진 멈춤을 달게 받자. 눈을 감고 잠시 깊은 정적에 기대어본다.
봉정암을 떠난 지 20분도 되지 않아 내 몸과 정신은 또다시 고통과 번뇌에 휘감겼다. 이것은 중생의 법칙이다. 도대체 이 오르막은 언제 끝나는 것이며 길은 왜 자꾸만 좁아지는 것이냐. GPS를 몇 번이나 들여다봐도 터무니없이 짧은 거리인데 어째서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를 않는 것이냐. 부아가 치밀었다. 처음 보는 야생화를 비롯해 고산지대의 식생을 보고 놀라워하기에는 심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여유가 없다. 짜증이 들불처럼 번진다. 종아리에 쓸리는 웃자란 풀들을 스틱으로 거칠게 헤치며 봉정암에서 보충한 샘물을 고스란히 살갗 밖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어느덧 해는 진한 주홍빛으로 무르익었다. 급한 마음과 달리 다리는 따라주지 않고, 기어이 입 밖으로 욕이 튀어나온다. 앞에도 뒤에도 오가는 이 하나 없는 깊은 산속 돌계단에서 홀로 읊조리는 쌍시옷 소리. 바보 같지만, 욕에는 강한 부정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어 등을 밀어줄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는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된다. 뒤늦게 깨닫는다. 진정한 해탈은 봉정암에 이르기 전이 아니라 그다음에 온다고. 허무하게 욕을 곱씹을 힘마저 다 소진하고 기계처럼 다리를 움직인 지 얼마나 지났을까.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렸다. 하다못해 환청까지 들리는가 싶었는데, 빽빽한 나뭇가지 사이로 갈색 지붕 끝머리가 보였다. 아, 마침내. 그 어떤 험준한 길도 결국에는 끝이 나고야 만다. 그것은 산의 법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