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과 바람, 돌과 꽃

산의 시간

by 한현경

대피소 옆자리에는 봉정암 근처에서 마주친 여자가 자리를 받고 들어왔다. 나는 봉정암에 닿기 전에 작은 물줄기를 만나 땀을 닦아내고 있었는데, 그녀는 소리 없이 나타나 내 쪽으로 눈길을 한 번 주고는 빠르게 앞질러 사라졌다. 사뿐한 걸음이었다.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작은 가방 하나만 멘 채로, 평범한 일상복과 운동화 차림이었다. 그 모습은 양손에 쥔 스틱과 몸통보다 큰 배낭, 믿음직한 등산화, 무릎 테이핑까지 감은 나의 본격적인 등산 장비와 극명히 대조되는 바람에 산을 오르는 6시간 남짓 마주친 모든 사람 중에서 유독 기억에 남았더란다. 봉정암에서 다시 만난 그녀는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옆에 가방을 내려놓고는 잠이 든 것인지 명상을 하는 것인지 모르게 그렇게 눈을 감은 채 한참을 가만히 쉬었다. 홀로 큰 산을 오르는 여자가 받는 호기심 어린 관심은 몸소 겪은 것만 생각해도 조금 진저리가 나지만, 나 또한 그녀의 사정이 궁금해지는 건 막을 도리가 없다. 무슨 연유로 저렇게 간소한 행색으로 이 험한 산에 오를 결심이 섰을까? 어쩌면 결심같이 거창한 계기가 아닐 수도 있다. 계절이 되면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돌아와야 할 곳을 찾아온 것일지도 모른다.


라면과 햇반, 참치캔으로 조촐하게 저녁을 준비하고 있으니 구름이 걷히고 대피소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해발 고도 1,450미터에서 맞이하는 해 질 녘, 내설악에 내려앉는 황혼은 습기 가득한 구름에 부옇게 난반사되어 눈에 닿는 모든 곳을 금빛으로 물들인다. 반투명한 장막처럼 겹겹이 드리워진 구름의 바다가 뾰족한 봉우리를 휘감다 흘러가며 점차 그 날카로운 윤곽을 드러냈다. 겸재가 진경산수화에 담아낸 농담의 근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아래쪽에 용의 송곳니처럼 뾰족하게 솟은 암석 봉우리들을 용아장성이라 하고, 그 뒤로 파충류의 등뼈처럼 울퉁불퉁 굽이치는 능선 일대를 공룡능선이라고 부른단다. 그 장엄한 모습과 살벌한 경사는 멀리서 바라만 보아도 아찔한 동시에, 숨 막히도록 아름답기에 도전적인 산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겠지.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 소청 대피소에 도착했을 때는 등산객들 말로 ‘곰탕’이라고 하는, 짙은 구름 속에 파묻혀 시야가 하얗게 가려지면서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상태였는데, 이토록 황홀한 비경을 보여주려고 슬며시 감추고 있었나 보다. 이렇듯 고지대의 풍광은 수시로, 단 몇 분 만에도 모습을 달리한다. 같은 이유로 태양 역시 수십억 년을 같은 경로를 따라 뜨고 지지만 단 한 번도 똑같은 석양을 보여주지 않는다. 시간과 빛, 우연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찰나가 아름다운 이유는 순간의 유한성을 인식하는 주체로서의 인간이 유한하기 때문이리라.


얇은 침낭을 요처럼 깔고 잠을 청했다. 산중의 밤은 빠르게 깊어지므로 저녁을 먹은 뒤에는 일찌감치 자리에 눕는 일만 남는다. 온종일 걷고 오르느라 녹초가 된 몸은 딱딱한 마룻바닥 한 뼘 위에서 온전히 쉴 수 있음에 마냥 감사했다. 일출 산행은 여명이 밝기 전부터 움직여야 한다. 새와 벌레들도 모두 잠든 새벽, 출발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기척을 따라 오전 3시에 눈을 떴다. 의식이 또렷해질수록 전날의 여파로 온몸을 쥐어뜯는 듯한 근육통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다만 저 육중한 가방을 짊어지고 민첩하게 움직일 수는 없을 것 같아 꾀를 냈다. 이곳 대피소에 가방을 두고 대청봉에서 일출을 본 뒤 다시 돌아와 하산한다. 하산하는 중간 갈림길에서 대피소로 내려갔다가 올라와야 하는 수고는 감수하기로 마음먹었다. 자리를 정리한 뒤 스틱과 작은 보조 가방만 가지고 대피소 밖으로 나왔다.


8월임에도 늦가을처럼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을 헤드 랜턴 빛으로 가르며 대청봉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소청 대피소까지 올라올 때와 마찬가지로 사람 한 명만 지나갈 수 있는, 좁고 가파른 경사가 다시 시작된다. 바위를 딛는 무릎과 스틱을 쥔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발 빠른 이들은 저만치 멀어진 것인지 아무런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불빛 한 줄기에 의지해 나가는 야간 산행을 할 때에는 너무 많은 것을 상상하지 않는 편이 좋다. 허튼 생각만 하지 않으면 어둠과 고요는 도리어 편안하게 다가온다. 일몰 직후 입수하는 야간 다이빙도 물에 들어가기 전에는 무척 두려웠지만, 가만히 모랫바닥에 앉아 불빛을 끄고 완전한 어둠을 마주했을 때는 태초의 아늑함을 느꼈었던 것처럼. 어둠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공포와 평온의 얼굴을 모두 가지고 있다. 나는 그저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앞으로, 위로 오를 뿐이었다. 느리지만 꾸준하게 경사를 오르자, 사방이 탁 트인 삼거리가 나왔다. 그제야 하늘을 올려다보니 어스름한 푸른빛이 감돈다. 새벽이 밝아오고 있다.


구름인지 안개인지 모를 뿌연 수증기 속을 잰걸음으로 재촉했다. 헤드 랜턴 불빛이 비치는 곳마다 키가 낮은 나무들이 반짝반짝 빛났다. 고산지대에서 살아가는 침엽수종인 구상나무다. 여담으로, 구상나무는 급격히 상승하는 지구 온도에 취약한 생명 중의 하나다. 고산 종이기에 차갑고 서늘한 기후가 확보되지 못하면 살아갈 수 없고, 이상기후로 인해 겨울철 적설량이 적어지면서 말라죽어 간다. 한반도 남부 지리산 일대의 구상나무들은 이미 하얗게 집단 고사하고 있단다. 기후 위기 회의론자들은 이른 새벽 설악에 한 번 올라보면 좋겠다. 구상나무의 잎은 빛을 받으면 한쪽 면이 은색으로 반짝이는데, 자연 그대로의 크리스마스트리란 얼마나 신비롭고 영롱한지. 그 아름다움을 마주한다면 기후 위기에 관한 냉소적인 생각이 바뀔지도 모를 일이다.


국립공원 레인저는 소청에서 대청까지 넉넉잡아 1시간 정도 걸릴 거라고 했다. 빈 몸이라도 오르막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중청 대피소에 다다랐을 무렵에는 이미 동쪽 하늘이 검붉게 물든 모습이었다. 바람을 막아줄 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 중청봉에는 차갑고 날카로운 바람이 쉬지 않고 불어왔다. 어릴 적 가족들과 함께 왔었던 중청 대피소는 개보수 공사 중이어서 가림막이 둘려있다. 그 너머, 구름에 뒤덮인 대청봉이 최종 장의 보스처럼 위엄있는 자태로 기다리고 있다. 남은 거리는 약 500m,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설악의 정상 대청봉.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손에 잡힐 듯 가깝지만 가파른 돌 더미를 올라야 한다. 더욱 조급해졌다. 해가 뜨기 전에 오를 수 있을까? 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잴 겨를은 없었다. 정상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정상석은 그때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다. 주변에는 대여섯 명이 먼저 와 일출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상 등반의 기쁨을 만끽하기 전, 동쪽 하늘을 가득 메운 운해에 눈길을 사로잡혔다. 구름의 바다가 금빛으로 넘실거린다. 걸음이 느린 나를 기다려준 것일까. 머지않아 구름을 뚫고 빛나는 태양이 모습을 드러냈다. 태양도 잠에서 깨면 의식을 찾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을 아는가? 정오의 태양은 맨눈으로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강하고 밝게 타오르지만, 하루의 처음을 여는 일출만큼은 온전히 태양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태양. 그 강력한 별의 힘으로 계속해서 빛의 색과 강함이 달라지며 다채롭게 일렁이는 하늘. 이 높은 곳에서, 오직 이 순간을 두 눈으로 목격하기 위해 수 없이 많은 바위를 넘어왔다. 가만히 서서 흘러가는 모든 것들을 느껴본다. 구름과 바람, 돌과 꽃, 이제는 대부분 희미해진 어린 날의 기억… 자연의 장엄한 찰나는 직접 두 발로, 숱한 어려움과 고통을 극복하고 마주할 때야말로 특별한 감동으로 밀려든다. 지금 발을 딛고 있는 이 바위, 설악산, 하늘, 태양, 바다는 내가 한 줌의 먼지로 돌아가고 그 먼지조차 남지 않게 될 때도 변함없이 이 자리에 있을 것이다. 생이란 영원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압도적으로 거대한 존재를 온몸으로 맞닥뜨리는 순간, 나는 비로소 필멸자의 운명에 안도한다. 그러는 사이 아침이 완전히 밝았다. 이제 사람의 땅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작가의 이전글해탈의 고개를 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