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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정 CindyKim Dec 27. 2021

겨울에 어울리는 클래식과 미술

게오르기 스비리도프 & 보리스 쿠스토디예프 

겨울이 연상되는 클래식을 꼽으라면 비발디와 하이든이 ‘사계’라는 제명으로 각각 협주곡과 오라토리오를 남겨 계절의 변화를 실감 나게 표현한 것을 연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롯이 겨울만의 이미지를 그려낸 작품은 슈베르트, 차이코프스키 등이 활동했던 낭만파 시대에 들어서나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는 시대적 배경과 관련이 있는데요, 비발디, 바흐, 헨델을 중심으로 한 바로크 시대나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이 활동했던 고전파 시대에는 특정 소재를 표현하는 표제음악보다 순수한 음(音)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절대 음악이 주류였기 때문입니다. 또 낭만파 이전까지 문학, 미술 등 다른 분야 예술과의 교감이 부족했던 탓도 있고요. 

겨울 이미지가 가득 담긴 음악으로는 슈베르트의 연가곡집 ‘겨울나그네’와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1번 ‘겨울날의 환상’이 제일 많이 연상될 것입니다.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는 제 클래식 동우회에서 한번 주제로 삼아서 연가곡 전곡 감상하면서, 낭송을 해서 추억이 많습니다. 

그리고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1번 겨울날의 환상도 너무나 유명해서 들으면, “아, 이곡~!”하실 거예요.

Symphony No. 1 in G Minor, Op. 13 "Winter Dreams": I. Dreams of a Winter Journey - Allegro... - YouTube




오늘 얘기하고 싶은 겨울 관련 클래식과 미술에서는 문학, 음악, 미술, 영화가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는 재밌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인데요, 한국에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러시아 작곡가 스비리도프(Georgi Vasilyevich Sviridov)의 ‘눈보라(The snowstorm - Musical illustrations to Pushkin's Story)’ 와 러시아의 민속화가인 보리스 쿠스토디예프(Boris Kustodiev / Boris Mikhaylovich Kustodiev, 1878-1927)의 작품을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두 사람 모두 러시아 민요와 민속에 관심이 많았고, 러시아에 대한 무한 애정을 작품에 녹였습니다. 


먼저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스비리도프의 눈보라는 러시아의 문호 알렉산드로 푸쉬킨(1799-1837)이  1830년에 어머니의 영지인 볼지노에서 탈고된 첫 번째 소설 작품 벨킨 이야기에 있는 5개의 단편 중 하나입니다. 나머지 한 발의 사격, 농군 아가씨, 장의사, 역참지기와 함께 사실주의적 경향이 강한 중편 소설인데요. 이 소설은 작품으로 본다면 이미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그의 명작 스페이드 여왕'이 나오기 전에 나온 사실 주의적 경향의 든든한 전조였던 것입니다. 푸쉬킨은 1812년 나폴레옹 전쟁의 승리로 진작되기 시작한 러시아 민족주의와 애국심이 고취되던 시기에 왕성한 창작 활동을 보인 작가로 푸쉬킨의 원작에 근거한 영화 역시 1812년 전쟁 이후가 무대가 된 낭만적인 드라마입니다.

Georgy Sviridov의 Snow-Storm (Musical Illustrations to A. Pushkin's Story) 은 아래와 같은 9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 Troika 트로이카

2. Waltz 왈츠

3. Spring and Autumn 봄과 가을

4. Romance 로망스

5. Pastorale 전원곡

6. Military March 군대 행진곡

7. Wedding Ceremony 결혼식

8. Echo of Waltz 왈츠의 메아리

9. Winter Road 겨울길




스비리도프 (Georgy Sviridov )는 1915년 쿠르스크(Kurst) 부근에서 태어난 러시아 작곡가입니다. 그는 14살 때인 1929년 고향 쿠르스크에서 음악학교에 입학,  1932년까지 예비교육을 마쳤고, 곧바로 레닌그라드 중앙음악대학에서 작곡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 공부는 1936년까지 계속되었는데, 이때 그를 가르친 선생은 유딘(M.A.Yudin)이었습니다. 1936년 레닌그라드 음악원에서 공부하게 된 스비리도프는 음악가로서 대단히 중요한 행운을 맞게 되는데요, 그건 바로 쇼스타코비치를 스승으로 공부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당시 쇼스타코비치는 1937년부터 1941년까지 레닌그라드 음악원의 작곡 교수로 재임하고 있었는데, 스비리도프는 바로 이때 그를 만나 작곡법, 관현악법 등을 사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스비리도프는 당시 쇼스타코비치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었습니다. 스비리도프의 초기 기악곡, 즉 피아노 3중주, 피아노 소나타, 피아노 파르티타 등을 보면, 그 증거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는 현대의 러시아 국가에서 예술가로서는 가장 높은 칭송을 받은 사람에 속합니다.. 레닌그라드 음악원에 입학하던 1936년에 이미 소비에트 사회주의 국가연합(U.S.S.R) 작곡가회의 일원이었던 그는 1963년에는 마침내 이 단체의 서기가 되었습니다. 또, 1946년, 1968년, 1980년 세 차례에 걸쳐 러시아 국가상을 수상했고, 1960년에 레닌상을 받았는가 하면 1970년에는 급기야 인민의 예술가로 추대되기도 했었습니다.




스비리도프는 피아노 3중주, 실내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음악 등 훌륭한 기악곡도 여러 편 남기고 있으나 음악의 텍스트, 즉 가사의 힘에 매료되어 주로 노래나 합창곡들을 많이 작곡했습니다. 그가 관심을 가진 텍스트는 러시아 작가들에 한정되지는 않았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시인 로버트 번즈(Rubert Burns)의 작품, 그리고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작품도 그의 음악을 구성할 중요한 텍스트로 모아졌습니다.
 그러나 민족적이고 애국적인 사상으로 철저히 무장된 그의 음악은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들을 다룰 때 가장 환한 빛을 발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들을 다루고 그들의 문학을 텍스트로 하고 있는 스비리도프의 음악은, 곧 현대 러시아 문학사조의 제반 특질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그가 텍스트에 대한 각별한 호기심으로 쓴 첫 작품이 1935년 푸시킨의 시에 의한 6곡의 로망스였습니다.
 그는 근대 러시아 문학에 중요한 획을 그은 블로끄(영,Blok)나 '의사 지바고'로 유명한 파스테르나크(빠르쩨르나끄(영,Pasternak))의 작품 등에도 부지런히 곡을 붙였습니다. 

<Georgy Vasilyevich Sviridov (게오르기 바실레비치 스비리도프)/ 1915. 12. 16 (러시아 파테주) ∼1998. 1. 5 (모스크바)> 




눈 덮인 러시아 들판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영화가 ‘닥터 지바고’인데요, 노벨문학상에 지명됐지만 소련 체제에서 어쩔 수 없이 수상을 거부했던 파스테르나크의 작품으로 1965년에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20세기 초 격변기를 살았던 의사이자 시인인 지바고의 고뇌와 라라와의 운명적인 사랑이 모두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영화의 주제곡 ‘Lara’s Theme’은 프랑스의 유명한 영화 음악 작곡가 모리스 자르의 작품입니다. 

Best scene of Docteur Jivago with Lara's Theme - Maurice Jarre - YouTube




 스비리도프는 러시아의 특수한 정치적 상황을 체득하며 살았지만, 항상 서정적인 심성과 온화한 인품을 지닌 음악가였습니다. 그런 그가 애틋한 그리움으로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시골집, 자작나무 그림자가 드리워진 연못 등 러시아 전원의 아름다운 풍광을 노래했던 예쎄닌을 특별히 좋아했던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의 예쎄닌에 대한 각별한 사랑은 '세르게이 예쎄닌을 추념하는 시(Poema pamiyati Sergeya Yesenia,1955-6)'에서 극점에 달했고, 예쎄닌과 함께 엮어진 고향땅에 대한 귀속의식은 '우거진 숲의 러시아(Wooden Russia,1964)'등의 합창곡에 그대로 침윤되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Tavern - YouTube
 
 또, 1959년작인 '감상적인 오라토리오(Pateticheskaya oratoriya)' 같은 작품에서는 미래주의의 대표작가 마야꼽스키(Mayakobsky)의 7개 시편들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런 작품들로 우리는 그의 다양한 문학 취미를 엿볼 수 있기도 합니다.

https://youtu.be/GnmtfyYDD8A

 1964년 스비리도프는 모스크바 음악원 민속문화 연구업적의 힘으로 고향 쿠르스끄의 민요들을 채록, '꾸르스끄 노래집(Kurskiy pesni)'도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https://youtu.be/sZGekniZge4

 이 분야에서의 스비리도프의 작품집은 유절형식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는 인위적 가필없이 이뤄진 순수한 내용의 화음 등, (이미 두 세대전 리아도프(Lyadov 1855-1914)가 구성했던 8개의 러시아 민요집(op.58)에 필적할 만큼 귀중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스비리도프의 음악이 간결하면서도 가요적인 멜로디로 넘치며 보편적인 감성에 호소하듯 편안한 것은 바로 그가 민요연구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결과이기도 했습니다.(말하자면 나이 50줄에 들어서면서 본격화된 그의 민요연구작업은 이후 스비리도프의 음악적 스타일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
 러시아 민족성이 강하고 성악에 편중되어 있으며, 주로 뛰어난 멜로디 감각으로 호소하고 있는 점 등 스비리도프의 작품들이 지니고 있는 성격은 매우 독자적인 것이기 때문에 음악계에서는 종종 주변 유파로 다뤄지고 있는 경향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쨌거나 그의 음악이 러시아 현대문학의 발전과 함께 하고 있고, 그 연장선상에 있음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스비리도프는 1998년 1월 5일, 82세의 나이로 타계했습니다. 6월 9일부터 30일까지 모스크바에서 열릴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에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옐친 대통령이 초빙될 계획이었고, 이 콩쿠르 1회 우승자인 밴 클라이번이 오게 되었던 그곳에 명예위원으로 참관할 예정이었는데, 결국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러시아에서는 1964년 이 작품을 영화화했는데 영화 내내 스비리도프가 작곡한 음악이 흐릅니다. 스비리도프는 영화에 삽입된 곡을 중심으로 1975년 총 9곡의 음악을 발표하는데요. 작품명은 영화와 동일한 ‘눈보라’고요, 곡명을 다시 한번 불러드리면,  1곡(트로이카), 2곡(왈츠), 3곡(봄과 가을), 4곡(로망스), 5곡(전원), 6곡(군대 행진곡), 7곡(결혼식), 8곡(왈츠의 메아리), 9곡 (겨울 길). 소제목만 읽어보아도 소설 속 이미지가 연상되시지요. 특히 로맨스는 2003-2004 시즌 쇼트 프로그램에 참가한 김연아의 배경음악으로 쓰여 더욱 잘 알려진 곡으로 겨울 사랑의 테마를 잘 표현했습니다.


Г. Свиридов "Романс"G.Sviridov "Romance" А.С.Пушкин "Метель" - YouTube

GEORGY SVIRIDOV - " Romance " ( Melancholic Music ) - YouTube


«이것이 사랑이 아니면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Если это не любовь, так что же?)» 

러시아의 한 마을, 부유한 집안의 아름다운 한 처녀 마리야 가브릴로브나가 옆집에 잠시 머물고 있던 하급 장교 청년과 사랑에 빠집니다.

그 청년과의 결혼을 허락할 리가 없다고 생각한 처녀는 어느 날 밤 부모에게 편지 한 통을 남긴 채 몰래 가출해 이웃 마을 교회로 향하게 됩니다. 하급 장교와 비밀리에 결혼식을 준비한 것이지요. 


눈보라가 세차게 몰아치던 그날, 처녀는 무사히 교회에 도착해 청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편, 하급 장교는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잃고 상당한 시간이 지난 새벽녘에야 교회에 도착했지만 이미 교회 문은 닫혀있었습니다. 하급 장교가 길을 헤매고 있는 사이 장교 복장의 다른 청년이 교회에 나타납니다. 눈보라를 피하려고 들어간 교회엔 결혼식이 준비돼 있었고, 그 장교는 영문도 모른 채 신랑 자리에 앉혀졌습니다. 장난기가 발동한 청년은 신랑인 양 행세를 하지요. 마침내 혼인 서약이 끝나고 입맞춤 순간, 처녀는 놀라 소리치며 기절해 버렸고, 청년은 허겁지겁 교회를 빠져나와 도망쳐 버리게 됩니다.

Sviridov - The Snowstorm - Wedding Ceremony - PART 7 of 9 - YouTube 

그날 이후 처녀는 심한 열병을 앓아눕고, 약속을 지키지 못한 하급 장교는 전쟁터로 떠났다가 전사하게 됩니다. 세월이 흐른 후 유산을 물려받은 처녀가 부유한 상속녀가 되자 주변엔 청혼자들이 몰려들지만, 그녀는 눈길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휴가차 그 마을에 머무른 한 고위급 장교가 아름다운 처녀에게 반하게 되고 이렇게 사랑 고백을 합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렇지만 청혼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이미 오래전 한 여인과 결혼한 몸입니다. 그 여자가 누군지, 어디에 사는지,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도 모릅니다. 눈보라를 피해 들어간 교회에서 용서받기 어려운 장난으로 한 결혼이지만 그 죗값을 치러야 할 몸이기 때문입니다.”

The Snowstorm: VIII. Echo of Waltz - YouTube

https://youtu.be/8JL4JXEv-RY winter road


"하나님, 이럴 수가! 그 사람이 당신이었군요! 저를 못 알아보시겠어요?"

자신의 첫사랑이 전쟁터에서 전사한 후, 여전히 구혼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어떤 창백한 남자가 등장하자 모두가 물러 섰다고 설명하는 부분이 참 흥미롭습니다.

'이미 말했듯이, 마리야 가브릴로브나는 본인의 차가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구혼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창백한' 부르민이 등장하자 모두가 물러서야 했습니다.(

Мы уже сказывали, что несмотря на ее холодность, Марья Гавриловна все по-прежнему окружена была искателями. Но все должны были отступить, когда явился Бурмин, с интересной бледностью.)'




그렇다면 그 당시 러시아에서 여자에 대한 미의 기준은 어땠을까요? 보리스 쿠스토디예프를 통해 러시아 여성의 미의 기준과 눈에 대한 낭만을 나눠 보려고 합니다. 

옛날엔 동서양을 막론하고 살찐 여인이 미의 최고 기준이었습니다. 양귀비도, 클레오파트라도, 비너스도 모두 모두 풍성한 미를 자랑했지요.

사실 미녀에 대한 객관적 기준은 시대별, 지역별로 존재합니다. 그래서 아름다움에 감동받고 사랑에 빠지는 이유는 그때그때 변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 풍성하게 살찐 여인을 최고의 비너스로 칭송한 러시아 작가의 미적 기준은 무엇일까요? 쿠스토디예프는 러시아 대표 민속화가로 주로 러시아 전통 행사나 명절 풍습, 러시아 문양 등을 주제로 한 그림을 그립니다. 〈러시아 미녀〉에서 화려한 색깔의 꽃무늬 벽지와 침대는 러시아 전통 문양을 재현한 것이며, 〈상인의 아내〉에선 사모바르(러시아 차 주전자)를 그려 넣어 전통 식기를 보여주고 〈러시아 비너스〉에선 러시아 전통 사우나 바냐를 그대로 재현해 놓았습니다. 그런 전통 소품 속에 어우러진 러시아적 미적 기준이라 더욱 그 의미를 발휘합니다.  

<러시아 비너스> 1925-1926년, 보리스 쿠스토디예프, 200 ×175㎝, 러시아 박물관 소장, 상트페테르부르크.




물론 그림이 그려진 시기는 볼셰비키 혁명 후 내전을 거치고 스탈린이 당을 장악할 즈음으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러시아의 식량문제는 아주 심각했습니다. 심한 기근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갈 때입니다. 그런 현실 앞에 풍만하게 살찐 여인을 러시아 미녀라 칭한 쿠스토디예프의 그림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쿠스토디예프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에 발맞춰 가냘프고 여린 귀족적 아름다움은 떨쳐버리고 당당하고 풍성한 미를 가진 생활력 있는 민중적 여인상을 미래를 위해 제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리야처럼 스스로의 파트너를 선택하는 당당한 여성이요.


보리스 쿠스토디예프, <팬케익 화요일/버터 위크/크래페 위크>, 1916


즐겁고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그림 앞부분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말들은 썰매를 몰고 있고, 사람들의 표정이 섬세하게 드러나진 않지만 그들의 모습은 누가 봐도 즐거워 보입니다. 화면 앞 쪽 관람객을 향해 밝게 웃는 여성의 표정에서 즐거움이 확연히 드러나네요. 왼쪽 언덕 위에서는 아이들이 한 창 썰매를 타고 있습니다. 서로 눈싸움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먼저 썰매를 타고 내려가는 친구를 구경하고 있습니다. 벌써 한 아이는 썰매를 다 타고 다시 끌고 오네요. 

언덕 뒤쪽으로는 행사가 있는지 사람들이 몰려 있습니다. 재밌는 연극이나 서커스라도 하는 걸까요? 행사장의 모습은 그림의 앞부분이 떠들썩한 분위기를 배가 시킵니다. 

 

그림의 가운데 부분으로 시선을 옮기니 마을이 보입니다. 북적이는 전경과 달리 마을의 모습은 평화롭고 고요해 보입니다. 나무, 집과 교회의 지붕에는 눈이 소복이 쌓여있고, 난로를 때는지 굴뚝마다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따스함을 머금은 연기는 그림의 온도를 더욱 올려주고 있습니다. 앞쪽에서는 사람들이 신나게 논다고 온기를 높이고 있고, 중간에서는 굴뚝의 연기가 고요한 마을을 따뜻하게 데워줍니다. 겨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결코 춥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시선을 그림 위로 옮기면 드넓은 하늘이 펼쳐집니다. 그런데 하늘의 색이 굉장히 몽환적입니다. 푸른색 대신 파스텔톤의 옅은 초록색을 배경으로 노랗고 분홍빛에 가까운 불그스름한 구름들이 떠다니고 있습니다. 이제 해가 지려고 하는 걸까요? 노을빛을 머금은 구름이 그림을 일순간 동화 속 한 장면으로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마을 뒤편으로 무리 지어 날아가는 새들은 그림의 깊이를 더해주면서 마지막으로 우리의 시선을 화면 깊숙이 이끌고 갑니다.

그림의 배경은 러시아의 축제 마슬레니차(Maslenitsa)입니다. 러시아 정교회의 사순절(부활 주일 전 40일 동안의 기간) 직전, 일주일 동안 열리는 봄맞이 축제입니다. 사순절이 시작되면 고기, 생선, 계란, 유제품을 먹을 수 없는데, 특히 육류는 사순절 일주일 전부터 금지된다고 하네요. 

대신, 우유, 버터, 치즈 등의 유제품은 허용되어서 팬케익을 만들어 버터와 치즈를 듬뿍 발라 먹었다고 해요. 그림의 제목이 팬케익 화요일, 버터 위크, 크래페 위크(Pancake Tuesday; Butter Week or Crepe week)인 것도 축제 기간을 묘사한 것이기 때문이지요. 축제 기간 동안 사람들은 눈싸움과 썰매를 즐긴다고 합니다.

그림은 화가가 살던 마을의 축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분위기가 몽환적이고 동화적인 것을 봐서 어쩌면 화가의 어린 시절 추억을 표현한 게 아닐까 추측해볼 수도 있습니다. 화가가 공유하는 겨울에 관한 즐겁고 따스한 추억이 저에게도 그대로 전달되는 걸 보면, 겨울이 마냥 춥고 싫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여러분에게 겨울의 미술과 클래식은 어떻게 기억되고 있나요? 코로나19 오미크론 이슈에 침울해질 수도 있겠지만, 오늘 함께 한 러시아 작곡가 스비리도프Georgi Vasilyevich Sviridov의 ‘눈보라 The snowstorm - Musical illustrations to Pushkin's Story’. 와 러시아의 민속화가인 보리스 쿠스토디예프(Boris Kustodiev / Boris Mikhaylovich Kustodiev, 1878-1927)의 작품을 기억하며 따뜻한 겨울나시기 바라며, 제가 좋아하는 월러스 스티븐스(Wallace Stevens, 1879-1955)의 '눈사람(Snowman)'이라는 시를 함께 나눕니다.


One must have a mind of winter

To regard the frost and the boughs

Of the pine-trees crusted wit

서리와 눈 쌓인

소나무의 가지를 응시하려면...

겨울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And have been cold a long time

To behold the junipers shagged with ice,

The spruces rough in the distant glitter

얼음으로 뒤덮인 향나무와

멀리 일월의 햇빛 속에 반짝이는

거친 가문비나무를 바라보려면

오랫동안 추워야 한다


Of the January sun; and not to think

Of any misery in the sound of the wind,

In the sound of a few leaves,

바람 소리와

몇 안 남은 나뭇잎 소리에서

어떤 비참함도 생각하지 않으려면


Which is the sound of the land

Full of the same wind

That is blowing in the same bare place

그 소리는 대지의 소리

같은 헐벗은 장소에서 부는

같은 바람으로 가득한


For the listener, who listens in the snow,

And, nothing himself, beholds

Nothing that is not there and the nothing that is.

눈 속에서 귀 기울여 들으며

스스로 무(無)가 된 자는

그곳에 있지 않은 무와

그곳에 있는 무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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