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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정 CindyKim Sep 16. 2021

홍콩의 산책자

한가해 보일 때가 가장 몰두했을 때일지도 모른다

자신에게는 삶의 터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잠시 왔다 가는 관광지가 될 수 있다.

자신은 충분히 친절하게 대하고 있어 상대에게 안정감을 주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정작 받는 사람은 자신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이라고 여기며, 그 불안감을 치유하기 위해, 많이 갖고 있음에도 더 갖고 싶어하고, 쓸데없는 것들까지 붙잡고 놓지 못할지도 모른다.

강물 속에서 물방울 두 개가 미지의 곳으로 묵묵히 흘러가고, 그 두 개의 물방울은 스스로에게는 뚜렷한 개별성을 띠었지만, 보는 사람에게는 특징 없는 강물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인생의 베일'의 주인공 '베티'는 서머셋 모옴이 홍콩을 다녀온 후 탄생한 인물이다. 그는 여기, 신(New)과 구(Old)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홍콩에서 어떤 영감을 받았을까? 산책할 때마다 책을 읽을 때마다 상상해 본다. 그가 그 책을 어떻게 집필하게 되었을지,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혼자 하는 산책은 여러모로 유용하다.

산책을 하는 순간, 모든 전두엽 기능은 느슨해지고, 구석구석 쌓여있던 창의력이 연결된다.

두 다리로 이동하며 닿는 그곳은 산이건, 바다, 도시, 그 어떤 곳이라도 우리의 도서관이며 작업실이 될 수 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지만 하지 않는 게 없고, 뭔가 하는 것 같지만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고, 노동하고 있지 않지만, 더 가치 있는 것을 얻을 수도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산책의 효용이다.

파도 소리, 바람 소리가 귀에 닿으면 시가 되고, 노래가 되고, 비즈니스 아이디어가 된다.

자연의 풍광과  마천루가 눈에 펼쳐질 때, 우리의 모든 관념을 휘젓고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게 된다.

코로나 19가 창궐하기 전, 매달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해외 출장을 가는 나에게 친구들은 물었었다. 그렇게 가고도 지치지 않냐고, 이제 눈을 감고 굴러서도 다니지 않겠냐고. 

그들은 내가 출장을 가는 게 단순히 미팅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도시를 산책하러 간다는 것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었다. 아울러 산책자인 친구의 마음 상태도..

어느 날 그들의 심장이 말랑말랑해졌을 때, 몇백 번을 읽어도 질림이 없는 보들레르의 이 문장을 읽어 주었다.

완벽한 산책자에게 있어 수많은 사람 속에, 물결처럼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 한가운데 거처를 마련한다는 것은 무한한 기쁨이다. 집 밖에 있으면서도 모든 곳에서 자기 집 안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 세계를 보고, 세계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세계로부터 숨어 있는 것. 이러한 것들은 독립심 강하고 열정적이며 공평한 정신 소유자들의 극히 사사로운 즐거움 중의 하나겠지만 세 치 혀로 그것을 표현하기란 아무래도 요령부득하다. 관찰자는 모든 곳에서 익명성을 즐기는 군주이다.




산책하는 동안 나는 탐색가가 되고, 관찰자가 되어 그 도시에서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이방인으로서, 도시 구석구석을 싸돌아다니는데, 이 자체가 설레는 모험인 셈이다. 그렇다고 항상 목적성을 가지고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 눈을 반짝이느냐? 그것도 아니다. 무언가를 집중하는 것 같지만 실제는 멍한 상태로 무념무상 하다가, 알 수 없는 내적 충만으로 가득 차게 되는 것도 산책의 예상 못한 기쁨 중 하나다. 

여행이나 산책이나 모두, 떠남으로써 시작하고, 돌아옴으로써 완성된다. 

어느 길로, 어떤 방법으로 가든, 진실된 내면의 소리를 들으며 충만한 영혼으로 돌아오는 기쁨을 알기에 이 발걸음을 멈출 수 없다. 이 기쁨을 상실했을 때, 나는 성장을 멈추고, 나의 소우주도 생성과 발전을 멈추게 될테니까.


<빅토리아 피크 산행 중 내려다본 카오룽의 I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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