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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정 CindyKim Oct 17. 2021

도촌(都村) 듀얼 라이프를 꿈꾸며

워라벨 & 러라벨

"모두 훌훌 털어버리고 자유롭게 살 거야."

인생의 비상을 갈망하면서도, 주변에 지켜야 할 사람들이 있거나, 지금 떠나면 그간 해 놓은 것이 아쉽거나, 축적해놓은 것들이 있다는 것을 새삼 인지하며 그 마음을 접을 때가 있다.

"내년엔 승진이 될 거고 월급도 오를 거니까, 조금 더 고생하자."

"몇 년 후에는 빚을 다 갚을 수 있을 테니 조금 더 허리띠를 졸라매고 버텨보자."

"언젠가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을 테니 몇 년만 더 바짝 일하자."

"5년 후엔 아이들이 대학생이 될 테니 그때까지만 내 삶 양보하자."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우리를 붙잡고 있는 그 짐스러운 것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발판이기도 하고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이 힘으로 우리는 아침에 일어날 이유를 갖게 되고, 열심히 경제 활동을 하면서, 삶의 안정감을 찾는다. 그런 물질적 안정을 위해 매진하는 하루하루가 그저 스쳐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렇게 축적해놓은 게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사는 것은 아닐까.

언젠가 우리는 모든 것을 두고 홀연히 떠나야 하는데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유행하고 있는 '러스틱 라이프 (Rustic Life)'가 반갑다. 날 것의 자연과 시골 고유의 매력을 즐기면서도 굳이 생활 기반이 있는 도시의 삶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오도이촌 (五都二村), 말 그대로 일주일에 5일은 도시에서 머물고 이틀은 시골에 머물면서, '촌캉스(촌+바캉스)'와 '옥캉스(한옥+바캉스)'를 즐기며, 소위 '3멍'(불멍·풀멍·물멍)이 가능한 '뷰(view) 맛집'에서 '바다 뷰', '논밭 뷰', '노을 뷰'를 감상하는 '헬시 플레져'로서의 여유는 뉴트로 한 감성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이렇게 이틀이 사흘이 되고, 1주일이 되고, 반달 살기, 한 달 살기로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다가 완전 귀촌을 하게 되는 '이도향촌(離都向村)'이 되어도 그간 경험이 쌓여서 성공적인 전원생활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홍콩은 한국보다 작아 '셀프 유배'로 장기간 머물 곳이 마땅치 않아서, 도촌(都村, 도시와 시골) 듀얼 라이프를 손쉽게 즐기는 방편으로는 캠핑을 꼽을 수 있겠다.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하고 싶은 캠퍼들을 위해 캠핑카까지 같이 대여해주는 캠핑장들이 잘 돼 있고, 각 나라의 콘셉트로 만들어놓은 텐트까지 대여해주는 캠핑장들도 인기가 많다. 아이들은 우주선이나 지구 모양의 텐트를 좋아하고, 어른들은 인디언 콘셉트이나 이글루 같이 색다른 텐트를 좋아한다.  그도 아니면, 숙박은 하지 않고 텐트 그늘에서 반나절 정도 쉬고 돌아오는 캠프닉(캠핑+피크닉)을 하면서, 집에서 집으로 휴가를 간 듯한 휴가의 일상화를 즐기고 있다.

이것도 시들해지면, 휴가지에서 업무를 진행하는 '워케이션(work+vacation)'을 떠나기도 하는데, 시차를 무시한 줌(zoom) 미팅 때문에 오히려 다크서클을 무릎까지 늘어뜨리고 와서, 2주간 지정 호텔에서 홀로 격리를 하고 나오면 소위 '멘털이 탈탈 털려' 한동안 힘들어하기도 한다.

백신 2차 접종을 마쳤어도, 창문 없는 호텔 방에서 주는 밥을 먹으면서, 매일 문 앞에 걸려있는 침대 시트와 수건, 휴지 봉투를 받아서, 스스로 침대 정리도 하고 청소를 하는 게 절대 녹녹지는 않다.

그래서 근처 섬으로 1박 2일 여행을 간다. 때로는 크루즈를 2박 3일간 타기도 한다. 망망대해에 있으면 소위 '물 멍'은 가능한데, 홍콩이 원래 섬나라라 집 앞에서 바다를 볼 수 있기에, 굳이 매력을 느끼지는 못한다. 지금 한국의 러스틱 라이프가 그리운 이유 중 하나이다. 시골은 더 이상 시대에 뒤떨어지는 낙후된 공간이 아니다. '촌'스러움이 '힙'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도촌(都村) 듀얼 라이프를 할 여건이 되지 않는 나는 '홈가드닝'뿐만 아니라, 2012년부터 '홈파밍 (home-farming)'하고 있다. 문제는 홍콩이 아열대성 기후라서 모든 식무들이 너무 빨리 자라는 것이다. 특히 상추는 큰 배추만 한 크기로 자라는 데다가, 급히 자라니 맛이 없다. 허브의 경우에는 제주도의 '허브올레'라는 곳에서 각종 허브 모종을 들고 와서 키웠는데, 로즈마리는 어찌나 빨리 자라는지 그때그때 훈제 구이를 할 때 넣어 먹었는데, 빨리 자라니 역시 특유의 향이 옅어졌다. 

아침저녁으로 작은 식물들이 싹을 틔우고 자라는 것을 확인하는 잔잔한 행복이 좋다. 요즘은 모종도 정기 구독하는 시기이니, 우리의 러스틱 라이프는 베란다에서도 충분히 이루어질 듯하다.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개개인으로 파편화됐다고 해서 10억 분의 1을 의미하는 나노를 붙여서 나노 사회라고 부르는데, 주변에서 보면 혼자만 뒤처지는 것은 아닌가 해서, '바른생활 루틴이'로서 주변 친구들과 미라클 모닝, 운동 인증, 독서 모임 인증 등을 하면서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루틴화 하려는 추세를 볼 수 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의미하는 워라벨(Work-life balance)과 더불어 도시와 농촌의 삶의 균형을 의미하는 러라벨(Lustic Life balance)도 점차 늘어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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