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통한 mindfullness & mind-wandering
안으로 깊고, 크게 성장하는 시간.
살다 보면 자신을 차분히 성찰하여 정리할 필요를 느끼는 순간이 온다.
우리는 어디에 와 있으며,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떠한 자세로,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인가?
이런 자신의 질문에 답하는 좋은 방법의 하나가 글로 옮겨 적는 일이 아닐까 한다. 마음의 바닥에 흐르는 주체할 수 없이 많은 갖가지 상념을 어떤 형식으로든 거짓 없이 종이 위에 옮겨 놓는 것은 체험과 사색을 통해서 가능하고, 이것이야말로 자기 자신을 비추어 주는 자화상이기도 하다.
법정 스님의 저서 '무소유'에서 '우리 마음이란 미묘하기 짝이 없다. 너그러울 때는 온 세상을 다 받아들이다가, 한번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꽂을 여유조차 없다. 그러한 마음을 돌이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라고 옛사람들은 말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분노와 슬픔과 괴로움이 우리를 찾아오거든 이 마음을 종이 위에 적어 보고, 이 객관적인 사실에서 한 발 떨어진 자리에서 내 마음을 바라보는 여유를 가질 수도 있다.
변화무쌍한 우리의 생각과 감정은 날씨로 비유해 볼 수 있겠다. 맑은 날, 흐린 날, 비 내리는 날, 눈 내리는 날, 천둥과 번개가 치는 날 등 여러 종류의 날씨가 있지만, 그 위에는 항상 하늘이 존재한다.
태풍이 시작되기 전 운 좋게 비행기를 탔다고 상상해 보자. 이륙하는 비행기 안에서 폭우를 맞이하는 상황.
'띵. 띵. 띵.' 기내 안전벨트를 확실히 매라는 안내와 함께, 기체를 뚫을 것 같은 굵은 빗방울 소리가 들리고, 창밖으로는 양동이로 쏟아 붓는 것 같은 물 폭탄의 연속이다. 이윽고 엄청난 흔들림을 경험하며 구름을 통과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쨍! 하고 푸른 하늘이 우리를 맞이할 때의 환희라니..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환경이 우리의 감정과 생각을 휩쓸어도 그 감정의 구름의 위에는 항상 하늘이 존재한다. 따라서 행복과 불행을 느끼는 내 생각과 감정조차도 나의 본질은 아니다. 나의 본질은 구름 위에 항상 존재하는 고요한 하늘이기 때문이다. 이 공간이 바로 내가 있는 본질의 공간이다.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구름과 비를 직면할 때, 우리는 더욱 충만하게 깨어있는 정신(mindfulness)으로 살아야 한다. 일할 때, 식사할 때, 가족과 함께 있을 때도 정신을 바짝 차릴수록 더욱더 깊은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 이렇게 온종일 충만하게 깨어있는 정신으로 지낸다면 그야말로 순간을 영원으로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는 어떠한 환경 자극에도 해야 할 일과 관련 없이 멍하니 지낼 때(mind wandering)도 있다. 요즘 '불멍'(장작불을 보며 멍하게 있는 것)이라는 신조어가 유행인데, 창의성과 암묵적 인지기능엔 멍한 정신이 더욱 기여한다고 한다. 물론 깨어 있음과 멍함의 저 끝은 모두 고요함으로 통한다.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에 쓰는 글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전문 용어를 섞어가며, 현학적으로 자신을 멋지게 포장할 필요가 없다. 현학적 자세는 사상의 유치함을 입증할 뿐 아니라, 자신의 허영심을 보여주는 것인데, 때로는 그런 말투나 글쓰기가 전문가 다움으로 비치기도 한다. 어려운 단어나 외국어를 섞어 쓰는데, 과연 그 뜻을 제대로 알고 하는 말일까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읽거나 듣는 사람이 그 용어에 압도되어, 진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조금 아는 것을 많이 아는 것처럼 속여서도 안 되고, 일부의 사실을 전체의 사실처럼 과장하는 일반화의 오류에 빠져서도 안 될 것이다. 우리의 글쓰기가 반드시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을 필요는 없지만, 일단 쓰겠다고 생각했다면 읽을 만한 것이 되면 좋겠다. 모든 진실에는 아름다움이 있다. 자신의 내면을 숨김없이 솔직하게 서술한 글에는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거짓 없이 성실하게 진실성 있는 글쓰기 시간이 즐거웠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