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추얼 메이커가 되어서
"어머~ 마포 성산동 사세요? 월드컵 경기장도 있고, 문화비축기지도 있고 좋으시겠어요~"
"어..문화비축기지요~? 그게 뭐죠..?"
어안이 벙벙해진 지인의 얼굴.
뮤지엄에 진심인 사람으로서 근대 산업시설인 석유비축기지를 리모델링해서 건축상까지 탔다며 대화를 이어나가던 기억이 있다. 우리도 주변을 돌아보면, 언제나 그 자리에 있고 익숙해서 그 가치를 제대로 몰랐거나, 용도를 모를 때가 있고, 설령 안다고 해도, 일상이 분주해서 제대로 즐기지 못할 때도 있다.
자신만의 '리추얼'이 필요한 순간이다.
삶에 에너지를 불어넣는 이런 반복적인 행동을 통해서, 일상의 방해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리추얼 메이커'로 자신을 포지셔닝하는 것이다.
오늘도 점심 식사를 마친 후, 회사 옆에 위치한 홍콩 아트 뮤지엄에 한 바퀴 마실을 다녀왔다. 매일 가는 공간이어도, 그날의 기분, 날씨, 패션에 따라 달리 느껴지는 사물들이 있다. 리추얼은 여기에도 존재한다.
작년 초 코로나 소식을 접했을 때 가족들과 프랑스 여행 중이었고, 일본에서 업무를 보고, 한국을 경유해 홍콩으로 돌아왔을 때만 해도, 코로나 19가 이렇게 길어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많은 겨울옷들을 서울 집에 두고 왔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두꺼운 옷들 없이 홍콩에서 과히 춥지 않은 겨울을 보내고, 다시 여름을 맞이한다.
오늘 같은 날에는 퐁피듀 센터에서 온 초현실주의 전시 대신, 'NOT a fashion store!'라는 전시로 중국 고대부터 현대까지 패션 의상, 신발, 액세서리 관련 작품들을 통해, 패션 트렌드와 일상, 심미학적 가치 등에 생각할 시간을 갖게 한다.
'정말 멋지게 보여야 하는 곳에 가야 한다면, 지금 걸치고 있는 것 중 하나 이상을 덜어내라!
패션은 단지 옷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아이디어와 우리가 사는 방식과 공존한다.
일상을 스타일리시하게~!
패션은 사라져도 스타일은 남는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패션과 업무 모두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고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장미를 심기 전에 땅을 갈아엎는 것처럼, 매일매일 자신을 돌아보고, 좋은 자양분을 가진 땅으로 자신을 가꾸는 것도 '창조'이며, 우리가 주인공이 되어 상상의 나래를 펴며 끊임없이 소설을 써 내려간다.
요즘 소설 속 모든 주인공들은 이례적으로 길어지는 팬데믹으로 인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특히 홍콩에 사는 주인공은 '뫼르소'류의 이방인은 아니지만, 홍콩의 이방인으로서 코로나 19 장기화에 출장도 못 가고, 고향에도 못 가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
그녀는 오늘도 영화 '파인딩 포레스터 : 굿 윌 헌팅'의 대사를 중얼거리며 글을 쓰고 있다.
'행복한 이방인'의 '리추얼'이다.
초고는 가슴으로 쓰고, 재고는 머리로 쓰는 거야.
글쓰기의 첫 번째 열쇠는 쓰는 거지, 생각하는 게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