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공부도 하나의 문화신드롬이다. 독립서점과 '공부의 신'하면서 공부하는 방법마저 마켓팅의 대상이 된다.
실제 대한민국 사회에서 '공부'만큼 사람을 나누는 기준도 없다.
일명 학벌, 우리는 정녕 학벌을 맹신하는가?
어느 사회나 사실 학벌은 존재한다.
상위 몇 퍼센트만 다닐 수 있고 자연스럽게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것을 부인하는 것도 모순이다.
그렇다고 학교가 그들만의 리그를 보장해 주지도 않는다.
결국 같은 직업군으로 진입해야만 본능적으로 인간은 자신과 같은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과 좀 더 친밀한 연대의식을 갖게 된다.
인간은 감정적 동물이다. 나름 교육을 통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동물이 되려 노력하지만 인간 본성인 감정의 노예가 될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해, 나라는 사람과 공유된 경험과 친밀함을 느끼는 사람을 위해서 이성과 논리로 나와 공유된 경험과 친밀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을 구분짓는다.
또한 그것은 당연한 명분이기도 하고 그렇기에 완벽한 이성과 합리적인 판단의 주체로 인간을 인식하는 행위는 다소 편협한 사고방식이 될 수 있다.
이것 역시 소위 상위 몇퍼센트에 해당하는 엘리트교육과 사회 정책을 움직이는 일명 기득권이라고 지칭하는 직업군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집단으로 인식하는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그들 사회는 일반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이성과 합리를 직업 특성상 요구하기도 하고 또한 그들은 일반 사람들보다 좀 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공부'를 한다 함은 현실적으로 학교를 진학하고 직업을 얻는 수단인 동시에 사람을 만나기 위함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또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은가?
어쩌면 이 질문이 나는 왜 공부하는가에 대한 또 다른 형태의 같은 질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