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모스크바1
뭔 놈의 땅덩어리가 이리도 넓은지 부산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 두 시간 반인데 이르쿠츠크에서 모스크바까지가 여섯 시간 비행이다. 비행 중 시간대가 바뀐다. 그래서 내게 오늘 하루는 24시간이 아닌 5시간 늘어난 29시간이다. 늘어난 시간만큼 하루를 길고 알차게 보내야겠지! 이렇게 하루는 24시간이라는 고정관념도,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관념마저도 내가 언제 어느 공간에 있느냐에 따라 변할 수도 있으니 우리 인간이 만들어 놓은 고정관념일 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도 든다. 더 나아가 우리네 인생의 시간도 주어진 시간보다 늘어난다면 우리 인간은 무엇을 어떻게 할까?
마음은 못해 본 건, 아쉬웠던 것 다 해 볼 것 같지만, '여기까지가 너의 주어진 시간이었어' 라고 누군가 알려주지 않는다면 사실 크게 달라질 것도 없다. 늘 그래왔듯이 그렇게 늘어난 시간을 또 살아내겠지.
늘 그래왔듯이... 말이다.
S7 저가항공이라고 기대안했더니 막상 현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는 대표 국내 항공사 같다. 연두색 담요도 이쁘고 무엇보다 기내식 박스가 재밌다. 츤데레 러시아 사람들한테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이 제스처!
안을 열어보니 콜드푸드다. 빵에 허연 햄, 노란 치즈, 요거트, 달달한 에너지 바 정도다. 이르쿠츠크 호텔 조식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는 것으로 이제 애네 뭘 먹고 사는 지 알 듯하다. 물론 음식은 레스토랑에서 따뜻한 음식을 제대로 먹어보지 않고서 그 나라 음식이 어떻다 저떻다 하고 평할 수는 없지만 여기도 유럽의 분위기가 물씬 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식사는 빵과 햄이 주식인 것 같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수프라 레스토랑에서의 양고기 식사가 그립다. 참 맛있었는데 다시 가도 한번 더 시켜 먹을 것 같다. 여행에서 남는 것 중 하나도 음식이다.
사람에게 먹는다는 이 행위도 참으로 큰 의미인 것 같다. 살기 위해 먹느냐, 먹기 위해 사느냐의 말이 있을 정도니 말이다. 영어에는 What you eat, what you are.( 사람이 무엇을 먹느냐를 보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동물의 왕국에서도 보듯이 먹는다는 것은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고 때론 삶 그 자체이기도 하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왔음 3일이나 더 걸렸을 덴데 여섯 시간만에 모스크바 도모데도브 공항에 도착했다.
짐을 찾으면서 이쁜 꼬마 여자아이의 바지 문구가 맘에 든다. The magic is in you.( 마법은 당신안에 있어요.)
모스크바에 도착하니 이제 여행이 중반을 넘어 마지막 정착지라는 점에서 피곤함과 함께 새로운 설렘이 밀려 온다. 사실 이제 젊지도 늙지도 않은 40대 후반에 혼자 자유여행을 한다는 것이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육체적으로 힘들기는 하다. 낯선 공간에서 익숙해지는 유연성이 경험에 의해 어느 정도 있다하더라도 20대만큼 신속하지도 않다. 그러나 더 나이 들기 전에 한 번쯤 해 봐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여행은 다리 떨릴 때 하는 것이 아니고 가슴 떨릴 때 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여행도 다 때가 있는 것 같다.
내가 정하고 내가 이끄는 여행에 있어서 말이다. 예전에 여행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80대 할머니가 자신의 조카를 데리고 휠체어를 타고서까지 베트남을 함께 여행한 적이 있다. 물론 패키지 여행에서이다. 우리는 왜 이토록 여행하는가? 라고 누군가 질문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새로움이 주는 설렘을 위해서이다라고. 내가 나 자신한테 줄 수 있는 즐거움일테다. 물론 이런 새로움에서 설렘을 느끼는 사람에 한해서이다. 어떤 사람은 낯선 환경이 스트레스이다. 새로움에서 설렘과 희열을 느끼지 못하고 스트레스 정도가 지나쳐 두려움과 공포가 더한다면 그 스트레스에 대한 기억으로 여행을 왜 해? 왜 쓸데없이 내 돈내고 낯선 데서 고생하느냐하며 반문할 수도 있다. 이렇 듯 여행도 취미이고 세상을 인식하는 또 하나의 사람의 유형인 것이다.
모스크바는 정말 대도시이다. 여느 다른 나라 대도시에서 봐 왔던 것처럼 키오스크에서 공항 익스프레스로 공항과 모스크바 시내를 연결하는 기차표를 구매할 수 있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 익스프레스를 찾아가는 길에올드카들이 전시 중이다. 멋진 차들의 향연에 나도 모르게 눈길이 멈추면서 지금까지 시골쥐가 도시에 입성한 것 마냥 약간 주눅드는 느낌도 있다. 역시 대도시는 대도시구나, 내가 모스크바에 입성했다는 성취감도 든다.
공항 익스프레스를 타고 약 한 시간 정도면 모스크바 시내에 도착한다. 기차에서 내려 기차역 밖으로 나가기가 좀 헷갈리는데 무조건 짐을 다 검사하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 매번 역사를 지나칠 때마다 모든 짐을 엑스레이를통과해 검사를 마쳐야 한다. 귀찮고 성가시지만 이 나라 법이 이런 걸 어쩌겠는가?
동구권 나라라서 이런 건지 일상이 테러 대비인 것 같다. 그래도 다시 생각해보면 더 안전한 게 아닌가 싶다.
얀덱스 앱으로 택시를 불렀는데 택시 기사가 도착했다는데 도통 택시가 보이지 않는다. 운전기사가 전화를 했는데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데 구글 앱으로 어찌 해 볼려다가 지나가는 젊은 커플에게 영어로 도움을 청한다. 와, 역시 대도시 답게 젊은이들한테는 영어가 먹힌다. 유창한 러시아말로 당연한 것이지만 웃기게도 운전기사와 통화를 대신 마친 후, 금방 택시가 내 눈앞에 도착한다.
우여곡절 끝에 호텔에 도착해 창문의 커튼을 열어 제끼니 모스크바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선물같은 느낌이었다. 호텔 선택이 신의 한수 였구나 하는 만족감이 든다.
비행으로 피곤한 몸을 샤워로 전열을 가다듬고 호텔 주변을 탐색해본다.
일단 여행에서 도착 첫 날은 낮에 도착했을 경우 무조건 동네 한 바퀴이다.
호텔 뒤 가게 건물 프라자의 분수대에서 분수쇼가 나를 환영한 듯했다. 저녁 때도 되고 해서 동네 한 바퀴를 마치고 호텔 뒤 건물에 있는 한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뷔페가 일상 음식점 스타일인 듯 했다. 자기가 원하는 음식을 골라 플레이트에 담아 마지막에 계산하는 방식이다.
모스크바 입성을 기념하고 피곤함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오늘 밤은 술 한잔 해야 할 듯해서 맥주를 주문하니 분명 계산대 옆에 바가 있는 데도 판매를 꺼리는 눈치였다. 이슬람 문화권도 아닌데 담배는 관대하면서 술판매에 있어서는 참으로 깐깐하다. 아이디를 보여 달라해서 여권도 보여주고 했는데도 은근 라이트 비어를 권한다. 울며 겨자먹기로 직원의 요구대로 라이트 비어를 주문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무거나 상관없다했더니 처음엔 구글 번역기 쓰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영어하는 직원이 나타나 숨통이 트인다. 역시 대도시의 클라스다.
모스크바는 생각했던 것보다 영어가 꽤나 잘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