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호텔 맞은 편에 조그만 가게가 시외버스터미널이라고 보면 된다. 거기서 미리 이르쿠츠크로 가는 미니벤의 운행 시간표를 보고 예약하면 7루블 더 싸다. 때마침 미니벤이 오면 목적지를 말하고 운전기사에게 현금을 바로 줘도 된다.
다시 자작나무 숲길을 따라 한 시간의 드라이빙이 시작된다. 한 번 와 본 길이라고 이제는 현지인마냥 금방 익숙해져 말 한마디 안 통하는 현지인들과 뒤섞여 가는 길에 졸립기도 한 나 자신을 발견하면서 처음에 가졌던 그 막막함과 두려움은 잊혀진 지 오래다. 이렇게 또 낯선 곳에서 나는 또 익숙해진다.
다시 이르쿠츠크 시내로 들어왔다. T간판이 보이는 곳이 트램 타는 곳이다. 트램은 여기서 버스라고 보면 된다. 일단 타고 나서 허리에 돈가방을 둘러 차고 초록색 옷을 입은 사람이 다가와서 돈을 걷는다. 15루블(300원)이다. 참으로 싸고 매우 낡은 트램이다. 차장이라고 특별한 유니폼을 입은 사람도 아니다.
그래도 뭔지 흥미롭다. 우리 나라에서는 구경 못하는 재미라고 해야 할까?
바이칼 호수가 목적지라면 이르쿠츠크는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르쿠츠크 시내 역시 한 번 쯤 가 볼만한 곳이다.
도시의 색감과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생경한 듯, UHD화질을 자랑하는 것 같은 선명하고도 화려한 색감의 카잔성당은 도착전 트램안에서도 눈에 확 뛴다.
러시안 비잔틴 양식으로 지어진 카잔 성당은 1938년 문을 닫기 전까지만 해도 가장 도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9개의 종이 울리면 도시 근교까지 울려퍼졌으나, 구소련시절 건물은 서점창고로 쓰이다 나중에는 영화기술학교로, 그 다음엔 시베리아 기념품 가게로 쓰였단다. 나름 굴곡진 역사를 가진 성당이었다. 이후 건물이 쇄락하자 1980년 이르쿠츠크 시 정부는 성당의 부활을 결정하고 1994년 성당은 이르쿠츠크 주교구로 다시 넘어왔다한다.
이후 벽색깔 때문에 사람들이 '붉은 성당'이라 불렀다는데 그럴 만하다. 그리 크지 않은 규모지만 특이할 정도로 선명한 색감은 아직도 잊혀지질 않을 만큼 아름답고 화려한 인상을 남긴다. 바깥에는 조그마한 동물원과 정원들이 꾸며져 있어 여행자라면 카잔 성당을 배경삼아 벤치에 앉아 한참을 쉬어 가도 괜찮은 곳이다.
이르쿠츠크 시내의 길가에 있는 흔한 집들이다. 하늘 색 창문덮개 문양이 예쁘고 러시아 답다. 혹독한 겨울날씨를 견디기 위해서는 당연 창문덮개가 있어야 겠지만 어떻게 이런 목조건물이 그 혹독한 겨울 한파를 막아낼 수 있는지도 궁금해 진다. 길거리에 다니는 차들의 앞 창문에는 어느 차든 금이 가 있다. 그 역시 차를 아무리 덮어 놓아도, 아님 운행중 바깥 온도와의 차이로 인해서인지 고급 차종 가리지 않고 금이 가 있는데, 여기 사람들은 당연시 하는 듯 했다.
러시아를 진짜 맛보고 싶으면 겨울에 한 번 다시 와봐도 괜찮을 듯 하다. 그러나 감히 시도하기엔 엄두가 나지 않을 것 같다. -40도씨를 거뜬히 견뎌내야 할 각오를 하고 도전해 본다면 몰라도 말이다.
도시는 도시다. 도로가 잘 되어 있고 거리를 걷다보면 여느 다른 나라의 도시의 길거리와 별 차이를 느끼지 않는다. 반가운 한글 간판이다. 외국 나가면 다 애국자가 된다고 한글만 봐도 참으로 반갑다. 물론 북한 사람이라도 만날 것 같은 마음에 약간 긴장도 되었지만 역시 까레이스키(고려인)들이었다. 횡단열차안에서도 사람들이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어보면 "코리아"해도 못 알아 듣는 게 참으로 신기했다. 열심히 구글 번역 앱을 돌려 보기도 하고 손짓 발짓하면서 대화를 시도하다가도 결국엔 서로 미소만 지을 뿐이다. 그러다가 여기 사람들에게 "까레이"인하니까 고개를 끄덕인다. 그냥 그 다음부터는 코리아 대신 까레이다. 메뉴판에 한글이 씌어져 있길래 한국말로 말을 걸어 보니 한국말을 알아 듣기는 하는 것 같은데 응답은 역시 러시아말이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타국에서 당당히 한국말을 해 볼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주인장의 추천 메뉴인 고려인 전통국시를 시켰는데 간장베이스에 고기, 마늘, 고추 등등 한국입맛이었다. 연이어 한국 사람들이 들어오는 걸 보며 여기도 현지 한국인 맛집인가 보다 싶었다.
카페 고려를 나와 주욱 걸어 오다 보면 이르쿠츠크 중앙시장을 마주 하게 된다. 화려한 색감의 각종 다양한 과일 가게등이 즐비하고 무엇보다 과일 가격이 엄청 쌌다. 수박 한 통이 우리 나라 돈으로 단돈 700원도 안 되고 체리 1킬로그램에 5천원도 안된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싼 가격에 급 흥분감을 느끼며 체리를 1킬로그램 샀다. 체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여기서 원없이 먹어도 되겠다 싶었다. 체리를 산 검정 비닐 봉투가 두둑했다. 이거 한국에서였으면 벌써 몇 만원이 넘었을 텐데 하면서 내심 돈 번 느낌이었다.
북적거리는 시장 구경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정신 차려 안가라 강변으로 향했다.
일몰 구경에는 여기가 딱이다. 조용히 멍때리며 지는 해와 더불어 변하는 하늘과 강변풍경을 감상하면 옆에선 아니나 다를까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버스킹 공연이 이어진다. 우리 나라와는 다르게 버스킹 공연이 클래식 음악이다.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안가라 강변의 일몰 감상을 하고 있으면 이 역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젠 이동에도 힘들지 않다. 택시 값도 비싸지 않으니 어디서든 얀덱스 앱으로 택시 불러 숙소로 돌아가면 끝이니 평화로운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