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모스크바2
모스크바 본격 탐방을 시작해본다.
호텔앞이 바로 지하철역이라 일단 1회용 지하철표를 키오스크에서 산다. 키오스크에서 영어를 선택할 수 있기에 쉽게 구매가 가능하다.
러시아 지하철은 전쟁대비 반공호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개찰후 역사까지는 매우 깊고 이게 어느 정도냐하면 산 하나 높이만큼 지하를 팠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또한 에스켈레이터의 경사도 매우 가파르다. 에스켈레이터를 타기 전, 역시 역무원의 짐검사를 통과해야 한다. 어디든 항상 무표정한 역무원의 검사가 있다. 처음엔 낯설고 성가시기도 했지만, 이제는 익숙해져서 아무렇지 않게 지나다닌다. 러시아 지하철의 에스켈레이터는 무슨 놀이기구타는 것 마냥 처음탈 때는 적응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사와 깊이에 놀라 무섭다. 속도도 빠르기 때문에 핸드레일에 손을 꼭 잡아야 한다. 경사와 깊이를 확인하는 가장 스릴있는 방법은 올라갈 때 뒤를 돌아보면 아찔함으로 확인할 수 있다. 역사에 도착하면 벽면이 다 대리석으로 되어있고 여기가 반공호로 쓰였다는 것은 두꺼운 철문이 증명한다.
역사의 윗공간이 아치형으로 되어 있어 생각했던 것보다 꽤 크고 넓직했는데 더 놀라운 것은 역사마다 나름의 대리석 조각들이 다양하고 웅장하게 펼쳐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스크바 지하철 투어프로그램이 따로 있을 정도다. 유명한 몇 개 역에 내려 대리석 조각들의 역사와 문화 이야기를 듣는 말 그대로 지하철 투어인 셈인 것이다. 이 외에는 지하철의 시스템은 전 세계가 다 같아지는 느낌이랄까 한 번만 타보면 환승이라든지 다 비슷해서 금방 자신이 원하는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다.
말로만 듣던 이게 바로 그 유명한 볼쇼이 극장이란 말인가? 극장 옆 발레 학교가 더 인상적이었다. 발레학교 꿈나무들이 열심히 발레를 배우면서 바로 옆 볼쇼이 극장에서 자신의 무대를 상상할 것이 아닌가? 왜 이들은 이토록 발레에 열광하는가? 이 의문이 계속 따라 붙는다.
블라디보스톡에서 미술관을 들렸을 때도 발레리나 조각들 뒤로 실제 무용수들이 미술관에서 동작을 취해 그 순간을 사진으로 포착해 함께 전시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 때도 꽤나 인상적이었다. 정적인 조각 작품 뒤에 동적인 느낌을 불어넣은 느낌이랄까 작품도 발레였지만 실제 사람의 동작을 함께 전시한 것은 훨씬 생동감이 배가 되었다.
런던과 뉴욕에 가면 뮤지컬을 봐야 하듯이, 블라디보스톡과 모스크바에 가면 볼쇼이 극장에서 우리 나라에도 잘 알려진 호두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같은 발레 공연을 미리 예약해서 현지인들처럼 화려하지는 않더라도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한 번쯤 이들과 나이트 라이프를 즐겨 보는 것도 멋진 일이다.
볼쇼이 극장 앞으로 마르크스 동상이 있고 구글 지도앱을 켜고 길 따라 걸으면 붉은 광장 가는 길에 크램린이 나타난다. 한마디로 성곽이라고 보면 되는데 안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 줄을 보면 포기할 수 밖에 없다. 늘어선 사람들 인파에 놀라 크램린을 따라 걷다보면 화려한 굼백화점이 나오고 그 앞이 붉은 광장인데 내가 갔을 때는 막아놓고 공사중이었고 굼백화점에서 해야 하는 필수 코스가 있다. 1층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3층에서 뷔페를 먹는 것이다. 또 줄을 보고는 포기하려다 이번에는 인내심을 갖고 줄을 서본다. 여행에서 줄서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 만큼 아까운 게 없다. 사실 언제 다시 오랴, 왔을 때 하나라도 더 봐야 한다는 마음으로 가야 할 곳도 많은 데 한 곳에서 무작정 시간을 지체한다는 게 여간 아까운 게 아니다.
예전에는 공장이었다가 백화점이 되었다는 데 역시 뷔페지만 우리 나라처럼 일정 금액을 내고 내 맘대로 먹는 게 아니고 먼저 음식을 고르고 고른 만큼 마지막에 계산하는 방식이다.
여행이라 함은 무릇 식도락이 아니던가, 기다림의 보상은 당연 음식이었다. 선택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좀 힘들지만 이럴 때를 대비해서라도 어릴 때부터 많은 선택의 순간에 노출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버섯수프, 떡갈비같은 비프, 연어샐러드, 스폰지케익, 블랙커런트쥬스 이렇게 5가지를 각각 계산한다.
나름 만족한 식사였다.
굼 백화점 바로 앞은 꽃 천지이다. 화려한 꽃들로 백화점 주변이 장식되어 있고 광장 옆에 성바실리 성당이 화려함을 뽐내고 있다. 겉면의 화려함에 취해 사진을 몇 장 찍다보면 역사가 궁금해진다. 검색하면 다 나오니 굳이 투어프로그램을 이용하지 않아도 좋다. 폴란드한테 이겼다고 지으라고 해 놓고 다 짖고 나니 너무 아름다워서 이것을 만든 사람의 눈알을 빼버렸단다. 다른 데 가서 못 만들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역사를 가진 유물들을 다른 나라에서도 본 적이 있다. 죽이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다라고 봐야 하는가? 인간의 소유욕, 탐욕의 끝은 어디까지인가?
이런 스토리를 알고 보면 겉면의 화려함보다 오히려 안타까움이 더한다. 이 사람은 자신의 운명도 모른 채, 자신의 영혼을 갈아 넣어 만들었을 텐데...
성바실리 성당 바로 앞, 붉은 광장 안, 펜스 뒤 둥그런 게 사형장이다. 일명 공개 처형장이라 보면 된다.
모르는 게 약이다. 알고 보면 볼수록 불편한 진실과 마주한 느낌이다.
성바실리 성당을 돌아 나오면 시내 전경이 펼쳐진다. 크램린 성곽 아래 잔디밭에 앉아 성바실리 성당, 붉은 광장, 굼백화점을 한 눈에 마주보며 여유를 좀 가져본다. 혼자 여행에서 좀 불편한 것은 사진 찍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 순간 시베리아 횡단 열차 동기생인 내 앞자리 친구가 3일이 더 지나 열차에서 내려 숙소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내가 했던 대로 미션을 알려주고 성바실리 성당에서 만나기로 했다.
현지인들의 일상처럼 타국에서 아는 이를 만난다는 설렘, 또 그런 기다림은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