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앤젤라 Sep 23. 2021

나를 찾아 떠난 여행, 러시아

9. 모스크바 3

여행은 미션 수행이다. 내가 정한 루트를 이행하는 일종의 도장깨기 게임인 셈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루트를 정하지 않고 머물고 싶은 만큼, 만나는 인연에 루트를 맡기기도 한다. 이런 유형의 여행은 한국 사람에게서보다 주로 서양 문화권에서 많이 나타난다. 실제로 현지에서 여행하다 만나 제 3국에서 둥지를 트는 커플도 많다.

이들의 정서를 보면 참 자유롭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보이는 모습만으로 미화하고 싶지도 않다. 실상은 모두 개인의 몫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여행이니까.

어느덧 여행의 종착지이다. 귀국을 앞두고 대개의 경우는 쇼핑을 한다. 현지의 좋은 물건을 좋은 가격에 득템하는 것은 경제의 효용성에 따른 쾌감과 더불어 기념품이 되어 추억하게 된다. 주로 그건 오후에 하고 오전에는 여행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좀 더 나만의 추억을 만들고 싶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모스크바 국립대학으로 향했다. 동상이 있어 이름을 보고도 읽을 수가 없다. 무지가 더 궁금증을 자아내는데 영어가 들어온다. 화학대학이다. 현직교사된 입장에서 학교에 와서, 아무리 '스탈린 시스터즈'라 불릴 만큼 유명지라 하더라도, 건물만 보고 돌아가기에는 뭔가 억울한 느낌에 건물안이 궁금해졌다. 러시아말도 모르니 교실안이라도 둘러 보고 싶었다. 교실만 보더라도 그 공간에서 교수와 학생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분위기로 수업하는지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침 방학이라 지나가는 사람도 없는데 무작정 이 화학대학의 문을 열어보았다. 역시 보안요원이 있다. 잠깐 들어가서 교실만 보고 나오겠다고 구글 번역기를 들이댔다. 그랬더니 자기는 여기서 움직일 수 없다고 그냥 입구만 보고 가란다. 입구에 우두커니 서 있는 두 동상, 역시 보고도 누군지 모른다. 갑자기 나도 모르는 오기가 생긴다. 들어오는 학생에게 영어할 줄 아느냐했더니 예스란다. 아싸! 그럼 나한테 교실 구경을 좀 시켜주면 안되겠냐하니 보안요원이랑 얘기하더니 자신은 학생이라 안된단다. 그랬더니 나이가 지긋한 분이 들어온다. 교수냐고 물었더니 예스란다. 사정을 얘기하고 강의실을 보여달라했더니 흔쾌히 15분간 강의실 구경을 시켜주겠단다. 보안요원을 등지고 당당히 교수님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건물내 진입성공의 쾌감이 밀려온다.

방학이라 강의실 문은 모조리 다 잠겨 있었다. 그래도 이 노교수는 도서실이라도 보고 가라고 3층으로 안내한다. 번(베인)스타인 이 사람이 거의 모든 논문에 참고인물이란다.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듯 낡은 나무로 된 책장에 낡은 책들과 책상위에 학생들의 논문들이 쌓여 있다. 교수님은 학생들의 논문 내용이 아닐 때는 화분들만이 올려져 있는 책상에 학생들을 오게 해서 책을 읽고 생각하고 생각하게 한단다. 여기서는 컴퓨터를 사용할 수 없게 한단다.  학생들의 화학실험실도 보여주시는데 때마침 학생들이 실험을 하고 있었다. 마치 영화에 들어 온 것 처럼 아주 오래된 나무바닥과 실험실 환경이 나무로 만들어져 낡고 살짝 위험스럽게도 보였다. 우리 나라 교육 환경은 실로 세계 톱이다. 한국의 학교 환경을 생각해보면 나날이 발전하고 있고 우리 학생들의 실력 또한 상당하다. 경쟁 DNA를 갖고 살아가자니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지만 어떻게 하면 우리가 여유를 가지면서 기본에 충실하면서 좀 더 경쟁력있는 실력을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 하는 질문은 다시 말해 '어떻게 하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번역되는 것 같다. 요즘 우리 아이들은 실제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 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경쟁이 교육 효율성에 있어 적정 수준으로만 유지된다면 매우 효과적이다. 단 어느 사회든 경쟁이 치열해 질수록 소외되는 사람이 점점 더 많이 생겨나는 법이기에 그야 말로 적정 수준이라는 플러스 마이너스 그 어느 쯤 아주 약간 플러스 알파( A + 1) 에 해당하는 수준을 가늠하기가 힘들다는 것이 현실이다.

어쩜 화실같은 이 공간이 여유와 기본의 공간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우리가 매일 일상적으로 하는 활동, 즉 다시 말해 직업이 개인에게 주는 의미는 상당한 것 같다.

직업이 자신을 백 퍼센트 다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실로 3분의 2이상은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직업이 자신의 정체성을 대신 설명해 줄 수도 있다고 본다. 직업만 들어봐도 이 사람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유추가 가능하니 말이다. 직업에 귀천이 따로 있냐 없냐 하는 말에 대한 갑론을박을 차처하더라도 직업은 곧 삶이며, 개인의 생존수단에서부터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소속감과 참여로 인한 연대의식을 갖게 한다. 

이쯤되면 칼뱅의 직업소명설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고 믿는다. 개인의 자아실현이 꼭 직업을 통해서겠느냐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상당 부분 직업을 통해서 우리는 소위 말하는 자아실현이라는 것을 이룬다고 볼수 있다. 자아실현이라는 것의 방법론적 접근은 대개의 경우 자신의 삶에 몰입된 상태에서 멈추는 게 아닌, 그것을 넘어선, 나 아닌 타인의 삶에 얼마만큼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느냐하는 것일 테다. 다시 말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의 이념을 각자 어떻게 자신의 삶에서 구현하느냐하는 문제일 것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자신의 효용성과 연결성, 성취감, 뿌듯함으로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유행하는 부캐릭터 활동은 직업현장이 주는 개인소외현상에서 자아실현을 위한 욕망을 부각하는 활동으로 해석하면 개인이 좀 더 도드라져 보이지만 개인에서 멈추는 게 아닌 결국 어떻게든 타인의 삶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귀결된다고 보고 싶다. 이 역시 인간이라는 동물의 생존 본능으로 해석하고 싶다. 

결국 강의실은 둘러 볼 수 없었지만 모스크바 국립대학에서 이 분을 만난 것으로 대리만족하고 교정을 둘러본다. 스탈린 시대에 지어진  바로크와 고딕양식이 융합된 양식으로 '스탈린 시스터즈' 또는 7개의 이런 건물이 동시에 지어졌다고 '세븐 시스터즈' 또는 웨딩케이크 모양이라고 '웨딩케이크'라 불려지기도 한다는데 그 중 한 건물인 모스크바 국립대학의 대학 본부 건물이다. 스탈린이 어떤 마음으로 만든지는 몰라도 중세시대 유럽사회가 신의 세계에 다다르고자 교회 건물이 하늘을 향해 손을 뻗듯이 대학내에서는 인간의 진리 탐구의 욕망 또한 신의 세계에 다다르고 싶은 욕망만큼 하늘을 향해 쏟아진다.  

대학 본부 건물을 돌아서 유유자적하게 걷다보면 교내 가로수가 사과나무다. 마치 뉴턴이 사과 나무 아래에서 만류인력의 법칙을 깨달았듯이 흔하지 않은 가로수인데다가 무엇보다 과실나무라는 것이 인상적이다. 햇빛을 받은 쪽만 빨갛게 익은 사과들이 탐스럽게 유혹하고 있다. 이미 땅에 떨어져 있는 것도 있었지만 나무 위쪽에 매달려 있는 것을 따고 싶은데 한 마디로 '그림의 떡'이다. 아쉬운 마음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데, 지나가는 아줌마는 일상인 듯 자연스럽게 땅에 떨어진 사과를 주섬주섬 주워간다. 나도 따라 하니 자신이 주운 것을 내어준다.

이후 아르바트거리에서 쇼핑을 마치고 러시아를 떠나는 귀국 아침, 내가 젤 먼저 한 것은 전날 모스크바 국립대학에서 가져온 사과를 한 입 배워 물고 "바이, 러시아" 하고 안녕을 고한다.









작가의 이전글 나를 찾아 떠난 여행, 러시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