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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젤라 Oct 22. 2021

나를 찾아 떠난 여행, 러시아

3. 시베리아 횡단열차 

 이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블라디보스톡에서 모스크바까지 장장 9288Km의 대륙을 횡단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앱에서 예매하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승차권을 프린트해 둔다. 블리디보스톡역에서 예전의 티켓으로 바꿔 주기도 하지만 약간의 돈을 따로 지불해야 되고 기념품 삼아 교환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요즘은 왠만하면 키오스크에서 출력이 가능할 뿐 아니라, 열차 티켓 구매부스와 키오스크사이에서 안내하는 사람이 두리번 거리는 외국인인 나를 먼저 알아보고 고맙게도 영어로 말을 건네 준다. 앱을 보여주니 그게 승차권이라면서 바로 가라고 한다. 

사실 러시아 사람들은 일명 '츤데레' 스타일이다. 

동구권 나라의 길거리 사람풍경은 무표정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불친절하다고 오해하는 일이 잦다. 그러나 내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는 보통의 서구권 사람들처럼 하던 일을 멈추고 기꺼이 다가와 자기의 일인 듯 도와주는 모습에 말은 안 통해도 손짓, 눈짓에서 그들의 친절함을 느끼며 감사함을 내가 아는 유일한 러시아 말인 "스파 시~바"를 말하니 환한 미소는 아니어도 손짓을 하며 수줍은 듯 옅은 미소를 보낸다.

원래 블라디보스톡에서 모스크바까지 완주하는데는 7일이 소요되지만, 나는 블라디보스톡에서 이르쿠츠크까지해서 바이칼 호수를 보는 것으로 3일 반의 시간이 소요되는 마라톤으로 치면 하프마라톤 코스로 일정을 짰다.

이르쿠츠크에서 모스크바까지는 비행기로는 6시간이 걸려 그 시간으로 3일 반의 시간을 샀다.

원래 같이 가기로 했던 일행이 취소하는 관계로 포기할 수 없어 도전하게 된 여행, 취소한 티켓 내 앞자리는 과연 어떤 사람이 탈까하고 내심 궁금했는데 참 우연의 일치인지 두려워 했던 나의 마음을 누가 읽기라도 했듯이 한국의 여대생이 그 티켓을 샀던 것이다. 때마침 블라디보스트 역사에 유일한 한국인이었던 나는 다가오는 한국 여대생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지만 바로 내 앞자리 사람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자리를 확인하는 순간, 반가움과 시베리아 횡단열차내에서 일행이 생겼다는 안도감이 생겼다. 그 여학생은 모스크바까지 완주한다고 한다. '젊음'이다. 이 여학생도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버킷리스트라 혼자 모스크바까지 가고 나중에 영국에서 친구와 조우한다고 한다. 

나이는 달라도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버킷리스트라는 공통점이 생겼다. 그렇게 만난 일행의 인연은 사실 모스크바에서도 이어졌다. 나는 비행기로 먼저 가서 다음 날 크램린 궁전 앞에서 다시 만나니 참으로 더 반가웠다.

횡단열차 내 같은 칸에서 만난 또 다른 한국 여대생 두 명도 포함해서 우리는 이렇게 3일 반 동안 시베리아 횡단열차 일행이 되고 시베리아 횡단 열차 동기생이 되었다.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탈 거라 기대했지만 유럽인은 보기 힘들었고, 시베리아 대륙 현지인들이 상용하는, 말 그대로 기차 여행이었다. 한국인은 태어나서 처음이라는 카자흐스탄 사람들과 어떻게 해서든 신기한 듯 말 걸어보는 사람은 몇 명이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관심한 듯 무뚝뚝한 전형적인 그들의 모습이다. 각설탕 또는 설탕 용기를 한 다발 들고 다니는 사람들과 차에다 설탕을 아주 많이 타서 마셨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중적인 간식은 해바라기 씨이다. 그것도 아주 많이 비닐 봉지 한 가득 들고 타서는 야금야금 까서 먹는다. 그들만의 시간 보내는 방법인 듯 하다. 

끊임없이 이어지고 듬성듬성 나타나는 자작 나무숲이 무료해진다 싶으면 사람들은 잠을 청한다. 중간 중간 멈춰서는 정차역에서 바깥공기를 맛보며 참새가 방앗간을 놓칠 수 없듯, 마치 학창시절 매점가는 거 마냥 정차역 매점에서 빵이며 소소한 간식거리를 장만한다. 정차역 현지 할머니들은 팔아달라는 간절한 눈빛으로 조그만 과일 봉지를 내민다. 그럼에도 가격 흥정은 해야 한다. 흥정 끝, 돈을 보는 순간 내 손목을 꽉 잡는다. 순간 당황했지만 잽싸게 돈을 받아 가는 할머니 모습에 삶의 치열함도 느껴졌다.

정차역 앞에는 항상 러시아를 빛낸 인물 동상이 있다. 러시아어를 모르니 그저 이 나라 영웅이려니 하고 넘어간다. 정차역마다 다른 소도시의 분위기를 감상하면서 지도를 확인한다. 정차역에서 터지는 이 와이파이의 기쁨이라고 할까, 간만에 한국의 가족, 지인들과 통화도 하고 한국에서도 그들은 나의 위치를 확인한다. 난 그들의 실제 아바타가 되어 준 셈이다. 

우리의 인생에 '정차역'은 없다. 적어도 이 지구에 사는 인간이 인식하는 시간은 이 세상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흘러가지만 '일상과는 다른 삶'을 우리는 우리의 삶으로 기억하고 추억한다.

삶을 만드는 것은 어쩌면 일상이면서 또 다른 일상을 만드는 노력이 모여진 집합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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