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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젤라 Jul 24. 2022

생명의 흐름

퓰리처상 사진전을 보고

 일명 미국기자상이라고 할 수 있는 퓰리처상은 저널리즘을 대변하는 권위있는 상으로 헝가리계 미국인이었던 조셉 퓰리처에 의해 제정되었고 본인 역시도 기자로서의 삶을 살 다 간 사람이다. 퓰리처상 사진전을 한다 하여 늦게나마 연장전시회를 보고자 부산문화회관으로 향했다.

 퓰리처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베트남전'에서 화염에 휩싸였던 한 소녀가 옷을 버리고 뛰어야만 했던 '소녀의 절규'의 바로 이 장면을 떠올릴 것이다. 궁금해졌다. 이렇게 거의 전 세계인들에게 각인되다시피 한 사진 이외에 어떤 사진들이 내 눈 앞에서 그 어떤 메시지를 던질지..


 

 예상했던 대로 전 세계사람들의 뇌리에 하나의 이미지로 형상화되기까지 그 순간 셔터를 눌렀을 종군 사진기자들의 인간적인 번민과 고충들이 작품 옆의 설명문과 함께 그대로 전해졌다. 사람들은 그런 사진을 찍고 있을 바에야 한 사람이라도 더 구했어야 하지 않았나하고 질타의 목소리들을 쏟아냈고, 그렇지 않아도 본인 스스로 자괴감과 죄책감에 빠져 남은 생을 괴로워하다가 끝내 목숨을 져버린 사진 기자마저 있었다. 그들이 남긴 것들은 인간의 희노애락의 감정중 가장 극적인 순간의 한 장면, 생생한 그 순간, 때로는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한 순간, 때로는 끝없는 공포와 나락으로 슬픔을 마주한 '죽음'의 한 순간이었다.


 한국인으로서 지나칠 수 없는 '대동강 철교' 작품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이 스쳐지나가듯이, 생명의 힘은 엄청 놀라웠을 것이다. 이 사진을 찍은  사진 기자는 이렇게 밀려 오는 사람들이 마치 개미떼처럼 보였다 한다. 엄청난 군단의 생명의 흐름을 어찌 막을 수 있었겠는가...

 이것은 생존을 위한 정말 개미떼와 마찬가지로 거의 본능에 가까운 거대한 생명의 물줄기, 말 그대로 생명의 흐름 그 자체였을 것이다.

 여기서 작가적 상상력을 더하면 무너진 대동강 철교위에서 분명 내 눈앞에서 떨어진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안타깝게 가족의 손을 놓친 어린 아이도 있었을 것이고 그럼에도 한 발짝의 뒷걸음도 용납하지 않는 전진만이 허용되는 곳이었을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죽음이었고 내 눈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안타까움과 슬픔보다는 '사느냐, 죽느냐'는 절대 절명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실로 전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전쟁이 없었던 시대는 없었다.

지금도 전쟁중이며 앞으로 인간은 또 어떤 전쟁의 역사를 써 내려갈 지도 모른다. 인간만큼 자기파괴적인 동물이 없는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불완전을 사랑하는 것 같다. 완벽주의자라 함은 항상 부족함을 인식하고 일종의 파이(Pie)에서 부족한 부분(Missing part)에 몰입하여 그 부족한 부분을 채워 원을 이루고자 하는 욕구가 높은 사람이라 할 것이다. 예전 영어교과서에도 나왔었던 Missing Part이야기가 떠오른다. 그 부족함을 채워 충일감(Fulfillment), 만족감(Satisfaction)은 바로 그 완벽함(Perfection)이 될 것이다. 원을 이루었다는 짜릿한 성취감이라는 쾌락과 안도감으로 이어지는 순간을 향해 오늘도 어쩌면 우리는  불철주야 그 부족한 부분(Missing Part)에 몰입해서 살아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

 Missing Part의 이야기에서는 원을 이룬 다음, 기쁨도 잠시 그 원은 계속해서 쉬지 않고 굴러가는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이었던 Missing Part를 가졌던 조각난 파이는 쉬지 않고 굴러 가는 원에 지쳐, 그렇게 힘들게 가졌던 그 Missing Part를 토해 내 버린다. 그제서야 멈춰선 조각난 파이는 그 Missing Part를 옆에 두고 바라보면서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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