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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말 Aug 30. 2019

내 삶의 끝도 노을 같았으면 좋겠다.

김혜남 / <당신과 나 사이> / 메이븐 를 읽고

                                                                   


저는 일출을 보면 별 느낌이 없어요. 근데 노을이 질 때 어떤 감정이 일어나요.

해 넘어가는 게 정해져 있잖아요. 해는 시간이 되면 넘어가게 돼 있어요. 우리네 인생도 시간이 되면 넘어가게 돼 있어요. 근데 해는 서산으로 넘어갔는데 붉은 노을이 남아있는거에요. 그래서 우리 삶의 끝이 저러면 참 좋겠다. 끝나는건 끝나는 건데,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지만 딱 끝나고 나서 약간의 여운이 남잖아요. 붉은 노을이라는게. 그걸 사람들이 이걸봐요 그리고 잊어버려요. 잊혀지는건 어쩔수 없지.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내 삶이 끝나고 약간의 시간동안이라도 내 삶이 만들어 낸 어떤 것이 여운을 좀 남기면 그게 상당히 괜찮은 끝이 아닐까? 그런 막연한 느낌 같은 게 들어서 노을을 보고 있으면 되게 마음이 차분해져요. 편안해져요 나는...


- tvN <알쓸신잡 5회차 경주편> 중에서 유시민 작가의 말 -



한동안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에 빠져 살때가 있었다. 본방사수는 당연했고, 채널을 돌리다 재방송을 하면 또 봤다. 봤던 것인데도 또 보고 할 정도로 푹 빠졌었다. 유시민 작가가 나와서이기도 했지만 함께했던 유희열, 황교익, 김영하, 정재승 이 분들의 입에서 나오는 지식들의 수준이 마치 한권, 한권의 책과 같았다. 


위에 글은 경주편에서 유시민 작가가 했던 말이다. 그때, 참 멋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방송이 끝나고 한참동안 여운이 남았다. 몇번씩 돌려보며 '유시민이란 사람, 저렇게 살려고 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노을을 보며 드는 느낌! 삶이 끝난 뒤에 짧은 시간이라도 여운을 남기는 삶. 나도 그런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막연하지만 그렇게 생각했다.

                               


                   

© Myriams-Fotos, 출처 Pixabay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순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치열하게 고민한다. 내가 살아가는 모습들 하나하나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새겨져 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기억 속에 내가 괜찮은 사람으로 남아 있기를 희망하며, 그래도 함께해서 좋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기 때문이다. 

당신과 나 사이 315p <내가 묘비명을 남기고 싶지 않은 까닭> 중에서 / 김혜남 / 메이븐


                                    

<당신과 나 사이> 라는 책의 마지막 책장을 넘기며 제일 마지막 문구인 위 문구를 보는데 앞에 소개한 알쓸신잡의 영상이 생각났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내 삶이 끝나고 약간의 시간동안이라도 내 삶이 만들어 낸 어떤 것이 여운을 좀 남기면 그게 상당히 괜찮은 끝이 아닐까?" 라고 이야기 하는 유시민 작가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특히 '상당히' 라는 단어를 이야기 하는데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정말 진심으로 이야기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참 힘들었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동안의 아픔과 상처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 사람은 뭐가 그렇게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인간관계라는 것은 정말 힘들다. 그것이 '내편'이라면 한없이 좋고 행복한 존재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그것은 나를 상처 입히고, 아프게 하고, 때론 죽일 수도 있는 무서운 존재이다. 특히 원래 '내편'이 아니었던 경우보다 '내편'이었다가 나를 떠난 그것은 나를 더욱 아프게 한다. 그럼 인간관계라는 것이 왜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일까? 어떨땐 내편이었다가 또 어떨땐 왜 내편이 아닌 것이 되어 버릴까?


최근 읽었던 책중에 유시민작가의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책이 있다. 그 책을 읽고 한 문구가 잊혀지지가 않는다. '바람이 불면 사물이 각자 다른 소리를 내는 것처럼, 사람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세상과 부딪쳐 제각기 색깔이 다른 삶을 산다' 책의 초반인 24페이지에 나온 말이었는데 그 책을 읽는내내 저 말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문구가 너무 강력했다. 원래 책에서 주려한 메세지가 무엇이었는지 파악이 안되었다. 그 핑계로 서평작성까지 무기한 연기를 해버렸다. 그만큼 나에게 주는 메세지는 강렬했다. 


'각자. 다르다. 방식. 색깔. 삶' 위 문장에서 뽑아낼수 있는 이 단어들과 '나'라는 단어를 가지고 잘 조절 해보면 어렵기만 한 인간관계를 조금은 수월하게, 원만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얼마전 다녀온 교육이야기를 하나 해본다. 큰아이 초등학교에서 진행한 부모대상 교육이었다. 교육을 진행했던 교수님께서 재밌는 예시를 하나 해주셨다. 아이들의 인간관계 능력을 향상시키는 이야기를 하다 나온 이야기였는데 작은 깨달음을 주었다. 


"한 아이에게 특수한 능력이 있습니다. 그 아이는 하루에 한명씩 맘에 안드는 사람을 제거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다면 그 아이는 어떻게 될까요?" 


짧고 별것 아닌 이야기 인 것 같았지만 나에게 다가오는 바는 컸다. 나와 관계가 안좋은 사람. 나와 맞지 않는 사람. 이 사람들과 어떻게 해야할까? 없애야 할까? 피해야 할까? 


정답은 위에서 이야기 했던 단어들에 있다고 생각한다.

'각자. 다르다. 방식. 색깔. 삶' 그리고 '나'



                    

© Anemone123, 출처 Pixabay

                                

<당신과 나 사이> 책에서 저자 김혜남 박사는 인간관계를 잘 하기 위해서는 사람간에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한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인 에드워드 홀의 저서 <숨겨진 차원>에서 제시한 인간의 공간사용법 4가지유형을 이용하여 가족(연인)과 나 사이, 친구와 나 사이, 회사 사람들과 나 사이로 구분을 했다.

                                              


내가 말하는 '거리'는 상대방과 나 사이에 '존중'을 넣는 것이다. 이때 존중은 상대방이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을 뜻한다. 그가 나와 다르다고 해서 그를 비난하거나 비판하지 않고 고치려고 들지 않는 것이다. 즉 상대방을 내 마음대로 휘두르려고 하지 않고 그의 선택과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다.

당신과 나 사이 57p <거리를 두는 것은 상대방을 무시하겠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중에서


                                

윗글에서 저자는 인간관계에 필요한 나와 상대방 사이의 '거리'란, '존중'이라는 단어라고 말한다. 또한 그 존중이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즉 존중이란, '다름을 인정하는 것' 이란 말이다. 


그럼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냥 단순히 '알았어. 넌 나랑 다르니까' 라고 이야기 하는 것을 말하는게 아니다. 그것은 무시다. 무관심이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란 상대방의 말을 '경청'해 주는 것이다. 진심을 다해 들어주고, 마음으로 동의해 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왜 저사람이 그런 생각을 했는지, 왜 그 행동을 했는지 알아주는 것이다.



                     

© samuelzeller, 출처 Unsplash

                               

그렇게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로 태어나서 나이를 먹어간다. 나이를 먹으며 나와 다른이들을 배척하는 것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올바른 인간관계를 가지고 점점 큰 사회로 나아간다. 가정에서 유치원으로 학교로, 학교에서 지역사회로 그리고 국가로 세상으로 나아간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관계를 맺으며 사회생활을 한다. 기쁨, 슬픔, 아픔, 상처를 주고 받는다. 때론 화를 내기도 하고 , 놀라기도 하고 배신도 당한다, 실연도 당해본다. 아파도 해보고 사랑도 한다. 그렇게 수많은 인간관계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며 '나'를 성장시킨다.   

                                                        


그렇게 새로운 경험들을 무수히 쌓아 가면서 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하는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 사람인지를 더 잘 알게 되었다. 결국 60여 년의 세월 동안 만나 온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지금의 내가 형성된 것이었다.

<중략>

사람이 싫어질 때가 있다. 나에게 해 준 것도 없는 그들이 자꾸만 무언가를 바랄때면 화가 나기도 한다. 이기적으로 자기 잇속만 챙기는 사람들을 볼 때는 인간관계 자체가 신물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지긋지긋한 인간관계가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고, 지금의 당신이 되었다.

당신과 나 사이 303~304p <그럼에도 우리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이유> 중에서


                                   

저자의 말처럼 올바르게 살아온 사람이라면, 살아온 세월만큼, 만나온 사람만큼의 관계가 모여 지금의 '내'가 된다고 한다. 즉, '나'는 태어난 상태 그대로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 섞인 '인간'이 된 것이다.


내 안에 나와 관계를 맺은 사람이 존재하고, 그 사람에겐 내가 존재한다. 나와 관계를 맺으며 나를 조금 묻혀 놓았고 나는 나에게 그 사람을 붙여 왔다. 그런 까닭에 저자는 '내가 죽더라도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이 죽을때까진 존재한다' 라고 한다. '그들과 함께했던 시간의 무게만큼 존재한다'라고 이야기 한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내 삶이 끝나고 약간의 시간동안이라도 

내 삶이 만들어 낸 어떤 것이 여운을 좀 남기면 

그게 상당히 괜찮은 끝이 아닐까?

tvN <알쓸신잡 5회차 경주편> 중에서 유시민 작가의 말 


                                

처음에 이야기한 유시민 작가의 노을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본다. 그때의 난 막연하게 멋진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큰일을 하던지,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던지 등 불특정 다수에게 존경을 받거나 인정을 받는 모습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생각이 달라졌다. 그 '여운'이라는 건 어떤 행위나 결과물이 아니다. 인간관계 속에서 묻혀진 '나의 마음'이나 '내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것이 진하게 묻으면 그 사람이 죽을때까지 남는 것이고, 약하게 붙었다면 금새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내 삶이 만들어 낸 여운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게 될 것이다. 


내 삶의 끝은 어떤 노을이 나타날까? 진지하게 고민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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