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말 May 24. 2020

정신과에 다녀왔습니다.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정말 가도되나 싶었습니다.

용기를 내었습니다. 그게 사는 길이라 생각했습니다.

혼자의 힘으론 버틸수가 없었습니다.

잠시 멈춰야 한다고... 이것 또한 배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결심했습니다.


수없이 망설였습니다.  정신과에 다녀왔습니다.

힘들게 결정을 했습니다. 자존심 따윈 버렸습니다.

약의 힘이 필요했습니다.

머리는 설득할 수가 있는데, 몸을 이길 방법을 못 찾았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다녀왔습니다.




어렵게 마음을 먹고 회사주변에 있는 병원에 전화를 했습니다. 친절한 목소리로 6월중순까진 예약이 꽉 차있다고 안내를 해주더군요. '큰 병원이라 그런가보다' 생각을 하고 몇군데 더 연락을 했습니다. 의외로 모두 다 주말까지의 진료가 꽉 찼다고 하더군요. '서울이라 그런가?' 하는 생각에 집 주변 병원에 연락을 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모두 같은 대답을 들었습니다. '나같은 사람이 이렇게 많은 건가?' 하며 한편으론 조금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다행히 토요일 진료는 예약없이 와도 된다는 곳을 찾았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진료실 문을 열었습니다.

나이 지긋하신 원장님을 예상했는데 젊으신 분이더라고요. 저랑 비슷하거나 한두살 정도 더 많아 보였습니다.

증상을 물으시고, 최근 이슈가 될 만한 일이 있었는지 물으셨습니다.


지난 1월부터 증상이 시작된 것들 위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심장이 미친듯이 뛰기만 하고 멈출 줄을 모른다. 점심을 먹으면 소화가 안된다. 먹다보면 턱 하고 막힌다. 등등 그동안 스트레스를 받으며 느끼고 올라오는 신체화증상을 이야기 했습니다.


아주 잘 들어주셨습니다. 중간중간 '응~', '음~' 등의 대꾸를 해주기도 하구요. 다른 이야기를 유도하는 질문을 하며 이야기를 이끌어 내셨습니다. 그런 분위기가 자연스웠는지 아니면 뭐라도 더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중소기업에서 이직했던 것, 기술을 배웠던 것 그리고 지금 회사 이야기까지 몇분 안되는 짧은 시간동안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야기가 끝나고 나자. 나지막한 목소리로,

"짧은 기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으셨네요." 라는 말을 해주셨고, 그 말은 제게 공감으로 다가왔습니다. 또한 왠지 나를 인정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일단 5일치 약을 드릴께요. 하루 3번 드셔도 좋구요. 증상이 있을때만 드셔도 됩니다. 가벼운 약이니 너무 걱정하지는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시간 가능하시면 오늘 간단한 검사를 받고 가시구요."




검사지의 문항이 꽤 많았습니다. 다면적 인성검사(MMPI) 383문항, 문장완성검사 37문항입니다. 집중이 잘 안되서 한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검사는 월요일 오후에 나온다는데요. 저는 월요일엔 갈수가 없어서 다음주 토요일에 재방문 하기로 했습니다.


나오면서 받아든 약봉지를 보았습니다. 팥알보다 작은 크기의 알약이 달랑 한알입니다. 혹시나 하고 자세히 살펴봤는데요. 맞아요. 정말 한알이더라구요.


물도 없이 입에 넣고 삼켰습니다. 빨리 체험해 보고 싶었습니다. 약을 먹으면 정말 증상이 사라지는지? 심장의 두근거림이 사라지고, 머리의 멍함이 없어지는지, 소화가 안되고 숨이 턱하고 막히는 기분이 사라지는지 말입니다.



기분이요? 담담합니다.


2020년 5월23일

정신과 진료를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