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일
나는 국민학교에 입학해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국민학교에 다닐 땐 반장, 부반장을 뽑는 게 아니라 ‘학급지도위원’이라는 이름으로 남자 셋, 여자 셋, 총 여섯 명을 선출했다. 학교에서 우리 학년은 유난히 수가 적었다. 서른 명 안팎으로 입학했던 것 같은데 2학년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스무 명을 넘기지 못했다. 이유는 도시에서 직장다니는 부모가 미취학 자녀를 조부모에게 맡겨뒀다가 학교 진학 후 도시로 데려갔기 때문이었다. 내 기억에는 1학년 여름방학을 마치고 개학해 보니 보이지 않았던 얼굴들이 꽤 있었던 것 같다.
국민학교 시절, 내가 가장 심취했던 일이 무엇이었을까?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춤도 잘추고, 사회도 잘보고, 무엇이든 척척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을 제외하고, 나는 5학년 때 전교부회장, 6학년 때 전교회장이 되는 거였다. 관심을 가지게 된 데는, 바로 위에 언니가 있었다. 내가 유치원에 다닐 때 언니는 5학년 전교부회장이었고, 내가 1학년이 됐을 때 6학년 전교부회장이었다.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아침조회를 하면 애국가랑 교가를 부를 때 언니가 나와서 단상위에 서서 지휘를 했다. 그게 멋있어 보였던 것 같다. 나도 그 학년이 되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기본적으로 나는 친절했다. 원래 성격이다. 친구들에게 표를 얻기 위한 계산에서 '친절한 척' 연기를 했던 건 아니었다. 좋은 애, 착한 애, 괜찮은 애라는 평을 들으려고 애쓰고 노력했던 건 맞다. 반 친구들에게도 선·후배들에게도 좋은 모습을 보이려고 했다. 내가 어떤 사람으로 비춰질까를 생각했고, 말을 할 때도 신경을 썼다. 그러다 5학년이 됐고, 나는 전교부회장 선거에 출마해서 당선됐다. 기뻤다.
전교부회장이 돼서 좋았던 건, 전교 어린이 회의에 참석하는 거였다. 전교 어린이 회의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1층에 있는 과학실에서 열렸다. 5학년 부회장은 이 회의에서 칠판에 회의 내용을 요약해 적는 서기 역할을 했다. 나는 칠판에 분필로 글씨를 적는 걸 잘하는 편이었다. 반에서 아침 자습 문제를 내는 일을 줄곧 맡은 덕분에 연습이 좀 돼 있었다. 회의 진행은 6학년 회장과 부회장이 역할을 나누어서 진행했다. 전교 회의에는 각 학년의 대표와 6학년에서 체육부장, 미화부장 등 분야별 부장이 참석했는데, 그 회의가 나는 재미있고 좋았다.
무엇보다 회장 오빠가 잘생겼고 멋있었다. 끼가 많은 오빠였다. 주변사람들을 잘 웃기기도 하고, 소풍이나 학예회 때 춤도 잘추고, 노래도 잘 했다. 그 오빠를 회의 때마다 가까이 볼 수 있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연예인 보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회의에서 우리는 소풍 장소를 정했고, 환경보호 캠페인을 어떻게 할 것인지 정하기도 했다.
임기가 한 학기였던 터라, 6학년이 되기 전, 나의 가장 큰 고민은 라이벌인 친구에게 회장 자리를 빼앗기게 되는 건 아닌지였다. 나는 꼭 회장이 되고 싶었다. 가장 유력한 회장 후보인 남학생이 4학년에 여동생이 있었다. 이 여동생은 당연하게 친오빠를 응원하고 친한 주변 친구들을 설득했다. 불안해진 나는 전학을 가게 될 수도 있으니, 1학기 땐 내가 하고, 2학기 때 그 남학생이 하면 되지 않겠냐고 했다. 전학을 가고 싶긴 했지만 갈 수 있을지는 모르는 상황이었다. 회장에 눈이 멀어서는... 그런데 한편으로는 전학갈 사람이 전교회장을 하면 안 되지 않겠냐는 여론도 있었다.
결국, 나는 6학년 1학기, 전교회장에 당선됐다. 매주 월요일과 토요일, 운동장 조례 때 맨 앞에서 사회를 보는 것은 물론이고, 5월 학예회, 운동회 등 모든 행사를 진행하게 됐다. 그리고 제일 기대했던 전교어린이회의를 주관하게 됐다. 첫회의가 열렸다. "지금부터 제1회 전교어린이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