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일
97년, 중학교에 입학했다. 면소재지 예닐곱 개 초등학교 졸업생들이 모였지만 우리 학년 전교생은 100명이 채 되지 않았고, 3개 반으로 나누어졌다. 나는 1학년 1반. 어떻게 운 좋게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다.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가 그중에 큰 학교 중 하나였던 덕분에 나는 반장 선거에서 반장이 됐다. 서로 모를 땐, 같은 학교 출신을 밀어주는 게 인지상정.
1년 동안, 나는 아무생각 없이 중학교 생활을 제대로 즐겼다. 2·3학년 언니들과 마니또를 하면서 편지도 주고받고, 그땐 무슨 데이~가 매월 있었다. 그날에 맞는 선물을 챙기는 것도 재미있었다. 여름이 가까워져 오던 한 날, 운동장에서 체육을 하고 들어오는 길에 계단을 올라오면서 친구들과 시끄럽게 장난을 쳤다. 계단 바로 옆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계시던 남자 선생님이 문을 열고 나오셨다. “언니, 오빠들 수업 중인데 이렇게 시끄럽게 계단을 올라가면 어떡하느냐”며 주의를 주셨는데, 얼굴에는 살짝 미소를 띠고 계셨다. 처음 본 선생님이신데, 혼나면서도 처음 본 순간부터 좋았다.
나중에 그 선생님은 3학년 1반 담임 선생님이시고, 수학 선생님이시란 걸 알게 됐다. 마주치고 싶었지만 1학년과 3학년은 한 학교 내에서도 아주아주 먼~ 사이였다. 그때의 강렬한 기억이 서서히 잊혀갈 때쯤 나도 2학년이 됐다. 그리고 그 남자 수학 선생님을 2학년 3반 담임 선생님으로 만났다. 정말 좋았다. 2학년 때도 나는 반장이 됐다. 그해 전교부회장도 했다.
집에서 중학교까지 걸어서 등교했는데, 1시간 20분 정도 걸렸다. 한 번씩 지각을 해서 복도에서 벌을 서고 있으면, 선생님이 복도로 나오셔서 살짝 목소리를 키워 주의를 주시면서, 읽으시던 신문을 말아서 때리는 시늉을 하셨다(그땐 체벌이 허용될 때였다). 이 일로 친구들 사이에는 담임 선생님이 반장을 편애한다는 소문이 나기도 했지만 난 혼나는 것도 좋았다.
5월 초, 지리산 아래로 야영을 갔다. 여학생들은 건물 내 실내에서 자고 남학생들은 외부 텐트에서 잤다. 첫날밤, 늦은 시간까지 일정을 마치고, 점호가 끝났다. 야영까지 와서 이 밤에 그냥 잠만 잘 수 없다며 몇몇 친구들이랑 남학생들 텐트에 놀러 나갔다. 텐트에 들어서자, 남학생들이 깜짝 놀랐다. 뭘 하고 놀까 하고 있는데 앗, 선생님이 텐트를 돌면서 점검을 시작하셨다.
텐트 안에 숨어 숨도 쉬지 않았다. 발자국소리가 점점 가까워져 왔다. 심장이 두근두근두근, 심장소리가 내 귓가에까지 들렸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그 순간, 손전등 불빛이 나를 비췄다. 선생님은 '이 녀석, 너 일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시고는 밖으로 나오라고 하셨다. 나는 그렇게 붙잡했다. 함께 걸린 친구들이랑 단체기합을 받았다. 한동안 이어진 앉았다 일어섰다, 엎드려뻗쳐 등등 땀을 흘리며 벌을 받다가 잔디밭에 누워보라고 하셨다. 하늘에 별이 총총총 떠있었다. 눈에서 잊히지 않는 한 장면이다.
선생님은 하늘의 별을 보고 있는 우리에게 꿈을 물어보셨다. 그때 나는 경찰대를 가고 싶다고 했다. 아마 그즈음 본 드라마가 경찰대가 배경이 됐는데 잘생긴 남자배우의 제복입은 모습이 멋져서 였다. 선생님께선 경찰대 가려면 더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되겠다고 하셨다. 벌을 받는 시간이었는데, 오히려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다른 친구들도 서너 명 있었는데, 이후 친구들은 선생님을 욕했던 것도 같다. 나는 동의할 수 없었지만. 선생님과 야영 이후로 가까워진 느낌이 들어 좋았다.
그러다 여름방학이 찾아왔다. 선생님을 볼 수 없다는 게 너무 속상했다. 선생님은 아침에 출근을 아내분과 함께 한 차로 출근을 하셨는데, 아내 분은 매일 아침 선생님을 학교 앞에 내려주고 가셨다. 아내분도 교사셨고, 근무하시는 학교가 우리 학교를 지나서 가야 하는 것 같았다. 자상한 남편 같아 보여서 그 부분도 너무 좋았다.
여름방학 때, 선생님께 손 편지를 썼다. 다른 과목에 비해 수학을 잘못하는 나이지만, 선생님 덕분에 수학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이야기와 2학기 시험에서 내가 수학을 100점 받으면 3학년 때도 꼭 나의 담임선생님이 돼 주시라고 썼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선생님으로부터 답장이 왔다. 저 땐 휴대폰이 있어 카카오톡을 하던 시절도 아니고, 이메일을 주고받던 시절도 아니다. 편지봉투에 우표를 붙여 보내고 우체국 집배원 아저씨로부터 편지를 받는 그런 시절이었다.
학생에게 편지 답장은 평생 처음이라며, 편지 내용은 타이핑을 쳐서 보내셨다. 받는 사람, 내 이름과 쓴 사람, 선생님 이름만 펜으로 적었다. 난 건강하니까 공불 많이 하더라도 건강에 무리가 없을 거라는 선생님의 유머 속에서 나는 그때도 아주 건강한 학생이었단 사실에 씨익 웃었다.
선생님 덕분에 수학 공부는 열심히 했다. 그리고 3학년 때, 선생님을 다시 담임선생님으로 만났다. 행복했다. 3학년 때도 반장을 했고, 전교회장을 했다. 선생님께 잘보이고 싶은 마음 덕분이었을까. 매번 반 1등은 해도 전교 1등을 못했는데, 그해 딱 한 번 전교 1등을 했다. 연합고사를 치고, 고등학교는 진주로 가게 됐다. 졸업식날 선생님과 헤어지는 게 슬퍼서 많이 울었다. 울다가 찍은 졸업사진도 앨범에 있을 텐데... 졸업 이후 다시 뵙진 못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도 선생님의 이 편지를 간직하고 있다.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 수학 선생님의 정이 담긴 편지 속에서 여전히 중학생 때의 기억은 살아 숨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