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일
“땅도 땅도 내 땅이다.
조선 땅도 내 땅이다.
내 땅이다. 내 땅이다.”
음치, 박치, 음악이라면 1도 재능 없는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선택한 동아리는 다름 아닌 풍물동아리였다. 한 학년이 100명 정도 되는 시골 중학교를 졸업하고, 인근 소도시인 진주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고등학교에 가니 50명씩 12개 반이 있었다. 새롭게 시작된 고등학교 생활에 활력소가 될 동아리, 과연 어디에 가입해야 할까 고민이었다.
당시 방송반에 가고 싶긴 했는데, 노래나 춤 같은 개인기로 오디션도 치러야 하고, 경쟁률도 높아서 잘하는 게 없는 나로서는 고민이 좀 됐다. 그러던 중에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넷째 언니가 풍물동아리가 동기, 선·후배 간에 끈끈하기도 하고, 재미있게 잘 지내는 것 같았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사물놀이 악기를 다뤄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은 있었지만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풍물동아리. 여기도 지원자가 많아서 면접까지 봤다.
열 명 남짓한 동기들은 초등학교, 중학교 때 북, 장구, 쇠(꽹과리)를 쳐본 경험이 있었다. 나는 악기를 손에 잡아 본 적도 없는 완전 초보였다. 막무가내로 어릴 때부터 사물놀이를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다며 해맑게 지원동기를 밝혔다. 당시 내가 반장이었다는 점도 반영이 좀 된 것 같았다. 대부분 반장들은 학술동아리에 가입했지, 활동이 많은 동아리에 들어가질 않았기 때문에 선배들은 내가 풍물동아리에 지원한 데 대해 좀 신기해했다.
동아리 들어가자 악기부터 정했다. 들어본 말이라곤 상쇠, 꽹과리가 전체를 리더라는 말이 생각나서 나는 쇠를 하겠다고 했다. 생각보다 쇠를 하겠다는 친구들이 많았다. 다행스럽게도 악기 다루는 실력으로 정하지는 않았다. 선배들의 설득으로 신입생은 쇠 2명, 장구 5명, 북 5명으로 구성됐다. 끝내 나는 쇠를 맡게 됐다.
동아리는 평일 수업이 끝난 후 매일 운동장에 모여 연습을 해야 했고, 토요일 오후에는 남강 둔치로 나가서 연습을 했다. 일열일곱 살, 따뜻한 햇살 아래 파릇파릇한 둔치의 잔디 위에서 동그랗게 둘러앉아 악기를 칠 때, 그때 내 피부에 와닿던 공기가 참 좋았다. 일요일에는 진주에 있는 13개 고등학교가 모여서 함께 연습을 했다. 학교 내에서도 서로 다른 반 친구들과 모여 선배들로부터 함께 악기를 배우고, 치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주말마다 학교를 벗어나 다양한 남자·여자 고등학교 풍물동아리를 만나 교류하는 게 더 신나고 재미있었다.
한 번은 학기 초에 13개 연합동아리 1학년 회장을 뽑는 선거가 있었다. 나는 우리 학교 대표로 출마해서 1학년 회장으로 선출됐다. 다양한 생각을 가진 130여 명 동기들과 더 많은 선배들과 일요일마다 악기를 배운다는 명분으로 모여 어울릴 기회가 생겨 좋았다. 나는 산청에서 진주로 통학을 하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처럼 평일 저녁 늦게까지 남아 연습을 할 수 없었다. 틈틈이 짬을 내서 연습을 한 다곤 했지만 투입하는 시간 자체가 짧았고, 경험도 없어서 실력은 빨리 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외 모든 것을 즐겼다.
어느새 여름방학이 왔다. 우리는 선배들이 가깝게 잘 지내는 두 남자 학교 동아리와 지리산 아래로 4박 5일로 '전수'를 떠났다. 허름한 시골집에 같은 악기별로 모여서 오전 연습, 오후 연습을 이어갔다. 대학생 선배들이 와서 악기를 가르쳐 주기도 했다. 악기별로 연습하다가 한 번씩 모여서 같이 맞춰보면서 악을 치기도 했다. 금방 실력이 드러났다. 내 부족함은 아주 크게 보였다. 상쇠가 리더를 잘하지 못하면, 좋은 공연을 할 수가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표가 덜 나는 북으로 할걸' 하는 후회도 잠시 했지만 순간순간 나는 최선을 다했다. 하루에 10시간씩은 연습했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레크리에이션, 친교활동. 전수 이후 여러 커플이 생기기도 했다.
뜨거웠던 여름방학이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햇볕 좋았던 가을, 체육대회가 있던 날이었다. 체육대회에서 난 반장 역할도 해야 했고, 동아리에서 1학년이 맡은 역할인, 한복 입고 우스꽝스럽게 꾸며 품바 공연도 해야 했다. 이날 나는 우스꽝스럽게 꾸민 차림으로 반 응원을 하러 가 있었다. 체육대회 마지막은 풍물동아리가 리더 해서 대동놀이로 끝을 내야 하는데, 점심시간쯤 선배 호출에 달려갔다. 선배는 연습을 해야 하는데 내가 보이지 않자 찾았던 것이다. 다른 친구들이 오전 내내 연습하는데 실력도 모자란 내가 연습도 하지 않으니 화가 난 선배는 나를 동아리에서 그 순간부로 제명하겠다고 통보했다. 당장 대동놀이부터 참여할 수 없게 된 나는 황당했지만 한편으론 속이 후련하기도 했다. 살짝 속이 쓰린 듯 멍하게 그날의 대동놀이를 지켜봤다.
돌이켜보면 풍물동아리 덕분에 알게 된 사람도 많았지만 그 인연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오히려 공부해야 할 시기를 제대로 놓쳤다. 고등학교 3년 중에 가장 찬란했던 시간,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학업이 가장 중요했던 시기를 나는 잘하지도 못하는 풍물놀이로 시간을 다 보낸 것 같아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