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만난 카오산 로드
-여행자 거리 시리즈: 방콕 카오산 로드 1
벌써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한 달 동안의 네팔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처음으로 방콕 돈므앙 공항에 내렸다. 네팔에서 트레킹을 함께 한 친구 때문이었다.
“형, 한국 가기 전에 방콕에 잠깐 들러 보세요.. 스톱 오버로 끊으면 비행기 값을 따로 내지 않아도 돼요. 거긴 여기에 비하면 천국이에요. 하루 종일 마사지나 받으면서 빈둥빈둥 쉴 수 있다니까요.”
입국 수속을 마치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야 했다. 후덥지근한 동남아 특유의 공기 때문에 숨이 턱 막혔다. 젖은 비닐이 온몸에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두꺼운 옷을 서둘러 벗고 가장 얇은 옷을 찾아봤다. 배낭에는 겨울옷만 잔뜩 들어 있었다. 개중에 그나마 시원해 보이는 긴팔 티셔츠를 찾아 갈아입고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갑작스럽게 오게 된 탓에 방콕에 대해서는 아는 게 거의 없었다. 그 흔한 가이드북도 없었다. 알고 있는 건 ‘카오산 로드’라는 여행자 거리뿐이었다. 트레킹을 함께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형, 일단 카오산 로드로 가기만 하면 뭐든 다 할 수 있어요."
난 그 말만 믿고 무조건 카오산 로드로 향했다.
시간은 이제 막 새벽 6시를 넘기고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싼 비행기를 타면 꼭 밤이나 새벽에 공항에 도착한다. 안내 카운터에 물어보니 돈므앙 공항에서 카오산까지는 A1이나 A2 버스를 타고 짜뚜짝 시장까지 가면 되지만, 시간이 너무 일러 아직 버스가 안 다닌단다. 당시에는 작뚜짝 시장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몰랐다. ‘괜히 버스를 탔다가 엉뚱한 곳으로 가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를 타고 가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아침 시간인데도 택시는 많았다. 운전석 문을 활짝 열어 놓고 한가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는 택시 기사와 흥정을 시작했다. 인도. 네팔을 여행하면서 흥정에는 인이 배겼다. 흥정은 채 1분도 안 되어서 끝이 났고, 이른 아침 시간이라 길도 전혀 안 막혔다. 한 40분 정도 달렸을까. 택시는 나를 차나쏭크람 경찰서 앞에다 내려주었다. 일이 꽤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아직 출근 시간 전이라 거리는 한산했고 행인도 거의 없었다. 그때 내 머릿속에는 얼른 카오산 로드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지나가는 현지인에게 카오산 로드가 어디냐고 물어봤더니, 내가 서 있는 길을 손으로 가리키며 갸르르 웃었다. 그때 내가 서 있던 곳(경찰서 앞)이 바로 카오산 로드 입구였던 것이다. 지금의 맥도널드가 있는 곳 근처였다. 나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카오산 로드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에게, 이게 카오산 로드야? 뭐야! 아무것도 없잖아.”
아침 시간의 카오산 로드는 평범한 거리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문을 연 상점도 없었고, 배낭을 멘 여행자는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차와 뚝뚝이가 쌩쌩 지나다녔기 때문에 여행자 거리의 분위기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홍익인간’이라는 게스트 하우스를 찾아갔다. 지금은 카오산 로드 주변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숙소가 여럿 있지만, 그 당시에는 홍익인간이 유일했다. 다행히 문은 열려 있었다. 1층은 식당이었고, 2층은 도미토리 숙소였다. 체크인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만실이라서 지금은 체크인을 할 수 없단다.
“일단 10시까지 기다려 보세요. 10시에 지금 묵고 있는 손님들이 체크 아웃하면 그때 체크인을 하면 될 거 같아요.”
식당 벽면에 적혀 있는 메뉴판을 보다 눈이 번쩍 띄었다. 라, 라면? 나는 얼른 주방으로 얼굴을 돌렸다.
“저 혹시 지금 라면 되나요?”
한 달 만에 먹어본 한국 라면이어서 그랬을까? 배가 고파서였을까? 지금도 그때 먹었던 라면 맛이 잊혀지지 않는다.
배가 차자 갑자기 잠이 쏟아졌다. 한 달간 히말라야 트레킹을 한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것 같았다. 염치 불고하고 책상에 좀 엎드려 있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난 사장님이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팔을 베고 누웠다. 나중에는 팔이 저려 와서 슬그머니 긴 의자에 누워 새우잠을 잤다. 사장님은 그런 나를 못 본 척해 주셨다.
여담이지만, 2017년에 네팔 포카라로 여행을 갔다가 놀이터라는 게스트하우스에서 홍익인간 사장님을 다시 만난 적이 있다. 세월이 흘러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알아보진 못 했다. 그런데 그날 밤 우연히 홍익인간 얘기가 나오자 “제가 그때 홍익인간 사장이었어요.”라고 하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정말 반가웠다. 홍익인간은 지인에게 넘긴 지 꽤 됐고, 지금은 포카라에서 놀이터라는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그날 밤 20여 년 전 그 아련한 추억 속의 카오산을 회상하며 밤 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웠다.
다행히 10시에 체크아웃을 한 손님이 몇 명 있어서 체크인을 할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홍익인간 도미토리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시설도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이불은 달랑 군용 담요 한 장뿐이었다. 하지만 가격이 쌌다. 1박에 100밧도 안 했던 걸로 기억한다.
첫날은 저녁까지 내리 잠만 잤다. 다들 어딜 갔는지 낮에는 방에 아무도 없어서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배가 고파서 슬슬 계단을 내려와 보니 어느새 날이 저물어 있었다. 저녁을 먹기 위해 람부뜨리 로드를 지나 다시 차나쏭크람 경찰서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런데 분위기가 아침 하고는 사뭇 달라 보였다. 수많은 노점상들이 거리를 점령하고 있어서 카오산 로드 쪽으로 걸어가기도 힘들 정도였다. 갑자기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거리에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난 길을 잘못 들어선 줄 알고 주위를 살펴봤다. 길 건너편에 ‘왓 차나 쏭크람’ 사원이 보이는 걸 보니, 아침에 본 그 거리가 맞긴 맞았다.
카오산 로드 입구는 여행자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이제 막 도착했는지 무거운 배낭을 메고 숙소를 찾고 있는 사람들, 길가 카페에 앉아 맥주를 시켜놓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사람들, 물건을 사려고 이것저것 만져보고 있는 사람들, 길거리에 서서 팟타야를 먹고 있는 사람들,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레게 머리를 따고 있는 사람들, 간이 의자에 누워 마사지를 받고 있는 여행자들,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가수들.... 카오산 로드는 그들이 내뿜는 에너지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한참을 카오산 로드 입구에 서 있었다. 카오산을 걷고 있는 사람들은 거침이 없어 보였다. 옷도 자유롭게 입고, 먹고 싶은 대로 먹고, 내키는 대로 카오산 로드의 밤을 즐기고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자유로운 공기가 카오산 로드 전체를 에워싸고 있었다. 생소했지만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그런 카오산 로드의 모습에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