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 거리 시리즈: 방콕 카오산 로드 2
카오산만의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매료된 나는 3박 4일 내내 카오산을 떠나지 않았다. 방콕에서의 일정이 3박 4일이었는데, 왕궁이나 왓포 사원도 가지 않았다. 오직 카오산 로드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지냈다. 그만큼 내겐 카오산이 특별했다
카오산에 오기 한 달 전, 나는 학원 강사를 때려치우고 무작정 네팔로 여행을 떠났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였다. 그것도 전업 작가로 살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당돌한 생각이다. 책 한 권 출판해 본 적이 없는 주제에 무슨 전업 작가? 전업 작가란 말 그대로 글만 써서 밥을 먹고사는 직업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남다른 재능이 있어야 한다. 출간한 책이 날개 돋친 듯, 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팔려야, 생활을 유지해 나갈 수 있을 테니까. 과연 내게 그럴만한 재능이 있을까?
네팔에서 한 달 동안 트레킹을 하면서 나 자신을 향해 틈나는 대로 질문을 던져봤다. 하지만 답은 찾을 수 없었다. 내 안에서 되돌아오는 대답은 원론적인 말 뿐이었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의 끝을 보기 위해서는 일단 내 발로 한발 한 발 이 길을 걸어가 봐야 해."
트레킹을 하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고, 기분은 늘 가라앉아 있었다. 그때 나는 두 갈래로 나뉜 길 앞에 서서 사람들의 발자국이 거의 없는, 좁고 험한 길을 걸어가려고 하고 있었다. 이미 그 길을 향해 한 발을 떼어 놓고 있었다. 과연 이 선택은 옳은 것일까? 한 달 동안 히말라야 산맥을 걷고 또 걸어도 불암감은 사그러 들지 않았다. 무거운 짐이 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오게 된 카오산 로드는 내게 큰 위안을 주었다.
매일 저녁 6시, 카오산 로드 입구에 차량 통제 바리케이드가 세워지면 카오산은 슬슬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나는 꿈틀꿈틀 살아나는 카오산의 그 독특한 분위기를 좋아했다. 차가 다니던 길에 포장마차 노점상들이 하나 둘 들어서고, 팟타이를 볶는 냄새가 코를 자극하기 시작하면 카오산은 순식간에 노점상과 여행자들의 거리로 변모했다.
난 어제저녁에 산 중고 반바지와 밥 말리 얼굴이 프린트되어 있는 반팔티를 입고, 슬리퍼를 질질 끌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카오산 로드는 싸고 맛있는 길거리 음식의 천국이었다. 길거리를 걸어 다니면서 음식을 먹어 본 건 그때가 처음이다. 국수와 팟타이, 꼬치구이, 코코넛 밀크가 뿌려진 망고 찰밥, 새콤달콤한 솜땀, 바나나 로띠, 코코넛 아이스크림 등등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널려 있었다. 웬만한 길거리 음식은 10밧에서 20밧이면 사 먹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디저트로는 생과일주스, 과일 셰이크, 수박이나 망고를 잘라 놓은 과일, 땡모반(수박을 간 주스) 등을 사 먹었는데, 이런 길거리 음식을 사면 무조건 비닐에 담아 주었다. 심지어 당시 카오산에서는 콜라나 커피도 투명한 비닐봉지에 담아서 팔았다. 요즘은 이 비닐봉지 커피를 맛볼 수 없어 좀 아쉽다.
복제한 최신 CD나 DVD를 파는 노점상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한국에서는 구하기도 힘든 CD가 즐비했다. 그때 나도 100밧에 CD 두 장을 묶어서 파는 노점상에서 밥 말리 CD 두 장을 샀다. 물론 카오산에서 파는 CD는 케이스만 그럴싸한 비품이다. 나중에 집에 와서 들어보니 한 장은 들을만했지만, 나머지 한 장은 불량품이었다.
카오산 로드 거리를 가득 매운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은 나이도, 인종도, 성별도, 취향도 모두 제각각이었다. 그런데도 모두 한데 어울려 카오산의 밤을 즐기고 있었다. 양동이 칵테일을 빨대로 쪽쪽 빨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레게 머리를 땋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서너 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순식간에 머리 전체를 레게 스타일로 바꾸어 놓는 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보고 서 있던 기억이 난다. 레게 머리를 땋고 있는 가게 옆에서는 나시 티셔츠를 입은 서양 여성들이 어깨에 헤나를 그려 넣고 있었다. 여행자들은 그렇게 카오산 로드에서 짧은 일탈을 즐기고 있었다.
밤이 깊을수록 카오산의 분위기는 점점 더 고조되었다. 카오산 로드와 람부뜨리 로드가 만나는 곳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람들이 모여 박수를 치며 웃고 있기에 가 봤더니, 서양인이 두 명이 길거리에서 차력쇼를 펼치고 있었다. 한 사람은 링으로 저글링을 하고 있었고, 또 한 사람은 웃통을 벗고 불붙은 봉을 휘휘 돌리고 있었다. 돈을 벌려고 하는 공연은 아니고 그냥 흥이 나서 거리 공연을 펼치고 있는 듯했다. 구경하는 여행자들이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지르자, 그들은 더 신이 나서 불붙은 봉을 마구 돌리기 시작했다. 내 눈에는 꽤나 위험해 보였지만, 아무도 그런 건 아랑 곳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밤 12시가 가까워지자 카오산 거리는 거대한 클럽으로 변했다. 스피커가 찢어질 정도로 시끄러운 음악이 카오산 전체를 뒤덮었다.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은 거리로 나와 신나게 춤을 추었다. 나도 함께 춤을 추고 싶었지만, 워낙 몸치라 옆에서 물끄러미 지켜보고 서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밥 말리의 음악이 나오자 여행자들이 일제히 인디언처럼 “와 아아아 아~~” 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과격했던 춤사위는 레게 스타일로 바뀌었다. 나도 여행자들 틈바구니에 끼어 어깨를 들썩이며 카오산의 뜨거운 공기를 마음껏 호흡했다. 지금도 가끔 밥 말리의 음악을 들으면 그날 밤 카오산의 풍경이 떠오른다. 20년 전, 그때 그 거리에 있던 젊은이들은 지금 어떤 모습의 중년이 되어 있을까?
그 시절의 카오산은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자기 덩치만 한 배낭을 짊어지고 다니는 여행자들이 내뿜는 열기와 방콕의 후덥지근한 공기가 더해져 카오산은 독특한 아우라를 내뿜고 있었다. 3박 4일 동안 그 아우라에 물들어서일까? 나는 밑도 끝도 없는 이상한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그래, 내가 전업 작가가 될 수 있을진 모르겠어. 하지만 한번뿐인 인생! 일단 한번 해 보자고. 좋아, 콜~ "
우리는 가끔 일상을 벗어나, ‘자유’를 찾아 여행을 떠나곤 한다. 하지만 여행을 떠난다고 해서 무조건 자유를 찾는 건 아니다. 여행지와 여행자의 궁합이 잘 맞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난 카오산에서 오랫동안 짊어지고 다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원래 내가 짊어지고 다닐 필요가 없던 짐을, 바보처럼 계속 짊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나 할까. 카오산을 떠나 한국으로 올 때 나는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있었었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그래서일까. 난 아직도 20년 전 카오산에서 만난 그 자유의 공기를 잊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