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갈리토라 골목에 뉘엿뉘엿 해가 지면 여행자들은 메인 카트 쪽으로 슬슬 움직이기 시작한다. 매일 저녁 메인 가트에서 열리는 ‘아르띠 뿌자 (신에게 드리는 힌두교식 제사)’를 보기 위해서다. 하루 종일 뱅갈리토라 골목에서 빈둥거리던 나도 이 시간이 되면 습관처럼 메인 가트로 향한다.
뱅갈리토라에서 내려와서 강가를 따라 메인 가트까지 걸어가다 보면, 매번 귀찮은 일을 만나게 된다. 보트 왈라들이 쭉 늘어서서 지나가는 여행자들을 향해 “헬로 보트?”라고 묻는 것이다. 그 말을 수 십 번도 더 듣게 되는데, 그때마다 “노 보트”라고 대답하는 것도 꽤 피곤한 일이다.
오늘은 보트 왈라를 피해 가트 위로 올라갔더니, 한 인도인이 갑자기 악수를 청해 온다. 무심코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팔을 주무르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내가 “어어, 왜 이래?”라고 항의를 하자 누런 이를 드러내며 “마사지?” 하고 이죽거린다. 기분이 상한 나는 거칠 게 손을 뿌리쳤다. 그랬더니 방금 악수하면서 팔을 주물러 준 값을 내란다. 바라나시에서는 이런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가트에 앉아 뿌자를 구경할 때도 항상 사기꾼들을 조심해야 한다. 갑자기 기부금을 내라며 통을 들이미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바라나시에 처음 온 여행자들을 귀신같이 알아보고 기부금 통을 들이민다. 갑자기 사제 복장을 한 사람이 나타나 이마에 붉은색 가루를 찍어 주기도 한다. 메인 가트 주변에서 누군가가 이마에 빈디를 찍어주려고 한다면, 얼른 얼굴을 돌리는 게 상책이다. 인도에서는 공짜란 없으니까. 붉은색 가루를 묻혀 준 값을 달라고 버티고 서 있으면 이겨낼 재간이 없다. 이런저런 사기꾼들과 실랑이를 벌이다 보면 뿌자가 시작하기도 전에 지쳐버릴 수도 있다.
구석구석에 설치되어 있는 스피커에서 독특한 리듬의 인도 음악이 흘러나오자 사람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지른다. 드디어 뿌자가 시작되는 것이다. 사실 뿌자는 신에게 드리는 제사이기 때문에 화려한 볼거리는 없다. 잘생긴 청년 여럿이 나와 갠지스 강의 신을 향해 종교적인 의식을 행할 뿐이다. 그들은 코브라 모양의 황금빛 촛대에 불을 붙인 뒤, 그것을 일정한 방향으로 원을 그리면서 돌리는 행동을 반복한다. 종을 울리기도 하고, 깃털로 허공을 쓰는 움직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뿌자는 이와 같은 행위가 반복적으로 행하여지는 의식인데 약 1시간 정도 진행된다. 그 동작이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청년들의 움직임에는 진지함과 경건함이 깃들여져 있다.
아르띠 뿌자를 보는 방법은 크게 계단에 앉아서 보는 방법과 보트를 타고 보는 방법으로 나눌 수 있다. 계단에 앉아서 보면 뿌자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뿌자가 끝날 때쯤 모든 사람이 두 손을 들고 한 마음을 모아 노래를 부르는 시간에는, 모두 함께 교감을 나눌 수 있다. 마이크를 쥐고 있는 사람이 선창을 하면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이 합창을 하는 형식인데, 노래 가락과 가사가 단순해서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다. 오늘은 나도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과 함께 노래를 불러 본다. 함께 노래를 부르자 그냥 멍하니 구경하고 있을 때와는 기분이 또 다르다.
노래를 따라 하면서 보니 수많은 관광객들이 배를 타고 뿌자를 구경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바라나시를 찾은 여행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보트를 타고 뿌자 구경을 하는데 보트 위에서 뿌자를 위해 밝혀 놓은 조명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얼마나 낯선 땅에 와 있는지를 실감할 수가 있다.
뿌자가 끝나자 제사를 주관했던 사제들이 하얀 별사탕을 참가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한다. 오늘은 나도 별사탕을 받아먹을 심산으로 줄을 섰다. 노래도 함께 불렀으니 나에게도 자격이 있겠지. 그런데 내 차례가 됐을 때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무슨 바쁜 일이 생겼는지, 사제가 내 손바닥 위에 별사탕을 봉지째 던져 놓고 쌩 하고 어디론가 가 버리는 게 아닌가. 이게 무슨 황당한 일이람. 내가 이 많은 별사탕을 가져다 어디에 쓰겠는가. 내 뒤에 무질서하게 서 있던 인도인들은 혼자만 먹지 말고 어서 그 별사탕을 나눠달라며 아우성이다. 별사탕에 무슨 중요한 의미가 있는 걸까? 아무래도 뿌자 뒤에 나눠 먹는 거니까 특별한 의미가 있겠지.
나는 졸지에 도망친 사제를 대신해서 힌두교인들에게 별사탕을 나눠주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사람들은 별사탕을 받자마자 입 안으로 툭 털어 넣고 뿔뿔이 흩어졌는데. 그 과정은 극도의 무질서 속에서 이루어졌다. 서로 밀치고, 밀고, 끌어당기며 먼저 별사탕을 받으려고 아우성을 치는데.... '도대체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그래도 맡은 바 본분을 다 하고자, 한 사람에게 별사탕을 몰아주지 않고, 손을 내미는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2~3개씩 똑같이 나눠줬다. 인도 배낭여행을 하다 보면 별별 경험을 다 하게 된다. 간혹 오늘처럼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을 맞닥뜨리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여행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별사탕을 나눠 준 뒤 비로소 여유롭게 갠지스 강을 바라볼 수 있었다. 수많은 ‘디아’가 강의 어둠을 밝히며 줄을 지어 떠내려 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수 백 개의 디아가 줄지어 떠내려 가는 모습은 그동안 내가 잃어버리고 살아온 그 무언가를 떠올리게 한다. '아, 저 중에 내가 띄운 디아도 있겠구나.' 그렇게 믿으며 다시 한번 소원을 빌어 본다. 사실 17년 전 바라나시에 처음 왔을 때 빈 소원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이루어지리라 믿으며 살아가고 있다.
내일 아침에는 다시 배낭을 메고 다른 여행지를 찾아 떠나야 한다. 어쩌면 바라나시 여행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다. 바라나시는 그동안 내가 다녀 본 여행지 중에서 가장 좁고, 복잡하고, 더럽고, 음습한 곳이다. 그런데 왜 나는 이런 바라나시 골목을 좋아했을까?
이제와 생각해 보니, 바라나시에서 보낸 시간은 내 인생에 꼭 필요한 쉼표였던 것 같다. 난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이 바라나시에서 인생에 쉼표를 찍는 법을 배운 것 같다. 만약 인생이 하나의 긴 문장으로 이루어졌다면 반드시 적절한 간격으로 쉼표를 찍어 줘야 한다. 아무런 쉼표 없이 열심히만 살아가다 마침표를 만난다면, 그 인생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다시는 바라나시를 찾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인생의 쉼표가 필요할 때마다 바라나시가 생각날 것 같다.
죽음이 닥치기 전에 우리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늘 우리 가까이에 다가와 있는 죽음을 음미해 봐야 한다. 그렇게 죽음을 실감함으로써, 살아있음을 느껴야 한다. 오늘을 살고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도 옴 레스트 하우스 앞 골목을 밝히고 서 있는 가로등 불빛이 꺼지자, 뱅갈리토라 골목에는 무거운 어둠이 내려앉는다. 숙소 주인이 체인으로 현관문을 거칠게 걸어 잠그는 소리가 들린다. 허튼짓들 하지 말고 얼른 잠자리에 들라는 말일 것이다.
난 살며시 침낭을 들고 옥상으로 올라간다. 나 보다 먼저 옥상에 올라와 있던 여행자 두 명이 눈인사를 건넨다. 우리는 바라나시에서 처음 만난 사이지만, 그새 담뿍 정이 들었다. 그들도 내일 아침에 바라나시를 떠난다고 한다. 우리는 침낭을 뒤집어쓰고 어둠에 잠겨 있는 갠지스 강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본다. 오늘 밤에는 왠지 쉽게 잠에 들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