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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근기 Mar 09. 2020

라사에서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로 1

-나의 청춘 여행기 5 - 티베트

  



한 장의 사진사람의 인생을 바꿔 놓을 수 있을까?


나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우연히 서점에서 여동완의 <티 속으로>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10년 간 티베트 지방을 여행해 온 사진가가 찍은 사진이 250여 장 실려 있는 책이었는데,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올 정도로 인상 깊은 사진들이었다. 무엇보다 부제가 내 마음을 끌었다.


'라사에서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의 카트만두로'


문득 '가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 년 동안 그 책에 실려 있는 사진을 얼마나 자주 들여다봤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마침내 다음 해 봄, 티베트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의 목적은 라사에서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로 가는 우정공로를 달려보는 것이었다.


티베트에 도착하자마자 야크 빈관 게시판에다 동행자를 구한다는 메모를 붙였다. 날짜와 동선, 그리고 여행사에서 제시한 지프 대여료를 적어 놓고, 그 밑에다 12시 정각에 야크 빈관 로비에서 만나자고 써 놓았다. 12시에 야크 빈관 로비에 가보니 4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야크 빈관 1층 도미토리에 묵고 있는 한국인 여행자들이었는데, 다행히 일정이 맞았다. 세계 여행을 하고 있는 준영이, 사진작가인 종길 씨, 여행 작가를 꿈꾸고 있는 혜원 씨, 직장 때려치우고 벌써 6개월째 여행을 하고 있다는 남원이. 나는 이 4명과 함께 하기로 하고, 여행사에 가서 지프를 대절했다.


이틀 후, 지프는 약속한 시간에 야크 빈관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선택한 코스는 '시가체-간체-올드팅그리-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장무-네팔 '이였다.


라사에서 히말라야를 관통해서 네팔로 넘어가는 이 길을 '우정공로'라고 하는데, 장장 883km의 거리다. 이 거리를 쉬지 않고 4일 동안 지프로 달려야 네팔 국경 도시인 장무에 도착할 수 있다. 우정공로는 티베트와 네팔을 연결하는 도로로, 양 국가 간의 우정을 다지는 의미에서 '우정 공로'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라사의 고도가 3,650m인데 첫날부터 지프는 4.900m가 넘는 캄바라 고개를 넘어 얌드록초 호수를 향해 간다. 올라갈수록 귀가 멍 해지는 느낌이 든다. 이런 곳에 무슨 호수가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순간! 길 왼쪽으로 푸른색의 호수인 암드록초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암드록초 호수는 하늘빛보다 더 푸른색을 띠고 있었다. 와, 아름답다."라든가 "대박!" 이라든가 하는 말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그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서서 암드록초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멀리 양 떼를 몰고 가는 양치기의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 양 떼는 강가에 드문드문 자라난 풀을 뜯으며 아주 천천히 한쪽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갑자기 양치기는 긴 나무 잣대기를 허공을 향해 휘두르며 요들송 같은 소리를 낸다. 그러자 잠시 무리에서 이탈했던 양들은 그 소리를 알아듣었는지, 다시 서둘러 무리로 돌아온다. 시간에 쫓겨 일분일초를 다투며 사는 우리네 시간과는 너무 대조되는 풍경에 나는 할 말을 잃고 한숨을 내뱉었다.   

지프는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우정공로에는 신호등도 없고, 정체 구간도 없다. 우리가 탄 지프 외에 다른 차도 안 보인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비포장 도로, 메마른 고원 지대라 조금만 달려도 먼지가 지프차를 뒤덮어 창문을 열 수도 없다. 먼지 때문에 창문 밖 풍경이 보이지 않을 때도 많다. 승차감은 최악이다. 도로 사정이 고스란히 실시간으로 몸으로 전해져 온다. 그렇게 한나절을 달려 뷰 포인트에 도착했다. 뷰 포인트에 올라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흙먼지를 꼬리처럼 달고 달리는 지프의 모습이 보였다. 이런 곳에 길을 내고 사람들이 왕래를 하고 있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지구 상에서 가장 높은 길이라는 우정공로, 그렇게 몇 시간 정도를 달려 우리는 시가체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시가체는 티베트에서 라사 다음으로 큰 도시라고 한다. 도시라고 하긴에는 규모가 작은 편인데, 라사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라사는 이미 중국화 되어 티베트 고유의 분위기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조캉 사원 같은 전통 사원에나 가야 티베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반면에 가체는 아직 옛 티베트의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듯 보였다. 우리는 시가체에서 하룻밤 자고 가기로 한다. 숙소는 따로 얘기할 가치도 없는 형편없는 곳이었고, 음식은 거의 입에 대지도 못 했다.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뜨니 온 몸이 찌뿌둥하다. 하긴, 잘 먹지도 못 한 채 하루 종일 지프에서 먼지를 마시고 있으니 컨디션이 좋지 않을 수밖에 없겠지. 그래도 기분은 첫날보단 좀 낫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불과 하루 만에 꼬불꼬불 끝없이 이어지는 비포장 도로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진 것 같다.


우정공로는 누가 봐도 아름다운 길은 아니다. 너무나 황량하고 척박한 길이다. 몇 시간을 달렸을까. 그림을 그려 넣은 야크 머리뼈가 보여서 지프를 잠시 멈추고 구경했다. 누가 만들었는지 꽤 섬세하게 만들어 놓았다. 운전수에게 왜 이런 곳에 그림이 그려진 야크 머리뼈가 있냐고 물으니, 특별한 이유는 자기도 모르겠단다. 아마도 운전사들의 무사고를 기원하는 것일 거라고 한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이런 고산 지대에서는 똥이든 뼛조각이든 그냥 버리는 법이 없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나지 않는 이 곳에서는 야크 머리뼈도 조각품이 되어 여행객들의 시선을 끄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지프를 타고 하루 종일 똑같은 풍경을 보며 달리다 보면 눈이 좀 피로해진다. 그래서일까. 간혹 알록달록한 타르초가 나타나면 괜히 관심이 간다. 불교 경전을 적어 놓은 오색천을 긴 줄에 묶어 놓은 것을 가리켜 타르초라고 하는데, 티베트인들은 대개 위험한 곳이나, 절벽, 고갯길, 사원 등에 타르초를 걸어두어 왕래하는 사람들의 안녕을 기원한다.


간체에서 올드 팅그리로 가는 길이었던가. 뜬금없이 짜잔! 하고 왠 커다란 문이 타나 났다. 보통 문이라는 건 벽을 전재로 한다. 그런데 이곳에는 아무런 벽도, 건물도 없다. 그냥 차가 다니는 길에 덩그러니 출입구 같은 모양의 문이 세워져 있다. 아마도 이 지역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세워둔 것이리라.  


그곳에는 수많은 타르초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히말라야에서 불어 내려오는 바람은 끊임없이 펄럭 펄럭 소리를 내며 경전을 읽은 뒤, 어디론가 부지런히 길을 떠나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끔 바람이 불어올 때 문득 무슨 소리인가를 들은 듯한 느낌이 드는 게 아닐까. 바람 속에 부처님의 말씀이 이렇게나 많이 묻어 있으니.  


잠시 멍하니 서서 타르초를 바라보고 있는데, 지프 운전사가 갑자기 주머니에서 오색 종이를 꺼내더니 하늘에 뿌리며 '신은 승리하고 악은 물러간다.'라고 외친다. 그가 뿌린 오색종이는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진다. 오색 종이를 뿌리는 운전사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다른 곳에서 이런 일을 마주했다면, 미신이라고 치부해 버렸겠지만, 이곳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이 길 위에서는 누구나 신에게 의지하게 된다. 이곳은 자기 자신만의 능력과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땅이 아니다. 이곳에 있는 것이라고는 눈 덮인 산과 마른 흙과 바람뿐이다. 사람들은 이런 척박한 곳에서 야크 똥에 불을 붙이며, 하루하루를 천재지변이 없기를 기원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틀 동안 지프를 타고 우정공로를 지나와 보니, 왜 티베트인들이 신을 향해 이렇게 매일 간절히 기도를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 곳에서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한없이 무기력하고 작게 느껴진다.   


지프는 다시 다음 목적지인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로 향한다. 얼마나 바람이 세게 부는지 지프 안에서도 타르초가 펄럭거리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운전수의 말에 따르면, 타르초는 색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그대로 그 자리에 걸어둔다고 한다.


문득 나도, 나라는 색이 다 닳아 없어버릴 때까지, 바람을 따라, 더 멀리, 여행을 떠나고 싶어 진다. 다음 목적지인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까진 아직 한참을 더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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