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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근기 Mar 19. 2020

라사에서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로 2

-나의 청춘 여행기 6 -티베트

우정공로의 길은 구비구비 이어지며 끝없이 위로 향한다. 창밖 풍경은 삭막하기 그지없다. 그렇게 또 얼마를 달렸을까. 점심 무렵 올드 팅그리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운전수는 우리를 디귿자 모양의 식당으로 안내했다. 식탁에는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었지만, 아무도 먼지를 닦아내려고 하지 않는다. 처음 티베트에 왔을 때는 의자에 앉기 전에 꼭 물티슈로 식탁의 먼지를 닦아내곤 했다. 하지만 며칠 이곳에서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포자기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밥도 어제 아침부터는 계란 볶음밥만 먹고 있다. 다른 음식은 입에 안 맞고 너무 느끼하다. 여행 중에 이렇게 음식을 못 먹어 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 오늘은 그 계란 볶음밥도 느끼해서 반쯤 남겼다.    


그나마 식사 후에 시킨 따뜻한 수유자가 작은 위로가 되었다. 야크 버터로 만드는 차인데, 발효 향이 나고 농도가 엄청 농밀했다. 척박한 환경에서 사는 티베트인들에게 차는 특별하다. 차를 통해 비타민을 보충하고, 야크 버터로부터 단백질과 열량을 보충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수유차는 단순한 차가 아니라,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꼭 마셔야만 하는 생명의 차인 것이다. 수유차가 고산증에 좋다는 말에 한잔 더 시켜 먹었더니, 속이 니글거려 혼났다.

점심을 먹고 한 30분 정도 여유가 있어서 어슬렁어슬렁 동네 구경에 나섰다. 집집마다 야크 똥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게 특이하게 보였다. 이곳에는 나무가 없어 땔감으로 야크의 똥을 이용한다. 초식동물인 야크의 똥을 커다랗고 납작한 빵처럼 만들어 말려두었다가 땔감으로 사용하는 것인데, 마침 한 여성이 야크 똥을 다듬고 있어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여인은 고무찰흙을 주무르듯 야크 똥을 맨손으로 꾹꾹 누른 다음, 둥근 모양으로 다듬는다. 그러고는 다시 한번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위를 꾹 눌러준다.


이곳에서의 야크 똥은 돈을 들이지 않고 난방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앞으로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이곳에서는 여전히 야크 똥을 땔감으로 사용하고 있을 것만 같다. 이 고원 지대에 새삼 나무가 자랄 리도 없고, 중국 정부에서 이 작은 마을에 도시가스를 설치해 줄 리도 만무하니까. 내가 계속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자, 야크 똥을 주무르던 여인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다. 아무래도 내가 신경 쓰이나 보다. 얼른 눈인사를 하고 지프로 돌아왔다.  

올드 팅그리에서 한 두어 시간 달렸을까. 드디어 끝없이 이어지던 언덕길이 끝이 나고, 한 고갯마루에 도착했다. 지프는 그 고갯마루에 잠시 멈춘다. 아! 사진에서만 보던 그 에베레스트가 지금 우리 눈앞에 선명하게 펼쳐져 있다. 우리는 호들갑을 떨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프로 사진가인 종길 씨는 진지하게 연실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하지만 곧 머리를 갸웃거리며 혀를 찬다. 어떻게 찍어도 사진으로는 이 광활한 풍경을 담아낼 수가 없단다.

 

잠시 후, 지프는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향해 다시 출발했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오는 길보다 훨씬 수월했다. 운전수도 신이 났는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린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지프가 길에서 벗어나 길이 아닌 곳으로 진입하는 게 아닌가. 경사도가 꽤 가파른 언덕이었다. "어어" 나도 모르게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길을 잘못 들어서 지프가 언덕으로 굴러 떨어지는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운전수의 표정을 보니 다행히 그런 건 아닌가 보다.  


"이게 지름길이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운전수는 지름길이라고 표현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건 길이 아니고, 그냥 언덕이었다. 추측 건데, S 자 코스로 내려가면 시간이 걸리니까, S자 코스를 일자로 가로질러서 내려가는 것이리라. 도대체 왜 이렇게 운전을 하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언어가 안 통해 그럴 수도 없었다. 그러든 말든 운전수는 항상 이런 식으로 운전을 해 왔는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터프하게 언덕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우리는 모두 두 손으로 손잡이를 꽉 잡고 이 지름길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다.

지름길을 굴러 떨어지듯 내려오자 차를 파킹 할 수 있는 장소와 숙소인 듯 보이는 건물이 나타났다. 환경 보호 때문에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는 지프를 타고 갈 수 없단다. 여기서 내려서 걸어가든지, 달구지를 타고 가야 한다. 요즘은 에코버스가 있어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그 버스를 타고 가지만, 내가 갔을 때는 오직 달구지밖에 없었다. 물론 트레킹 삼아 걸어갈 수도 있었지만, 해발 5200미터에서의 트레킹은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10여 분만 걸어도 숨이 차 오르고 머리가 지근거린다. 괜히 돈 몇 푼 아끼겠다고 트레킹을 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인 듯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늙은 말이 끄는 달구지에 올라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로 향했다. 햇볕이 얼마나 따갑던지 가방에서 수건을 꺼내 아랍인들처럼 머리에 뒤집어썼다.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지만 눈이 부셨다. 달구지는 그때 처음 타 봤는데, 바퀴가 돌에 치일 때마다 엉덩이가 들썩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런 환경 속에서도 잠이 쏟아졌다.   

달구지의 덜컹거림이 멈추자 저절로 눈이 떠졌다. 드디어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것이다. A.B.C에는 수많은 텐트가 처져 있었다. 우리는 그 텐트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묵기로 했다. 벽돌로 지어진 건물이었는데, 4인실 도미토리 방이 여러 개 있었고, 입구 쪽에 식당 겸 로비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곳에 난로가 딱 하나 있었는데 얼마나 사람들이 따닥따닥 붙어 앉아 있는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전혀 안 보였다. 이 숙소에 묵고 있는 사람들은 전문적인 등반가들은 아니고, 우리 같은 여행자들인 것 같았다.


방을 배정받고, 잠깐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둘러봤다. 특별히 볼거리는 없다. 하긴, 에베레스트를 오르기 위한 캠프에 무슨 볼거리가 있겠는가. 그러다 우연히 한 텐트에 우체국 간판이 붙어 있는 걸 봤다. 그곳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우체국'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늦은 시간이라 이미 문을 닫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인다.


저녁은 의외로 먹을만했다. 우리네 수제비 같은 음식인 뚝바를 시켰는데, 국물도 담백하고 맛있어서 밥도 한 공기 시켜서 말아먹었다. 산속에서는 어둠은 빨리 찾아왔다. 저녁을 먹고 문을 나서자 벌써 사방이 깜깜하다. 우리는 에베레스트 입성 기념으로 숙소 로비에 앉아 고량주 한 병을 시켜서 마셨다. 원래 고산 지대에서는 고산증 때문에 술을 마시면 좋지 않다. 널리 알려져 있듯 물이나 차를 마시는 게 좋다. 하지만 어디 한국 사람의 마음이 그런가. 주위에 있던 서양인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우리는 기여코 고량주 1병을 깨끗이 비운 뒤에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베이스캠프 곳곳이 소란스럽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새벽에 많은 산악인들이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고 한다. 식당에서 만난 한 세르파는 자신의 팀이 걱정이라며 초조해했다. 내가 그 이유를 물으니, 뜻밖의 말이 돌아왔다. 너무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올라가는 바람에 정상 근처에서 정체 현상이 벌어질 거란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정체 현상? 그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네팔 정부는 1인당 1300만 원을 받고, 한해 약 350명 정도에게 등산 허가를 내주고 있는데, 이들 중에는 아마추어 산악인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단다. 게다가 최근에는 수많은 여행사에서 소위 '에베레스트 투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매년 아마추어 산악인들의 신청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란다. 한마디로 이제 에베레스트 정상 등정도 관광상품이 되었고, 베이스캠프는 관광지가 되어 버렸다는 얘기다.


그런데 문제는 이곳의 날씨다. 에베레스트의 날씨는 좋은 날이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러다 보니 오늘처럼 날씨가 좋은 날에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정상 정복을 위해 나서게 되고, 그 때문에 정상 근처에서 ‘병목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정말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에베레스트 정상을 앞에 두고 병목현상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있다니!  올해도 벌써 3명이 에베레스트 정상 근처에서 줄을 서 있다가 저체온증으로 목숨을 잃었단다.     

불현듯 '행복해지려면 멈춰야 한다.'는 노자의 말이 생각난다. 꼭 정상에 올라가야만 하는 걸까? 정상을 정복하면 어떤 것을 얻을 수 있는 걸까?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그 어떤 정상에도 서 본 적이 없고, 애초에 정상에 오르려고 애써 본 적도 없으니, 기여코 높은 곳을 오르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짐작할 수가 없다. 


아침을 먹고 식당 밖으로 나오니, 지구에서 가장 높은 곳 위로 태양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에베레스트 정상은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사람이 오래 머물 수 있는 곳도 아니다. 잠시 머물다 서둘러 내려와야만 하는 그런 곳이다. 어쩌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정상이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서둘러 체크 아웃을 하고, 다시 지프에 올랐다. 여기서 네팔 국경 도시인 장무까지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다. 잘하면 오후 4시쯤이면 국경을 넘어 네팔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단다. 지프는 다시 먼지를 휘날리며 마지막 목적지인 장무를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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