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장무로 가는 길은 끝없는 내리막이다. 베이스캠프의 해발 고도가 5200m 정도이고, 장무가 2300m이니, 약 3000m 정도 차이가 난다. 고도가 점점 낮아지면서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던 황량한 티베트 고원의 풍경도 차츰 달라지기 시작한다. 설산 풍경이 점점 줄어드는가 싶더니, 갑자기 거짓말처럼 열대우림 같은 풍경이 나타났다. 공기의 질도 순식간에 바뀌었다. 건조하던 공기가 갑자기 사라지자 코 안이 촉촉해지는 느낌이 든다. 먼지도 날리지 않아서 창문을 열고 오랜만에 크게 심호흡을 해 봤다.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든다.
그러는 사이 지프는 어느새 어마어마하게 깊은 협곡으로 들어섰다. 협곡의 낭떠러지는 족히 수 백 미터는 되어 보였고, 사방이 울창한 나무로 뒤덮여 있었다. 오랜만에 숲 냄새를 맡으니 살 것 같았다. 먹이를 찾는 개처럼 코를 킁킁거리며 숲 냄새를 맡고 있는데, 운전사가 뜬금없이 세차를 하려고 하니 창문을 닫아 달란다. 세차? 이 협곡에서? 차가 달리고 있는 협곡의 오른쪽은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높은 낭떠러지다. 게다가 지금 지프가 달리고 있는 도로는, 앞에서 차가 오면 옆으로 비켜서 있어야 할 정도로 좁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세차를 한단 말이지?
여행을 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시스템이 존재하고 있고, 별의별 삶의 방식이 있다. 지프가 모퉁이를 돌자 갑자기 폭포가 나타났다. 산꼭대기에서 도로 쪽으로 떨어지는 폭포였는데, 차가 다니는 도로 위로 떨어지는 폭포는 그때 장무에서 처음 봤다. 운전사는 지프를 몰고 천천히 그 폭포 속으로 들어갔다. 폭포가 지프 천장을 때리자 요란한 소리가 났다. 자동 세차가 따로 없었다. 3박 4일 동안 켜켜이 쌓여 있던 지프의 먼지는 그렇게 폭포 물줄기를 타고 사라져 버렸다. 뒤에 또 다른 지프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걸 보니, 이 곳을 지나는 차들은 대부분 이 폭포 밑에서 세차를 하는가 보다.
장무는 협곡 중간에 세워진 작은 마을인데, 길이 딱 하나밖에 없고 그 길을 중심으로 삭막하게 보이는 건물이 난립해 있었다. 대부분의 국경 도시가 그렇지만, 장무 역시 정이 안 가는 분위기였다. 수많은 사람들과 차량이 뒤섞여 있는 길은 혼동 그 자체다. 대형 트럭에 물건을 옮겨 싣고 있는 사람들, 길에서 비켜나라며 고함을 치는 사람들, 연실 클락숀을 울려대는 차들, 국경을 넘어가기 위해 대기 중인 트럭들, 장무 출입국 사무소로 향하는 길은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는 얼른 지프에서 내려 3박 4일 동안 동행한 운전사에게 작별인사를 건네고, 장무 출입국사무소를 향해 걸어갔다.
원래 중국 국경은 까다롭고 삼엄하기로 유명한데, 장무 출입국사무소는 의외였다. 무슨 바쁜 일이 있는지 여권 검사도 형식적으로 하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짐 검사가 가관이었다. 보통 레일 위에 짐을 내려놓으면, 레일이 윙 소리를 내며 짐을 반대편으로 밀고 나간다. 그 사이에 엑스레이를 통해 짐 검사를 하는 게 보통의 시스템이다.
우리는 출입국사무소에 도착하자마자 레일 위에 차례대로 배낭을 올려놓았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레일이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가 멍하니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고서 있자, 중국 공안이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배낭을 그냥 손으로 엑스레이 안으로 밀어 넣으라는 시늉을 하며 독촉을 했다. “라이~ 라이~~”
우리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엑스레이 안으로 배낭을 밀어 넣었다. 그러고는 반대편으로 가서 밀어 넣은 배낭을 다시 손으로 빼내야 했다. 그동안 여러 나라의 출입국 관리 사무소를 들락거리면서 이런저런 경험을 해 봤지만, 이런 경우는 이때가 처음이었다. 아무리 외진 국경지대라고 해도 이렇게 엉성하게 짐 검사를 하다니.
그러다 우연히 엑스레이 쪽을 보게 되었는데, 짐 검사를 하는 엑스레이 기계가 꺼져 있지 뭔가. 공안은 까만 화면을 보는 척하며 서류에 뭔가를 적어 넣고 있었다. 그러면서 연실 입으로는 '라이~ 라이~~'를 반복하고 있었다. 엑스레이로 짐을 확인할 수도 없으면서, 귀찮게 짐은 뭐 하러 넣다가 빼라는 건지. 나 원 참! 그날만 기계가 고장 난 건지, 아니면 원래 폼으로 가져다 놓은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황당한 상황이었다.
중국 쪽 출입국 사무소를 나오니, 중국 땅도 네팔 땅도 아닌 땅이 나타났다. 네팔과 중국 사이에 낀 완충지대였는데, 장무 출입국 사무소 앞에서 네팔 국경도시인 코다리까지의 거리는 약 8km 정도 되었다. 걸어가기에는 꽤 먼 거리였다.
마침 그 완충지대만 왕복하고 있는 봉고차가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격은 1인당 5위안. 물론 5위안이 아까운 여행자들은 걸어가도 된다. 우리 일행 5명 중 한 명이 걸어가자는 의견을 냈지만, 다수의 의견에 의해 곧바로 묵살되었다. 봉고차는 몇 십분 후에 ‘우정교’라고 불리는 다리 앞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이제 저 우정교만 건너면 드디어 네팔 땅인 것이다. 티베트 땅을 벗어나기 전에 우정교 위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했지만, 중국 공안이 사진을 찍지 말라고 경고를 하는 바람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네팔 출입국 사무소에서는 엑스레이 짐 검사 따위는 아예 하지도 않았다. 컴퓨터도 없어서 모든 걸 수작업으로 진행한다. 네팔 출입국사무소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달러다. 비자피를 달러로만 받기 때문에 달러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문제가 좀 복잡해질 수 있다. 콧수염을 멋스럽게 기른 네팔리는 내가 20달러를 내자 도착비자 스티커를 여권에 척 붙여주었다. 도착비자를 받는 절차는 복잡하지 않았지만, 여권 정보를 일일이 수기로 적어 넣는 바람에 시간은 꽤 걸렸다.
코다리에서 카트만두까지는 아직 144킬로미터 정도를 더 가야 한다. 코다리는 가파른 절벽을 따라 형성되어 있는 아주 작은 국경 마을이었고, 묵을 만한 숙소도 딱히 없었다. 우리 일행은 오늘 안으로 카트만두의 여행자 거리인 타멜로 가기로 하고, 차편을 알아봤는데 하필 카트만두행 마지막 버스가 10분 전에 떠났다나 뭐라나.
하지만 너무 실망하진 말자. 언제나 그렇듯 이런 국경 지대에는 우리 같은 상황에 처한 여행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택시가 있게 마련이니까. 아니나 다를까. 한 택시기사가 택시에 등을 기대 챈 “이보게들, 나 찾나? 나 여기 있네.”라는 느낌으로 손을 흔들었다. 곧바로 흥정이 시작되었고, 우리는 한참만에 택시기사가 처음 제시한 가격의 절반 정도를 깎을 수 있었다.
우리를 태우고 갈 택시는 지금 당장 폐차장으로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낡은 차였다. 곳곳이 찌그러지고 깨져 있었는데, 깨진 헤드라이트를 청테이프로 붙여 놓은 게 인상 깊었다. 운전석에는 핸들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깨진 계기판에는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었다. 어쩌다 그런 구멍이 났는지, 내가 앉은 조수석 밑에는 주먹만 한 구멍이 나 있었는데, 차가 출발하자 그 구멍으로 황소바람이 숭숭 들어와서 발로 그 구멍을 꽉 막고 있어야만 했다.
택시는 보기만 해도 아찔한 절벽 길을 곡예하듯 내려갔다. 계곡에는 어둠이 순식간에 찾아왔다. 저녁 5시가 막 넘어서는 시간이었지만, 앞이 잘 안 보일 정도로 어두컴컴했다. 그런데도 기사는 이상하게 라이트를 켜지 않고 있다. 제발 라이트 좀 켜고 가자고 몇 번인가 사정했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도대체 왜 라이트를 켜지 않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배터리를 아끼려고 이러는 걸까. 계곡을 거진 다 내려와서야 기사는 슬그머니 라이트를 켰다.
그렇게 한 1시간쯤 더 달렸을 때였다. 갑자기 장대비가 퍼 붓기 시작했다. 네팔은 산간 지형이어서 날씨가 급변한다. 우리가 탄 택시에도 윈도 브러시 비슷한 게 달려 있긴 했지만, 좌우로 왔다 갔다 하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 빗물을 닦아낼 수가 없었다. 윈도 브러시가 용을 쓰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설상가상이라는 사자성어가 그때처럼 딱 들어맞은 적이 또 있었을까. 갑자기 뻥!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차가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타이어 펑크였다. 비는 쉴 새 없이 퍼붓지, 타이어는 펑크가 났지. 사방은 깜깜하지, 막막하다.
일행 중에 제일 연장자였던 나는 손전등을 들고 타이어 교체 작업 현장을 비추는 역할을 맡았다. 비교적 쉬운 역할이었다. 다른 일행들은 기사를 도와 타이어를 교체하는 역할을 했고, 또 다른 한 명은 그들이 비에 젖지 않게 우산을 받쳐 드는 일을 했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뒤에서 차가 오지 않는지 확인하는 일을 맡았다. 불행 중 다행히 타이어 교체 작업은 의외로 빨리 진행되었다. 한 10여분 정도 걸렸을까. 타이어 교체 작업을 마친 택시는 다시 빗속을 뚫고 깜깜한 어둠 속을 달리기 시작했다. 빗줄기는 차츰 약해졌지만, 비에 젖은 몸은 으슬으슬 떨려왔다. 아무래도 감기에 걸린 것 같다.
우리는 그렇게 4시간을 달려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카트만두의 가로등 불빛이 그렇게 반가웠던 적이 또 있었을까? 늦은 밤이어서 카트만두 시내에는 교통정체도 없었다. 타벨 입구가 보이자 택시 기사는 어디서 내리겠느냐고 물었고, 나는 ‘핫 브레이크 빵집 앞’에 내려달라고 했다. 핫 브레이크 빵집은 타멜 삼거리에 있는데, 타멜의 심장 같은 곳이다.
타멜 거리는 여전했다. 여행사, 식당, 등산 장비를 파는 가게, 기념품 가게, 야크털과 양털로 만든 각종 수작업 의류들을 파는 가게, 환전소, 네팔 공예품을 파는 가게, 어지럽게 엉켜 있는 전깃줄.... 5년 만에 다시 찾은 타멜 거리는 9시가 넘었는데도 트러커들과 여행자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타멜 특유의 공기가 코를 찔렀다. 향신료 냄새와 매연, 그리고 흙먼지가 뒤섞여 있는 듯한 공기. 분명 건강에는 좋지 않겠지만, 이상하게 타멜의 이 공기는 여행자의 향수를 자극한다.
거리 곳곳에 파여 있는 웅덩이에는 빗물이 잔뜩 고여 있었다. 한 웅덩이에 배낭을 짊어지고 있는 내 모습이 반영되어 있는 게 보인다. 며칠 동안 면도를 하지 못해서 수염이 덥수룩하다. 머리도 감지 못해서 머릿결에는 기름기가 줄줄 흐르고 있다. 하지만 타멜에서는 이런 모습을 한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다. 라사에서 카트만두까지 함께 한 일행들은 물론이고, 산에서 내려온 여행자들 대부분이 나와 같은 모습으로 타멜 거리를 걸어 다니고 있다.
이번 여행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꽤나 힘든 여정이었다. 내가 왜 라사에서 히말라야를 넘어 카트만두까지 오려고 했을까?빨리 침대에 눕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