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근기 Jan 09. 2020

바라나시에서 아침을 맞는 법

나의 청춘 여행기 1 -인도 바라나시

“자, 마음 단단히 먹자. 왜냐하면 당신은 지금 지구 상에서 가장 다채롭고, 없이 혼란스러운, 그런 도시로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론니플래닛 인도 편에서 바라나시를 소개하는 페이지의 첫 문장이다. 과연 지구 상에서 가장 다채롭고, 없이 혼란스러운 바라나시의 아침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아침 6시, 주섬주섬 옷을 입고 쿠미코 게스트하우스를 지나 빤데이가트로 내려간다. 해가 뜨려면 아직 조금 시간이 남았지만 갠지스 강가는 벌써 목욕을 준비하는 인도인들로 북적인다. 빤데이가트는 뱅갈리토라에 고 있는 한국인 배낭 여행자들의 아지트 같은 곳이다. 나도 그동안 수차례 바라나시를 여행하면서 이곳에서 많은 추억을 만들었다. 선재네 가게에서 짜이를 시키자, 주전자에 미리 준비해 두었던 짜이를 작은 유리컵에 쪼르르 따라준다. 유리컵에 담긴 따뜻한 짜이를 양손으로 받쳐 들고 카트에 앉아 해가 뜨기를 기다린다. 김이 모락모락 피워 오르는 짜이를 한 모금 마시자, 찌뿌듯했던 몸이 조금 풀어지는 느낌이 든다.      


오늘 아침에도 선재네 짜이 가게 앞은 크리켓 경기장으로 변해 있다. 아침부터 아이들은 무슨 크리켓 대회에 나온 선수들이라도 되는 양 진지하게 시합을 펼치고 있고, 빤데이가트 앞 강가에서는 한 꼬마가 줄을 물속에 던졌다 꺼냈다는 반복하고 있다. ‘동전 낚시’라고 하는 것인데, 자석이 매달려 있는 줄을 물속으로 던져 물속에 있는 동전을 건져 올리는 것이다. 물속에 동전이 있냐고? 빤데이가트 옆에 빨래터가 있는데 빨랫감에서 가끔 동전이 떨어진다고 한다. 자석에  동전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꽤 부지런한 꼬마다. 이 새벽부터 제 밥벌이를 하고 있다니.        


해가 떠오르려는지 강 건너편이 붉게 타오르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이때를 기다렸다가 일제히 자기만의 방법으로 바라나시의 아침을 맞이한다.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인도인은 경건한 동작으로 옷을 벗더니 붉은색 천을 허리에 두르고 성큼성큼 강으로 들어간다. 두 손으로 정성스럽게 강물을 뜬 뒤, 나직한 목소리로 만다라(기도문)를 외우는 모습이 꽤나 경건해 보인다. 꽤 날씨가 쌀쌀한데도 그는 꼼짝도 하지 않고 오랫동안 그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무슨 기도를 드리는 걸까? 과연 힌두교의 신들은 저 사람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까?     


힌두교인들에게 있어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은 매우 특별한 곳이다. 그들은 이 강물에 몸을 담그면 이생에 지은 죄를 모두 씻을 수 있다고 믿는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나도 지금 당장 저 강물에 몸을 담그고 싶다. 이생에 지은 죄가 몽땅 다 씻겨나간다는데, 수질을 따질 때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막상 수질을 가까이에서 보면, 힌두교인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멀리 마니카르니카 가트에서는 시신을 태우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오늘도 화장한 재를 강에 뿌리고 있으리라. 혹시 뱀에 물린 사람, 사제, 어린이의 시신은 태우지 않고 그냥 강에 던져 버린다는 걸 아시는지? 그 바람에 가끔 시신이 물 위로 둥둥 떠올라, 여행자들을 놀라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생각만 하면 목욕은 고사하고 발을 담그기도 꺼려진다. 역시 바라나시의 아침은 이렇게 빤데이가트에 앉아 짜이나 한 잔 하면서 느긋하게 맞이하는 게 최고지.     


내가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오늘 아침에도 수많은 인도인들이 갠지스 강물에 몸을 담그고 목욕을 하고 있다. 목욕이라고 해서 바디워시나 비누로 거품을 내서 몸을 깨끗이 닦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목욕이기 때문에 단지 강물에 몸을 담그거나, 그릇을 이용해서 신성한 물을 몸에 끼얹을 뿐이다. 그렇게 해서 정신의 때를 말끔히 씻어내는 게 목욕의 목적이다.    

여행자의 눈으로 볼 때는 그들이 아무렇게나 옷을 벗고 강물에 풍덩 몸을 담그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힌두교인들은 정해 놓은 관습에 따라 목욕을 한다. 무엇보다 갠지스 강물에 들어갈 때는 항상 머리가 동쪽으로 향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입으로는 계속 만트라(Mantra)를 외우고 있어야 한단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목욕을 해도 아무 효과도 없다고 하니, 혹시라도 갠지스 강에서 목욕을 하려고 계획 중이신 분이 있다면 참고하시기 바란다.  


여행자들은 배를 타고 갠지스 강 한가운데로 나가 일출을 맞이하고 있다. 이곳의 해는 절대 쨍하고 뜨는 법이 없다. 타짜가 마지막 화투 패를 쪼듯, 해는 물기를 잔뜩 머금은 채 안갯속에서 스멀스멀 아주 천천히 피어오른다. 얼핏 보면 일출인지 일몰인지 구분이 잘 안 될 정도로, 이곳의 일출은 독특하다. 이 순간만큼은 나도 오늘 하루를 비춰 줄 태양을 향해 머리를 숙인다.


정말 오랜만에 마음이 고요해지고, 생각이 잠시 멈춘다. 호흡에 집중하며 멈춰 있는 마음속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생각을 멈춘 마음속에는 아무것도 없다. 명상이란 이런 것일까?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일상생활 속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여행에서만 만날 수 있는 소소한 기적이었다.    


잠시 감았던 눈을 뜨자 곳곳에서 탄성이 들려온다. 배 위에서 일출을 맞이하고 있는 여행자들은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연실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뱃사공은 바라나시의 역사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고 있다. 나도 몇 번인가 배를 타고 일출을 본 적이 있는데, 해가 뜰 무렵 배 위에서 보는 바라나시 카트 풍경은 신비롭고 이국적이다.

해가 완전히 떠오르자 도시는 일순 생기로 가득 찬다. 순례자들과 브라만들은 신성한 가트에 앉아 산스크리트어로 된 기도문을 암송하며 하루를 신과 함께 시작한다. 신에게 바칠 꽃을 갠지스 강으로 띄워 보내는 여인네들도 보인다. 꽃을 뿌리고, 디아를 띄워 보내는 손길이 너무나도 정성스럽다. 조금 아래쪽에서는 평생 빨래만 하며 살아야 하는 도비왈라들이 빨래를 하고 있다. 불가촉천민인 도비왈라들은 현재의 고된 삶을 전생의 업보라 여기고 있었다. 어느 날, 한 도비왈라가 나에게 말했다.     


“다음 생에서는 이 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오늘도 묵묵히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거야.”


쉽게 얘기해서 다음 생을 위해 이번 생을 버리는 카드로 쓰고 있다는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치게 종교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에 다음 생이 없다면, 그렇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만약에 우리의 생이 단 한 번뿐이라면, 죽도록 고생만 한 이번 생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도비왈라들은 해를 등진 채 대나무를 들어 빨래를 힘껏 내려치는 동작을 반복하고 있다.    


태양이 강 위로 완전히 떠오르자, 바라나시는 신비의 장막을 걷고 본모습을 드러낸다. 모두들 오늘 하루를 살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가트에는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하나 둘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가짜 사제는 이제 막 바라나시에 도착한 어리숙한 관광객들에게 다가가 사진을 찍자고 부추긴다. 관광객들은 '우와, 이게 웬 횡재야!'라는 표정으로 가짜 사제와 함께 사진을 찍는다. 물론 잠시 뒤 그들은 그 대가를 치러야 할 테지. 가짜 요가 선생도 그럴듯한 요가 자세를 취하고 앉아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일찍 출근한 가짜 마사지사들은 지나가는 여행객들을 향해 "마사지~~"를 외치고 있다.  

나도 이제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뱅갈리토라 골목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소들이 부지런히 싸 놓은 똥을 밟지 않으려고 조심하며 뱅갈리토라 골목으로 올라간다. 만수네 짜이 가게도 본격적으로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바라나시 장기체류자들은 벌써 만수네 짜이집에 자리를 잡고 앉아 다음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나도 잠시 그 옆에 슬쩍 엉덩이를 밀어 넣고 앉는다.        


체크 아웃을 끝낸 여행자들은 배낭을 메고 부지런히 뱅갈리토라의 좁은 골목길을 걸어 나가고 있다. 저들에게 바라나시는 어떻게 기억될까? 새벽 기차로 이제 막 바라나시에 도착한 여행자들은 숙소를 잡기 위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가격을 묻고, 숙소 컨디션을 확인한다. 마음에 드는 숙소를 찾지 못했는지 배낭을 바닥에 내려놓고 스마트 폰을 만지작거리는 여행자들도 보인다. 매일 아침 보는 익숙한 풍경이다.  


나는 아침을 먹기 위해 바라나시의 복잡한 골목을 걸어 나간다. 골목은 미로처럼 이어지고 또 이어진다. 팔을 뻗으면 팔이 벽에 닿을 정도로 좁은 이 골목에는 수많은 가게들이 자리 잡고 있다. 식당, 옷가게, 음반가게, 여행사, 엽서를 파는 가게, 장신구를 파는 가게, 환전소, 히말라야 화장품 가게, 젬베 연주법을 가르쳐 주는 곳, 라시 가게, 헤나 전문점... 이 정신없는 골목은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길을 잃지 않을 수 없다는 이 복잡한 바라나시의 골목, 이 골목도 어느새 익숙해져 버린 걸까? 언제부터인가 이 골목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잘만 걸어 다니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왜 아직 이 골목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걸까? 이번 여행에선 그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오늘도 바라나시의 무료하고, 다채롭고, 혼란스러운 하루가 또 시작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라사에서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로 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