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탄 아흐멧 거리에서 갈라타 다리까지는 걸어서 약 30분 정도 걸린다. 물론 블루모스크 역에서 트램을 타고 에미뇌뉘 트램 역에서 내리면 금방 갈 수 있지만, 슬슬 걸어가 보기로 한다. 어차피 오늘은 특별히 할 일도 없다.
일부로 큰길 대신 골목길을 선택한다. 이스탄불의 골목길은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정겨움 같은 것이 느껴진다고 할까. 관록이 느껴진다고 할까. 오랜 세월 사람들의 손때가 묻은 골목의 역사 때문이리라. 색깔로 얘기하면 그레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어딘지 모르게 우울한 분위기의 골목들, 바닥에는 네모난 모양의 반질거리는 돌들이 촘촘히 깔려 있고, 고양이들은 햇살이 잘 드는 난간에 누워 한가하게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골목 이름은 몰라도 그만이다. 내가 이 골목을 걷는 건 아마도 생애 단 한 번 뿐일 테니. 다시 찾아가라고 해도 찾아 가지 못 할 것 같은 좁은 골목을 빠져나오자 멀리 갈라타 다리가 보인다.
갈라타 다리는 이스탄불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연결해 주는 가교 역할을 하는 다리로,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구분하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 갈라타 다리는 강을 건너는 용도로만 쓰이고 있는 평범한 다리가 아니다. 우선 다리 구조가 좀 독특하다. 다리가 위아래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래쪽에는 식당이 즐비하다. 강을 바라보며 식사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일까. 식당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그리고 차가 다니는 위쪽 다리 위에는 빈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다. 바로 다리 위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강태공들이다. 다리 위에서 무슨 낚시를 하나 싶겠지만, 갈라타 다리는 거의 매일 이렇게 강태공들로 북적인다. 세상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재미난 풍경이다.
'
'이런 다리 위에서 뭐가 잡히기는 할까?'라는 생각을 하며 물고기를 잡아 놓는 통 안을 슬쩍 들여다봤다. 뜻밖에 플라스틱 통 안에는 갓 잡은 생선들이 가득 차 있다. 내가 관심을 보이자 한 중년 남자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친구, 당신도 한 번 해 볼래?”
나는 어떨 결에 낚싯대를 잡았다. 낚시를 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미끼는 작은 물고기를 쓰는데, 그냥 강에 낚싯대를 던지고 가만히 기다리면 된다. 나는 잠시 낚싯대를 잡고 강태공 흉내를 내 본다. 처음에는 그냥 기념사진이나 찍고 지나가려는 심산이었다. 그런데 이런! 갑자기 찌가 움직이는 게 아닌가. 나는 서둘러 낚싯대를 잡아당겼다. 제법 묵직했다. 내게 잠시 낚싯대를 빌려 준 남자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그는 빨리 낚시 줄을 감으라고 재촉하며 끌려 올라오는 물고기의 크기를 확인한다.
사실 나는 낚시를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낚싯대도 그때 갈라타 다리에서 처음으로 잡아 봤다. 그런데 덜컥 물고기를 낚다니! 초심자의 행운인가. 그렇다 해도 정말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여행을 하다 이런 순간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텐션이 올라간다. 으샤! 하고 소리를 지르며 강태공이 알려주는 대로 낚싯줄을 돌렸다. 도중에 실수를 해서 물고기를 놓치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지만, 다행히 별 탈 없이 물고기를 낚을 수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꽤 큰 물고기였다. 잡은 물고기를 플라스틱 통에 넣어주자, 남자는 함박 미소를 지으며 오늘 잡은 물고기 중 가장 크다며 좋아했다. 나는 주인에게 낚싯대를 돌려주고 기념사진을 한 장 찍었다. 진짜 낚시꾼들처럼 잡은 물고기를 들고 찍을까 생각도 해 봤지만, 물고기가 하도 파닥거려서 손으로 잡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도심 한복판에서 즐기는 낚시라. 꽤 낭만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나에게 낚싯대를 잠시 빌려줬던 남자의 말에 따르면 갈라타 다리 위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실업자라고 한다. 경제 불황의 여파로 직장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이곳에서 낚시를 하며 용돈벌이를 하고 있단다. 그러니까 여유가 있어서 취미로 낚시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 먹고살려고, 조금이나마 생활비를 벌려고 낚시를 하고 있단 얘기다. 그렇게 잡은 물고기는 근처 식당이나 도매상에 팔아넘긴다고 한다.
최근 터키는 유래 없는 경제 위기를 겪고 있다. 터키 화폐인 리라의 급락으로 인해 경제가 매우 안 좋다. 시리아 사태 해법이나, 이란 제재 동참 여부를 놓고 미국과 갈등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터키 정부는 미국과 타협하지 않고 마이 웨이를 고집하고 있는데, 요즘은 한발 더 나아가서 미국과 적대 관계에 있는 중국. 러시아 등과 동맹을 맺으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이에 미국은 경제 제재를 한층 강화하고 있는 모양새다.
얼마 전에 터키 정부는 국민들이 보유한 달러와 금을 팔아 경제 위기를 극복해보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아직까지 터키 경제는 쉽게 나아질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 그 여파로 갈라타 다리 위에는 예전보다 더 많은 강태공들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시간을 낚고 있다고 한다. 여행자들의 눈에는 마냥 신기하고 아름답기만 한 것들이 현지인들에겐 치열한 삶의 일부일 때가 종종 있다. 내 눈에는 낭만적으로만 보이는 이 갈라타 다리도 이스탄불의 실업자들에겐 진지한 삶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이스탄불은 석양이 아름다운 도시다. 그중에서도 갈라타 다리 위에서 보는 석양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들 뒤로 보이는 모스크의 첨탑은 붉은 하늘을 찌를 듯 곧게 솟구쳐 있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은 먹물로 그려 놓은 한 폭의 수묵화처럼 보인다. 도시의 윤곽이 붉은 기운에 물들어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하자 새들은 서둘러 둥지를 찾아 돌아간다. 아, 아니지! 이 또한 여행자의 낭만적인 시선이 투영된 것인지도 모른다. 석양을 가르는 저 새들도 어쩌면 해가 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먹이를 구하기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BGM으로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을 써야 할 것 같은 석양이다. 살면서 이런 석양을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어디선가 또 저녁 예배 시간을 알리는 ‘아잔~~’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 소리가 오늘따라 애잔하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