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권위 있는 스승에게 도리를 배워서 익혀야 한다.
그는 삼층관을 쓰고 두 개의 기둥 사이에 앉아 있는데 이는 여사제가 지키고 있던 성전의 기둥은 아니다.
그는 왼손에 삼중 십자가가 끝에 달린 홀을 들고, 오른손으로는 비교(秘敎)의 징표라고 불리는 유명한 기독교의 사인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은 교의의 명시되어 있는 부분과 감춰져 있는 부분을 구별 짓는 사인이다.
여사제가 아무런 사인도 보여주고 있지 않은 것과 대비되는 점에는 주목할 만하다.
그의 발치에는 교차되어 놓인 열쇠가 있는데, 장백의(사제가 입는 흰색의 긴 옷)를 입은 사제 두 명이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 그는 일반적으로 ‘교황(Pope)’이라고 불려 왔는데, 교황으로 상징되는 일반적인 성직 업무 중에서도 특정한 부분을 상징하고 있다.
그가 종교의 외적인 부분을 지배하는 힘이라면, 여사제는 심오하고 탁월한 천재성을 품은 내향적인 힘이다. 이 카드의 올바른 의미는, 다양한 사람들의 손에 의해 비참할 정도로 뒤섞여 버렸다.
그랜드 오리엔트(Grand Orient, 역주: 웨이트의 필명)는 교황은 열쇠의 힘 (교황권)과 외부인도 이해하는 정통적인 교의, 교의로 이끄는 영혼의 바깥 측면이라고 적절히 설명하고 있다. 그가 다른 해설자가 제시하는 것처럼 숨겨진 교의의 왕이 아님은 확실하다.
즉, 가장 엄밀히 표현하자면, 그는 분명 모든 신학의 최고위자이기는 하나, 드러나 있는 교리의 고결함, 신성함의 모든 것을 상징한다.
이처럼 그는 자연과는 다른, 제도의 세계에 속한 은총으로 이끄는 채널이며 인류 전체를 구제할 지도자이다.
그는 일반적으로 인지된 위계 제도의 율법이자 수장이며 또 다른 커다란 위계 제도의 반영체다. 그러나 교황은 그 자신의 이러한 상징적 의미의 중요성을 망각하거나 그의 상징이 의미하거나 설명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그 자신이 적절한 조치 안에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다. 지금까지 여겨져 온 것처럼 그는 신학적 측면을 제외한 철학이나 영감을 의미하지 않는다. 또한 종교적 양식으로 표현되어 있긴 하지만, 종교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바보는 황제의 곁에 안주하지 않고 여행을 이어갑니다. 바보가 상징하는 우리의 영혼이 목표하는 것은 찰나의 세속적 안정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타로가 소개해주는 다음 인물은 세속과는 정반대 쪽 세계의 정점에 서 있는 교황입니다.
수비학에서 5는 자유, 호기심, 변화,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의미합니다. 4가 이뤘던 탄탄한 안정감을 뒤로하고 또 한 번 도약을 꾀하는 5라는 숫자에 걸맞은 풀이이지만, 이렇게 더 높은 곳을 향해 쏘아 올린 도전이라는 빛에는 불안함이라는 그림자가 따르는 법입니다.
이러한 속성은, 마이너 아르카나의 5번 카드들에 고스란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펜타클 (금화) 5번 카드에는 눈 오는 날 교회 앞을 지나는 두 걸인의 궁핍함이, 소드 (검) 5번 카드에는 결투 뒤의 허망하고 혼란스러운 풍경이, 컵 (성배) 5번 카드에는 엎질러진 컵 앞에 우두커니 서서 슬퍼하는 한 남성이, 완드 (막대기) 5번 카드에는 서로를 향해 마구 막대기를 휘두르며 경쟁을 펼치는 5명의 무질서한 모습이 보입니다.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 말이 있듯이 나를 둘러쌌던 보호막에서 벗어나 한발 나아가면 궁핍과 허망함, 상실, 무자비한 경쟁 등의 고난이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마이너 아르카나가 5라는 도전적인 숫자가 끌어들이는 비정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면, 메이저 아르카나 5번 교황 카드는 그 답답한 현실을 타개할 열쇠로서 도덕을 제시합니다. 여기서 도덕은 철학이나 종교, 이 모두를 포함한 인문학, 또는 귀감으로 삼을 만한 정신적인 스승, 즉 멘토일 수도 있습니다.
타로 카드 점을 보게 되는 것은 대체로 고민이 있거나,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어서입니다. 어느 쪽이든 내담자는 현재와는 다른 미래로의 변화를 희망합니다. 변화에는 높은 확률로 위험 부담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이미 그 변화의 격랑 안에서 어쩔 줄 몰라 타로 카드에 손을 뻗은 내담자도 있을 것입니다. 배신을 당하거나, 돈을 잃거나, 경쟁에서 지거나, 남을 이기고도 허망함을 느끼거나, 저질러 버린 행동에 대해 후회하거나. 많은 경우 미래는 우리가 바라는 대로 펼쳐지지 않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인간은 종종 선과 악의 두 가지 선택지를 두고 기로에 서게 됩니다. 예컨대 주머니는 비었는데 배가 고픈 상황에서 눈앞의 가게에 있는 빵을 훔칠 것인가, 아니면 지금 당장은 참고 어떻게든 일을 해서 돈을 마련한 후에 당당히 가게에 돌아와 값을 지불하고 빵을 사 먹을 것인가, 와 같은 고민을 할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교황 카드는 어떠한 경우에도 사람 된 도리는 지키라고 조언합니다. 그것이 더 잘 살기 위한 가장 올바른 해결책이자 해답이라고 말이죠.
에리히 프롬은 저서 <인간의 마음>에서 사람은 죽음을 추종하며 퇴행하는 경향인 악과 삶을 추종하며 전진하는 경향인 선을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사고가 굳은 자는 삶을 거부하고 자궁 속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본능, 즉 죽음에 대한 사랑에 심취해 악에 무비판적으로 끌려가기 쉬운데, 여기서 선이라는 선택지로 나아가 이웃과 행복을 공유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자유가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번민이라는 망망대해에 떠있는 작은 조각배 같은 우리들이 어느 쪽이 선인가 판단이 망설여질 때에 등대처럼 기댈 수 있는 빛이 바로 도덕인 것입니다. 악에 취해 눈이 멀어버린 자는 그 빛을 알아보지 못하고 역행하여 죽음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겠지만, 각성하여 악으로부터 자유로운 자는 그 빛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퇴행을 조장하는 자아도취를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에리히 프롬은 비판적 사고, 객관성, 현실 직시 등의 진리의 개념을 교육을 통해 익혀야 하며, 철학과 인간학을 배움으로써 휴머니즘적인 신조, 즉 "'나는 곧 당신'이며 사람은 인간 존재의 같은 요소를 나누어 갖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는 감정"을 갖춰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제게는 교황 카드가 만나 보라고 권하는 정신적 멘토에 에리히 프롬은 당연히 포함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웨이트의 설명대로 교황은 특정 종교나 철학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저는 교황이 어떠한 경우에도 사람답게 살기 위해 지켜야 하는 정도(正道)를 상징한다고 이해하는데, 그 정도를 가르쳐 주는 것은 인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람답게' '잘' 살기 위해 꼭 알아야 하는 가치는 과연 무엇인지에 관하여, 유사 이래 수많은 인문학자들이 끊임없이 고민해 온 바 있습니다. 그 성과는 감사하게도 예술, 문학, 철학, 종교 등의 형태로 남겨져 있습니다. 점점 인간의 물적 대상화, 도구화가 진행되어 가는 이 삭막한 시대에 인문학의 설 자리는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아니면 먹고살기가 먼저였던 시절이 지나치게 오래 이어진 나머지 인문학의 입지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사람이 더 이상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각박한 풍조가 일상화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어느 쪽이든 이 카드를 펼쳐 보신 여러분께는 인문학에 관심을 가져 보시기를 권하는 바입니다. 철학 강좌나 교회, 성당, 사찰에 가서 좋은 말씀을 듣는 것도 좋습니다. 삶의 방향성을 바꾸려면 나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에리히 프롬의 말대로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보고 가슴 아파하고 다른 사람의 친절한 시선, 새의 노래, 풀밭의 푸르름에 감동할 줄 아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필요한 가르침을 구하십시오. 그리고 각성하십시오. 그래야만 시련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더 나은 나, 온전한 나, 진정 사람다운 나와 조우할 수 있습니다.
나도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다. 나는 이 반석 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 죽음의 문들(세력)이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마태복음 16장 18~19절
(주: 천주교에서 베드로는 초대 교황으로 간주됨)
[타로 카드의 메시지]
당신이 겪고 있는 시련은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거쳐야 하는 숙명적 과제입니다. 그 고난을 홀로 견디지 말고 가르침을 구하십시오. 사도(邪道)로 빠지지 않도록 올바른 길로 이끌어 줄 지혜로운 스승의 존재가 당신에게는 필요합니다. 그 스승이 꼭 사람일 필요는 없습니다. 교황은 인간계의 최고의 지혜와 자비의 마음을 상징합니다. 지금까지 인류를 악으로부터 지켜온 검증된 가르침을 찾아 따르십시오. 간혹 종교나 철학의 탈을 쓰고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무리가 유혹해 올 수 있지만, 그 위기에서 당신을 구원하는 것 또한 역사 속에서 권위를 인정받은 지혜입니다. 사람 된 도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배우고 깨우침을 얻으십시오. 한 명이라도 더 각성하고 자신과 서로를 존중한다면 사회에는 질서가 찾아올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 질서 안에서, 교황이 오른손의 사인을 통해 기원한 신의 가호를 받아 고난에 좌절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