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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경 Feb 05. 2024

3. 여황제

양극의 조화를 이루는 법을 터득한 우리는 결실을 얻는다.

3. The Empress

[타로의 그림 열쇠 by 아서 에드워드 웨이트]

호화로운 옷을 입은 여왕의 자태로 하늘과 땅의 딸인 우아한 인물이 앉아있다. 그녀의 왕관에는 12개의 별이 무리를 이루고 있다. 곁에 놓여 있는 방패에는 비너스의 상징이 새겨져 있다. 밭의 곡식이 그녀 앞에서 영글고 있고, 저쪽 너머에는 폭포가 있다. 그녀는 지구를 상징하는 구슬이 위에 박힌 홀을 들고 있다.

그녀는 에덴동산보다 열등한 지상 낙원, 즉 눈에 보이는 인간의 거처로 상징되는 모든 것이다. 그녀는 ‘하늘의 모후(Regina coeli)’가 아니라 ‘죄인의 피난처(Refugium peccatorum)’이며 수천의 결실을 낳는 어머니이다. (역주: 하늘의 모후, 죄인의 피난처 모두 성모 마리아를 뜻함)

그녀는 욕망과 그 날개, 태양을 두른 여성, ‘세계의 영광(Gloria   Mundi)’과 ‘지성소(Sanctum Sanctorum)’의 장막으로서 적절히 묘사되어 온 측면은 분명히 있으나, 모든 상징들이 통상과는 다른 방식으로 해석되지 않는 한, 그녀는 날개 단 영혼이 아님을 덧붙이고자 한다.

그녀는 보편적인 풍요와 신성한 말씀의 표면적 의미를 전부 초월한 존재이다. 이는 여성에게서 태어남이 그러하듯 인간에게 전달된 직접적인 메시지는 없기 때문에 자명하다. 즉 그녀 자신은 어떤 해석도 제공하지 않는다.

또 다른 개념으로는, 여황제 카드는 현세로부터도 진입 가능한 비너스의 정원 입구를 상징한다. 그 문 밖의 건너편으로 가는 길은 여사제가 알고 있으며 선택된 자들에게 전달되는 비밀이다. 이 카드의 속성에 대한 가장 오래된 정의는 상징주의적인 측면에서 완전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신의 말씀’, ‘신성’, ‘삼위일체’ 등과의 동일시가 그것이다.


여사제를 만나고 여행을 이어간 바보는 여황제와 마주합니다.


밭을 가득 메운 황금빛으로 익은 곡식, 그 밭에 넘치도록 물을 공급해 줄 폭포, 아이를 잉태한 자태라는 메시지성이 분명한 상징으로 금방 알 수 있듯, 여황제는 아름다운 결실과 풍요를 의미합니다. 다만, 이 결실과 풍요에는 자연과의 조화와, 여사제가 일러준 상반된 두 속성 사이의 균형을 이뤄낸 후여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따릅니다.


여황제의 왕관을 장식한 12개의 별은 12개의 달 (Month), 즉 사계절을 의미합니다. 자연의 순리를 따르며 천재지변까지도 이겨낸 농사꾼에게만 대지는 풍요로운 수확을 허락합니다. 임신도 알고 보면 마냥 쉽지만은 않습니다. 예비 부모의 건강 상태, 타이밍, 경제적 여건 등 고려하고 맞춰야 할 조건들이 적지 않죠. '합'이 맞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이 카드에서 말하는 결실은 복권 당첨 등으로 운 좋게, 요행히 쥐게 된 목돈과 같은 것이 아니라, 고생 끝에 얻어낸 값진 결실로 읽어야 합니다. 하늘에서 내린 기적이라기보다는 세속에 피땀 흘려 얻어낸 결과물인 것입니다.


결실이 가져다줄 미래에 대한 장밋빛 기대감으로 가슴이 벅차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겠지만, 밭의 무르익은 곡식은 수확 전이고, 여황제는 만삭일지언정 출산 전입니다. 마음만은 부자일지 모르나 그녀의 손에 확실히 들어온 것은 아직 아무것도 없습니다. 수확과 출산, 육아라는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기에 충분한 준비와 각오가 필요합니다. 다가올 풍요라는 왕관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이 카드의 또 다른 키워드인 '창조'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볼까요. 천성적으로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저는 철들기 전부터 지극히 당연하게, 어떤 망설임도 없이 그림 작가라는 꿈을 품었습니다. 그랬던 제가 성인이 되고서 전혀 다른 삶을 산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가 정신적인 불균형이었습니다. 부모님의 품을 벗어나 바깥세상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가치관과 새로운 지식 사이에서 괴리를 느꼈고, 묵혀뒀던 상처가 폭발하듯이 쏟아져 나와 그 후 수십 년 동안 저는 내면의 대지진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카드 속 여황제처럼 여유롭게 앉아 있을 틈이 전혀 없었죠. 툭하면 땅이 꺼졌으니까요. 그 요동치는 지표면을 달래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앉아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릴 정도로 안정된 상태이긴 합니다. 창작을 수행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화와 균형을 이뤄낸 것이죠. 여황제는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로 읽히기도 합니다. 창조는 데메테르의 가호를 받는 대지처럼 흔들림 없는 정서적 기반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예컨대, 대중에게는 '미친 예술가'의 대표 격으로 알려진 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인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를 읽어 보면, 창작자로서의 그는 지극히 이성적이고 차분한 '정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정말로 미쳐 버리거나 정신적인 균형을 잃은 예술가는 창작을 못 합니다. 넘치는 재능을 가지고 79세까지 장수를 누리면서도 오랜 세월을 정신병원에 유폐된 채로 보내 결국 작품은 몇 개 남기지 못한, 그나마도 많은 수를 자기 손으로 부숴 버렸다는 카미유 클로델이 그 예입니다. (물론 많은 예술가가 창작 활동을 통해 자신의 그림자를 이해하고 균형을 이루며 안정을 찾기도 합니다만, 이를 위한 최소한의 마음의 평화는 필수적이라고 저는 경험을 통해 깨달은 바 있습니다. 일단은 살아야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까요.)


고백하자면 이 글을 쓰면서 여행 중인 저의 바보 같은 영혼은 현재 여황제 카드의 단계에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보고 계신 그림과 글은 제가 가꾸는 밭에서 익어가는 곡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방패에 새겨진 사랑의 여신 비너스의 상징과, '죄인의 피난처' 즉 사람의 아들 예수의 어머니로서의 성모 마리아에 관한 웨이트의 언급에 대해 저 나름대로 해석해 보겠습니다.


둘의 공통적인 속성은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한때 저의 정신 체계가 완전히 바스러져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은 지경에 이르렀던 것은, 태어난 이후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탓이었습니다. 어른이 되고 나서 연인, (제가 아내, 엄마가 되어 만든) 가족, 친구를 통해 부분적으로나마 유사하게 조건 없는 사랑을 체험해 보고 나서야 비로소 스스로를 조금씩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지진은 멈췄고, 가까스로 단단한 땅 위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창작의 기반, 즉 두 개의 점 사이를 탄탄하게 이은 밑변(2)이 자리 잡았기에 조심스럽게 삼(3) 각형을 그려나가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안정감을 전하기 위해, 원작에서는 여황제가 꼿꼿이 허리를 세우고 있지만 제 일러스트에서는 푹신한 쿠션에 편하게 기대어 앉은 자세로 바꿔 표현해 보았습니다.


앞서 강조했던 결실의 전제 조건인 조화와 균형은, 나와 다르고 낯설고 불편한 가치를 인정하고 수용함으로써 연결되어야지만 이끌어낼 수 있는데, 이를 가능케 하는 원동력은 사랑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멀리 떨어진 두 점을 이어 선을 그리는 손이야말로 사랑이라고 할까요?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철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사랑에 대해 '주는' 활동을 통해 타인을 풍요하게 만들고, 그 타인을 주는 자로 만들고, 함께 생명을 탄생시키는 기쁨에 참여하고, 그 생명을 보호하고 존중하고 책임지고, 항시 감사하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사랑의 기술> 중) 농부로 하여금 천재지변으로부터 밭을 지키게 하고, 여황제에게 새 생명을 선사해 준 것은 다름 아닌 사랑입니다. 그렇게 거둔 귀한 결실은 역시 사랑으로 지키고 키워가야 합니다.


[타로 카드의 메시지]

당신이 애정을 쏟으며 노력한 덕분에 꿈꿨던 열매는 맺혔습니다. 아름다운 미래가 기대되시죠? 당신은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다만 책임도 따름을 명심하십시오. 당신이 여태껏 애정으로 키워낸 결실은 역시 애정으로 지켜나가야 합니다. 사랑을 베푸십시오. 당신 자신과 주변 사람들도 관대하게 품으십시오. 그러면 카드 속의 자애로운 여황제처럼 풍요와 번영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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