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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경 Jan 29. 2024

1. 마법사

우리는 처음부터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모를 뿐.

1. The Magician

[타로의 그림 열쇠 by 아서 에드워드 웨이트]

마법사 복장의 자신 만만한 미소를 짓고 눈을 반짝이는 젊은이는 아폴로신의 표정을 짓고 있다.

그의 머리 위에는 성령의 신비로운 표식이자 생명의 표식이 있으니, 이는 숫자 8을 수평으로 눕힌 무한대의 상징∞과 같다. 허리에는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형상의 성스러운 뱀 모양의 허리띠가 둘러져 있다.

잘 알려진 영원의 상징인 이것은, 여기서는 특히 영혼적 성취의 영원함을 나타낸다.

마술사는 오른손에 쥔 지팡이를 하늘을 향해 높이 쳐들고 왼손은 땅을 가리키고 있다. 신비주의 단체의 고위직들에게 친숙한 이 상징은, 은혜, 덕, 빛을 높으신 존재께서 낮은 존재에게 내려 보내고 계심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러한 상징들은 전반적으로 성령이 지닌 힘과 재능, 그리고 그와의 소통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마법사 앞에 놓인 테이블 위에는 자연계의 4 요소를 상징하는 타로 카드의 4개의 슈트(Suit) 상징이 있으며, 이들은 마치 숙련된 도박꾼 앞에 놓인 패처럼 나열되어 있다. 그리고 그는 이를 자신의 뜻대로 응용한다. 아래에는 장미와 백합, 즉 ‘샤론의 꽃 (flos campi)’와 ‘골짜기의 백합 (lilium convallium)’(역주: 아가 2장 1절에 등장하는 꽃들)이 정원의 꽃으로 변모해 있다. 이는 열망을 가꾼 결과 (문화)를 나타낸다.

이 카드는 신의 반영체인 (역주: 창세기 1장 26절) 인간에게 내재된 신성한 동기, 즉 천상의 존재와 합일을 이루고자 하는 자유 의지를 상징한다.

이는 또한 매우 고차원적인 의미로 확고하게, 모든 차원에서 인간 개개인의 존재가 통합된 하나임을 상징한다.

참고로, 우리가 생명의 표식이라고 불러온 숫자 8과 닮은 기호는 기독교 그노시스주의자 (역주: 기독교의 한 교파. 현재 이단으로 분류된다. 다른 말로는 영지주의)의 ‘그리스도의 부활은 ‘8 (Ogdoad)로 통한다’는 주장을 상기시킨다.

이 신비로운 숫자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성령과 주님의 땅인 천상의 예루살렘이라고 일컬어진다. 마티니즘 (역주: 기독교 신비주의의 한 교파)에 따르면 8이라는 숫자는, 그리스도의 숫자이다.


여행을 막 시작한 바보가 만난 첫 인물은 마법사입니다.


우선 제가 그린 일러스트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타로 카드의 상징체계를 가급적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변주를 하려 주의를 기울였습니다만 몇 장은 꽤 과감히 재해석을 했고, 1번 마법사 카드는 그중 하나입니다. 파멜라 콜먼 스미스가 그린 원작 라이더-웨이트 카드의 마법사는 4대 원소 (컵=물, 막대기=불, 금화=흙, 검=공기)가 가지런히 놓인 테이블 앞에 서있는데 그 자세는 마치, 마야부인의 옆구리에서 태어나자마자 오른손은 하늘을 왼손은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서 오직 나만이 존귀하다)"라고 외쳤다는 아기 싯다르타왕자, 즉 부처님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수비학에서 1은 창조(무에서 유를 창출해 내는 최초의 숫자), 강한 개성 (유일성) 등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세상은 내가 있음으로써 존재하고 (1(나)=All (세상)), 내가 멸하면 세상 또한 동시에 사라집니다 (0(나)=0(세상)). 즉, 내가 곧 세상의 전부이지요. 이토록 존귀한, 심지어 유일무이하고 절대적인 존재를 불안, 질투, 실망, 기타 등등의 잡스러운 감정이 어찌 해할 수 있겠습니까? 이 깨달음을 얻은 순간, 우리는 그간 우리 자신을 괴롭혀 왔던 온갖 번뇌를 있는 그대로, 여유롭게 수용할 수 있게 되고 비로소 해방될 것입니다. 그리고 카드에서 4대 원소로 표현된 잠재된 가능성을 마음껏 발휘해 끝내는 저마다의 우주를 창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려움 없이, 그 누구의 눈치 보지 않고, 자유자재로 말입니다. 이러한 연유로, 중력에서 벗어나 마음껏 마법을 부리는 초인처럼 그리고 싶어서 걸리적거리는 테이블을 걷어내고 마법사를 공중에 띄웠습니다.


이제 마법사의 주위를 장식한 꽃을 살펴볼까요? 성경에서 칭송받는 샤론의 꽃, 골짜기의 백합처럼 우리는 각자 고유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장미를 심은 곳에서는 장미가 자라고, 백합을 심은 곳에는 백합이 자랍니다. 카드 속 마법사가 그 귀하디 귀한 야생의 꽃들을 찾아서 가꿔냈을 정원 또한 그가 창조해 낸 소우주로 풀이해도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내가 하는 행동, 나의 선택이 곧 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라는 우주를 창조하는 마법은 나의 행동과 선택이고, 그 주체인 마법사는 나입니다.


이 진리를 몰랐던 저는 정원을 가꾸기는커녕, 제가 품고 태어난 씨가 무엇인지 모르고, 또는 어렴풋이 알면서 외면하고는 헛농사를 지으며 오랜 기간 텅 빈 황무지를 떠돌았습니다. 입으로는 예술가로 살고 싶다고 푸념하면서 적성에 맞지 않는 분야의 회사원이 되는 마법을 부렸고, 불행한 회사원의 우주를 창조했습니다. 또 사랑받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외치면서 버림받은 아이가 되는 마법을 부렸고, 버림받은 아이의 우울하고 고독한 우주를 창조했습니다. 실체가 없는 우주를 말입니다. 거기서 비롯된 공허한 감정은 소멸하고 싶다는 충동을 일으켰고, 일단은 살기 위해서 상담소와 정신과를 전전해야 했습니다. 타로 카드도 제게는 또 한 가닥의 생명줄이었습니다. 숫자로 치면, 온전히 '1'로 살아야 하는데 '0'에도 미치지 못하고 역행하는, '-(마이너스) 0.5~6'정도의 삶을 살아왔다고나 할까요.


여행자는 통상적으로 목적지부터 먼저 정하고 그에 맞춰 나아갈 방향을 잡습니다 (실생활에서는 정처 없는 여행도 있습니다만). 진정한 '자아'와 조우하기 위한 내면 여행을 잘 하려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목적지)부터 자신에게 던져야 합니다. 그 답이 무엇인지에 따라서 당신은 전혀 다른 자아와 만나게 될 것입니다. 또는 못 만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이 질문은, 살아생전 '정답'을 알아낸다면 성인의 반열에 오를 만큼 난도가 높습니다. 과장을 보태 주장하자면, 완전무결한 정답을 얻지는 못할지언정 그에 최대한 근접하기 위해 모두가 몸부림치며 남겨온 궤적이 곧 인류의 문명일 것입니다.


이 카드와 마주한 당신께는 "나는 누구일까?"라는 어려운 질문의 답을 고민해 보시기를 권하는 바입니다. 영구적인 정답은 아닐지라도 지금 당장은 답이 될 법한 그 무엇을 알아야지만 걸맞은 마법=가능성=능력을 펼칠 수 있을 터이기 때문입니다. 이 카드가 "목표를 가지고 노력하면 달성할 수 있다"라는 식으로 해석되는 데는 바로 이러한 이유가 있습니다.


0번 바보 카드에서 등을 떠밀고 1번 마법사 카드로 가야 할 곳을 일러 주며 응원하는 웨이트의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오랜 내담자로서 제가 이해한 타로 카드는 번뇌하는 중생에게 우선은 무한 긍정 에너지를 심어주는 선량한 상담자입니다. 곧 따끔한 경고가 이어질 테지만 말입니다. 말하자면, 비주얼한 상징체계로 제공되는 심리적 당근과 채찍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카드가 제시한 과제는 한 단계 성장한 자아(우주)와의 조우입니다. 이 단계적 성장은 살아 있는 동안 끊임없이 반복될 것입니다.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필연적으로 불완전할 수밖에 없지만, 완전함=신성을 추구하는 하는 동기, 유전자를 타고났기 때문입니다. 이 불완전함과 완전함의 간극에서 번뇌가 발생합니다. 원동력 자체는 무한하나, 이를 다 활용하지 못하고 삶을 마쳐야 하는 인간의 비극적인 숙명 탓입니다. 유한하고 심지어 한 번 뿐이니 우리는 더 불안해하고, 고민하는 것입니다. 그런 인간을 위로하면서, 어차피 다 쓰지는 못하겠지만 기왕지사 잠재된 가능성을 최대한 이끌어내 그 능력을 발휘하도록 고안되었고, 그 역할을 또 톡톡히 해왔기에 타로 카드가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사랑받고 있는 것이리라고 감히 추측하는 바입니다.


모두가 처음부터 그 능력을 다 인지하고 남김없이 발휘하고 있다면, 또는 각자의 우주가 애초부터 완성형으로 창조되었다면, 타로 카드는 발명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고민 없는 완벽한 세상에 상담자는 필요 없는 법이니까요.


단기적으로라도 목표만 세워진다면, 앞으로 어떤 시련이 닥쳐올지, 그때마다 당신의 타고난 능력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타로 카드는 알려줄 것입니다. 물론 족집게 선생님처럼 시시콜콜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열쇠'만 툭, 다소 불친절하게 던져줄 뿐이죠. 누구든 스스로 노력을 해야지만 성장을 하기 때문입니다. 애매모호하게 보일락 말락 하는 그 열쇠를 찾아내 신성하고 충만된 우주로 통하는 문을 여는 것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마법사 카드가 알려주는 것은, 부단한 자문자답과 수행을 통해 그 열쇠를 찾아낼 잠재력, 가능성이 당신에게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침내 열쇠를 찾아낸 당신이 문을 활짝 연 순간, 여러분의 제1우주는 완성될 것이고, 제2우주로의 여행이 시작될 것입니다. 하늘로 치켜든 그의 오른손은 우리가 삶이라는 여정에서 지향해야 하는 완성된 세계=신성을 가리킵니다.


[타로 카드의 메시지]

당신이 0에서 1이 된 시점, 즉 태어난 순간에 삶이라는 이름의 우주의 틀은 창조되었습니다. 그 우주를 채우며 완성해 가는 과정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부처님은 삶은 고통이라고 말씀하셨지요. 당신에게는 그 고통을 이겨낼 충분한 가능성과 존재 자체의 존귀함이 있습니다. 다만 깨닫지 못했을 뿐입니다.


자신의 세계를 변화시키는 데 마법은 필요 없다. 우리는 우리 안에 이미 필요한 모든 힘을 가지고 있다. -조앤 K. 롤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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