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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두근 Oct 24. 2020

해외 봉사의 꿈이 깨어지고, 버킷리스트를 수정하다

내 꿈을 미리 맛보자

나의 버킷리스트 중에 ‘해외봉사’가 있다. 한국 정부 파견 해외봉사단 (World Friends Korea)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으로 해당 분야에 경력을 가진 퇴직전문가를 위한 1년 단위로 파견되어 활동하는 해외봉사 프로그램이다. 정보통신, 산업기술 등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산업발전 개발 노하우를 전수하여 개도국의 경제, 산업 발전에 기여하고자 진행되고 있다. 


월드프렌즈 자문단은 해외봉사이기도 하지만 퇴직전문가 활용이라는 측면도 있어 연봉도 5천만 원 수준으로 봉사단 중에는 가장 높다. 2015년도에 이직을 위해 한 달을 쉬고 있던 때에 마침 월드프렌즈 자문단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할 기회가 있었다.                     


해당 교육에는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에서 조만간 파견할 월드프렌즈 자문단이 절반이었고, 나머지는 월드프렌즈 자문단에 관심 있는 교육 신청자가 절반이었다. 월드프렌즈 NIPA 자문단으로 선발된 분은 교육 직후에 우즈베키스탄, 베트남, 에콰도르, 벨라루스, 에티오피아, 가나 등으로 1년 파견이 예정된 분들이었다. 


개도국에 월드프렌즈 자문단에 파견 예정인 분 중에는 이미 몇 년간의 파견 경험을 가진 분도 몇 분이 포함되어 있었다. 정확한 교육 명칭은 ‘2015년 전자정부 글로벌 컨설턴트 과정’이었다. 봉사단으로 파견되어 1년 이상 해외에서 월드프렌즈 자문단으로 활동하실 분 대상 교육이어서, 해외 적응 교육과 직무 교육을 모두 다루고 있었다.                

     

아프리카 가나에서 2년 넘게 활동하신 분의 말에 의하면, 그는 말라리아에 걸려 죽을 뻔한 고비도 넘겼다고 한다. 2년 넘게 있었지만 현지의 물을 먹으면 100% 설사를 할 정도로 식수 등 위생 사정도 열악하다고 했다. 자문단은 부부가 같이 갈 수도 있지만 아내가 적응하기 힘든 환경이라서 본인은 혼자 지냈다고 한다. 치안 때문에 외교 공관 주변의 주택을 임차하여 혼자 외롭게 살았고, 사 먹는 음식에 질려 집에서 직접 밥을 해 먹었다고 한다. 


개도국에서는 모든 여건이 한국보다 열악하고, 느리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에 적응해야 한다고 했다. 봉사단 일이 현지 개도국을 위해 하는 일이지만, 일을 진행하기 위해 오히려 뇌물을 주거나 선물로 달래야만 겨우 협조를 해준다는 것이다. 마음을 완전히 비우고 현지의 문화에 적응하지 않고, 한국에서처럼 일하고 성과를 기대하면 안 된다고 했다. 열악한 의료 수준 때문에 사소한 병이라도 걸리면 위험하므로, 건강관리를 무척 신경 써야 한다고 했다.                    


해당 교육은 3주간 실시되었고 현지에서 수행하게 될 직무의 어려운 점, 좋은 점 모두 상세히 알 수 있게 되었다. 더구나 여러 개도국에서 몇 년간 자문단 생활을 이미 경험하신 분들과 3주간 교류하면서, 해외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생생히 알 수 있었다. 3주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현지 경험을 하신 분의 생생한 얘기를 듣고 난 후, 나의 꿈과 현실은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느꼈다. 그래서 월드프렌즈 자문단에 대한 계획을 수정하게 되었다.                    

내가 내린 결론은 현재의 나는 장기 1년 정도의 월드 프렌즈 자문단은 내가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것이다. 만 50세 이후에는 자문단 신청이 가능하지만, 당분간 월드프렌즈 자문단 해외봉사 꿈은 보류하기로 했다. 길게 보고 10년쯤 후에 자문단으로 해외 봉사할 수 있는 적응력을 길러 나가기로 했다. 대신에 개도국에 단기간 방문해서 현지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보기로 했다.                     


기다리던 기회는 1년쯤 뒤에 찾아왔다. 코이카에서 연락이 왔다. 코이카(한국 국제협력단)는 해외봉사단과 우리 정부의 해외원조 사업을 수행하는 정부 기관이다. 아프리카 카메룬에 전자조달 시스템 구축 사업이 있는데 사업타당성 조사에 참여할 수 있는지 물었다. 기간은 10일 단기이고, 비행시간을 빼면 업무는 5일간 수행하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전자정부 글로벌 컨설턴트 과정’을 수료자 중에서 IT시스템 경험자를 찾았다는 것이다. 나는 정보시스템 감리 업무를 수행 중이었고, 카메룬에 구축하고자 하는 전자조달시스템 분야의 경험도 있었다. 코이카가 찾는 적임자 요건에 부합했기 때문에 연락이 온 것이다.                    


해외여행 경험은 몇 번 있지만, 개도국에 그것도 아프리카에 업무로 갔던 적은 없었다. 일단 아프리카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불안했다. 1년 전 가나에서 자문단을 하셨던 분 얘기 때문에 말라리아 등 병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아내 친구 중에 코이카 직원이 있어 아프리카 출장을 가도 안전한지 물어보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출장을 적극 권유했다. 도전이라 생각하고 참여하기로 했다. 


코이카에서는 가장 먼저 ‘황열병’ 예방주사를 맞아야 입국이 가능하다고 한다. 2시간 넘게 걸려 인천공항에 가서 ‘황열병’ 예방주사를 맞고 노랗게 생긴 증명서를 받았다. 말라리아 걱정이 되어서 말라리아 예방 접종도 맞겠다고 했더니 말라리아는 예방주사를 맞아도 예방된다고 보장 못하므로 맞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그럼 재수 없으면 말라리아에 걸릴 수도 있다는 말? 최대한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하되, 출장지인 야운데는 수도이니 모기가 많지 않을 거라고 위로해준다.                     


불안감을 가지고 카메룬 출장을 갔다. 카메룬으로 바로 가는 직항은 없었다. 약 12시간 걸려 파리에 도착하고 파리에서 1박을 했다. 프랑스 파리는 처음 방문이라 다음날 아침 일찍 없는 시간을 쪼개서 일행과 함께 택시로 호텔과 1시간 거리 에펠탑 구경을 갔다. TV에서만 보던 에펠탑은 생각보다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파리는 예술과 문화의 향기가 그윽했다. 


센느 강변과 몇 곳을 구경하고 오후에 비행기를 타고 카메룬으로 갔다. 약 4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야운데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밤 10시였다. 입국심사를 하러 갔다가 50m 넘게 밀집대형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들을 보고 깜작 놀랐다. 여행으로 갔던 일본, 중국, 동남아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광경이 펼쳐졌다. 


흡사 아주 낙후된 버스 터미널 같은 낡은 곳에, 약 300명의 사람들이 가득 차게 서서 입국심사를 기다리고 있는데 30분 넘게 줄이 움직이지도 않는다. 입국심사관은 너무나 태평하게 느릿하게 움직이고, 게다가 무슨 기준인지 몇몇 사람들만 골라서 통과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카메룬의 강한 인상은 그날 저녁 호텔에서 만들어졌다. 코이카 직원을 포함하여 갔기 때문에 호텔 예약 등은 그가 미리 모두 해두었다. 그런데 호텔 로비가 공항에서의 입국장과 비슷하게 사람들이 많고 웅성 되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예약을 하고 갔지만 우리는 한 시간 동안 기다리라는 말만 듣고 로비 한쪽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체념한 우리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잠만 편하게 잘 수 있다면 이해하기로 마음먹고 얌전하게 기다렸다. 그런데 한 시간 뒤 호텔 직원은 오버 부킹이 되어서 어쩔 수 없으니, 근처 호텔로 안내할 것이고 좋은 호텔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였다. 우리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컴퓨터로 예약을 처리하는 게 아니고, 공책에 수기로 예약을 받았던 것이다. 근처 호텔로 가서 방을 배정받은 나는 울고 싶었다. 호텔은 귀신이 나올 것 같은 분위기인데, 화장실에 불이 켜지지 않는다.                    


다음날 코이카 해외사무소를 방문해서 사무소장님과 차를 마시고 업무가 시작되었다. 사무소장님이 카메룬 한국대사관의 직원 몇 분과 대사님과 점심 약속도 미리 알려주셨다. 카메룬 당국과도 여러 차례 미팅을 가졌고, 심지어 카메룬 정보통신부 장관과도 인사를 하고 미팅 시간을 가졌다. 


타당성 조사 대상인 전자조달 시스템 구축 사업은 약 700만 불 규모 사업이므로, 카메룬 입장에서는 상당한 규모의 돈을 원조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우리 일행을 잘 대접하고자 한 것이다. 업무 미팅을 진행하면서 간단한 인사말과 몇 가지 꼭 필요한 질문 외에는 나는 거의 벙어리 신세였다. 


내 역할은 시스템 구축 SW 관련만 조사해서 보고서로 작성하는 것이었다. 창피하긴 했지만 보고서 작성을 위해 꼭 필요한 질문은 영어에 능통한 코이카 직원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는 내가 살면서 만났던 사람들 중에 가장 영어를 잘하는 듯 보였다. 내가 세 번째로 강한 인상을 받은 것은 그의 영어 소통 능력이었고, 나도 특히 영어 말하기 공부를 해야 하겠다고 느끼게 된 계기였다.                    


카메룬에는 교통 신호등이 없었다. 정보통신부, 재정부 등 정부 청사가 몰려 있는 부근을 제외하면 도로가 포장이 안 되어 있는 것도 놀라웠다. 길거리에서 행상하는 사람을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어떤 사람은 신발 몇 개로, 어떤 사람은 청바지 몇 장을 손에 또는 팔에 들고 행상을 하는 풍경이었다. 


지나가다가 공터에 소파가 몇 개 있길래 버리기 위해 내놓은 것이냐고 물으니 그곳이 가구 가게라고 한다. 카메룬에서의 식사는 현지 식당 중 가장 좋은 곳만 다녀서인지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카메룬이 프랑스 식민지라 불어를 썼고, 고급 식당은 프랑스식 요리가 많은 듯해도 특히 빵은 잘 만드는지 맛이 있었다.              

       

카메룬에서 네 번째로 강한 인상은 해외 봉사단이었다. 우리 업무를 도와주었던 대학 졸업을 앞둔 25살 여자 봉사단이었다. 불어를 능숙하게 했고, 해외 경험을 쌓기 위해 봉사단으로 왔다고 했다. 봉사단은 자문단과 달리 봉사 개념이 강하고 급여가 아닌 용돈 수준의 최저 비용만 지급된다. 그러다 보니 숙박과 식사 등을 현지인 수준의 시설과 음식을 먹는다고 한다. 그런 어려운 환경에서 봉사단은 2,30대 여성들이 더 많고 수십 명이 카메룬에 와서 활동한다고 들었다. 나는 그녀들의 용기와 도전정신에 박수를 보냈다.                     


카메룬에는 두 번의 방문을 했다. 2016년 사업 전 타당성 보고서를 썼던 그 사업 계획이 2019년 실행되었고, 나는 실행된 전자조달 구축사업에 감리로 또 참여하게 될 계획이다. 내가 참여해서 계획을 세웠던 개도국 원조 사업이 실행되어 그들을 도울 수 있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 


그 외에도 요르단, 방글라데시, 이라크 등 개도국 원조 사업에 참여하여 경험을 쌓고 있다. 코이카 원조 사업으로 4 개국을 방문했었지만 관광을 했던 곳은 인디아나 존스에서 성배를 찾아 떠난 도시로 나오는 페트라(Petra) 관광을 하루 했던 것이 전부다. 따로 관광을 할 여유는 없었지만, 같은 시대를 살고 있지만 다르게 살아가는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잠깐 인생을 돌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월드프렌즈 자문단으로서 해외봉사는 언젠가 해보고 싶은 일이다. 하지만 준비 안된 상태로 도전했다면 그것은 꿈이 아니라 악몽이 되었을 것이다. 꿈과 현실은 많이 다르다. 그래서 꿈으로만 간직하다가 갑자기 실행했을 때, 내가 기대하고 원하던 삶은 아님을 알고 좌절하는 일은 예방해야 한다. 


해외 이민을 원한다면 최소한 몇 달은 그 나라에 살아보고 이민을 꿈꾸고 준비해야 할 것이다. 달랑 그 나라에 며칠간 여행해 본 경험과 지식만으로 이민을 꿈꾸는 것은 너무 위험한 행동이다. 전원생활을 꿈꾸고 있다면, 큰돈을 들여 덜렁 땅을 사고 집을 짓고 이주해서는 안된다. 그 지역에서 한 달 살아보기부터 시작하고 마음에 든다면, 최소 1년은 전세로 살아보는 게 좋다. 


당신이 꿈꾸는 어떤 것이 있다면, 평소에 기회를 만들어 내가 기대하고 있는 것과 실제가 일치하는지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를 계속 확인해 나가야만 한다. 내가 원하는 삶, 내가 꿈꾸는 것에 조금씩 지속적으로 다가가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당신이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전원주택에서 사는 것. 여행을 마음껏 즐기며 사는 것. 골프를 실컷 치며 사는 것. 해외로 이민을 가는 것. 각자 원하는 삶은 다르다. 원하는 삶을 실행에 옮기는 것은 쉬운 문제는 아니다. 예를 들어 전원주택에서 사는 것을 실행에 옮기려면 상당한 돈이 필요하다. 그리고 큰돈을 들여 전원생활을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도시로 유턴하는 경우도 많다. 평생의 꿈을 실현해 보지 못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평생의 꿈을 실행했는데 나의 기대와 달라서 실망하는 경우도 문제다. 


내가 꿈꾸었던 것이 가짜 욕망일 수도 있고, 나와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문제점들을 미리 발견해서 수정하고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을 즐기며 살기 위해서는, 나의 꿈을 미리 조금씩 체험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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