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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두근 Oct 24. 2020

오십 대에 어학연수를 가다

다시 가슴 뛰게 하는 꿈을 꾼다

당신은 새해 첫날에 어떤 계획을 세웠나요? 다이어트, 금연과 더불어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영어공부라고 한다. 누구나 원하지만, 원하는 대로 잘 안되기 때문에 계속해서 ‘하고 싶은 일 리스트(Want-to list)’에 등장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30대 중반에 영어 공부를 포기했다. 그때 미국 회사의 한국지사에 근무하며 미국 본사와 기술적인 이슈에 대해 업무 메일을 주고받느라 진땀을 흘리던 때였다. 나는 대학 이후로 나름대로는 영어 공부를 꾸준히 해왔는데, 본사 미국인 직원들이 방문했을 때 그들만의 대화를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었고 끼어들 수도 없었다. 영어 공부를 포기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본사에서 미국인 직원들이 서울에 왔을 때 느낀 참담함 때문이었다.                     

영어 학원에서는 외국인 강사와 대화도 더듬거리며 하는 수준이었으나, 그것은 학생에 대한 ‘배려 영어’였기 때문이었다. 학원에 가서 영어 회화 수업에서 내가 말할 수 있는 시간은 겨우 5분에서 10분 사이였다. 넘기 힘든 벽을 느꼈다. 그런 정도로 공부해봤자 그들끼리의 대화에 끼어들 수 없음을 자명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일 이후로 영어에 자신이 없어졌고 그다음부터는 외국인 회사는 이직 대상에서 제외했었다.                    


그 후로 십 년 넘게 영어를 사용할 일이 없었다. 우연한 기회에 월드프렌즈 해외봉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2017년 코이카를 통해 ‘카메룬 전자조달 시스템 구축 타당성 조사’에 참여하게 되어 카메룬을 10여 일 다녀왔는데, 출장기간 내내 벙어리 신세였다. 내가 영어를 좀 더 잘할 수 있다면, 그들을 좀 더 잘 도울 수 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 많이 아쉬웠다. 


네이티브 스피커들 사이에 끼어드는 것은 힘들지만, 서로 외국어로서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것은 노력하면 될 수 있다고 느껴졌다. 30대 중반에 영어 공부를 중단한 것은 잘못된 판단임을 깨달았다. 카메룬 출장 이후로 매일 아침에 필리핀 선생님이랑 전화로 영어 회화를 공부하고 있다. 공부를 다시 시작하면서 매일 아침 20분씩 10년만 꾸준히 해보자고 계획을 세웠다.                    


매일 아침 전화로 영어 공부를 시작한 지 1년이 지나자, 아주 기초적인 수준으로는 내 생각을 영어로 말하고 서로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좀 더 자유롭게 의사소통이 가능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한 달 만이라도 하루 종일 영어로 듣고 말한다면, 뭔가 될 것 같았다. 어학연수를 가보고 싶은 생각이 솟아났다. 나는 대학 때 미국으로 교환학생으로 갈 뻔했는데,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포기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유학까지는 아니더라도 어학연수라도 해보고 싶은 로망과 환상이 있다.                     


갑자기 어학연수에 꽂혀 필리핀, 싱가포르, 영국 등 어학연수 프로그램을 찾아보고 있었다. 마침 지인 한 명이 십여 년 전에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몇 개월 다녀왔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고 그 이후 직장에서 영어가 필요하면 지인이 나서게 되었다며 필리핀 어학연수를 추천했다. 


그에 의하면 영국, 미국 등에 가면 후진국 사람으로 대하는 분이기에 주눅이 들기도 하고 강사와 1:1 클래스는 없고 비싸다고 했다. 대신 후진국인 필리핀에 가면 그들이 한국인은 선진국 사람이기 때문에 주눅 들지 않고 편하게 공부할 수 있으며, 인건비가 싸서 1:1 클래스가 많다고 했다. 그래서 초보자가 영어를 배울 때는 필리핀이 훨씬 좋다는 것이다.                     


마침 그때는 2월이라 감리 회사는 완전 비수기여서 일이 바쁘지 않은 관계로 휴가를 길게 써도 될 만한 시기였다. 지인이 추천한 필리핀 어학원을 알아보니 한 달이 최소 단위로 개설되고 있었다. 설날 연휴가 다가오고 있어서 설날 연휴와 17일간 휴가 그리고 주말을 포함하면 한 달 어학연수가 가능했다. 


비수기라고 하지만 17일 연속 휴가를 내서 한 달을 회사에 나오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은 직장인에게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주변에서 2주 이상 휴가를 내는 경우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잘 못 되면 잘릴 각오를 하고, 사장님에게 휴가를 말씀드렸다.                    


내가 선택한 필리핀 어학원은 세부에 있는 CPILS라는 오래된 학원이었다. 지인이 십 년 전에 다녀왔던 곳이다. 학원 안에 기숙사와 식당 시설이 있었다. 수업은 하루 8시간, 1시간은 선택 수업, 2시간은 자습시간 모두 11시간 수업이었다. 일과가 아침 9시에 시작해서 저녁 9시에 끝났다. 평일은 외박이 불가했고, 주말만 관광을 위해 외박이 허락되었다. 


하루 정규 수업 8시간 중에서 강사와 1:1 공부를 하는 것이 4개 클래스 4시간, 4:1 클래스가 2시간, 8:1 클래스가 2시간으로 편성되었다. 정규 수업 시간에 일기, 쓰기, 듣기, 말하기가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가장 좋았던 것은 역시 1:1 시간이 하루 4시간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1:1 클래스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만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달 동안 필리핀 세부에서 머물렀지만 거의 대부분의 시간은 학원 내에서 생활했다. 기숙사는 1실 2명이 기본이었다. 이왕 공부하러 가는 것이기에 나는 한국인과 방을 쓰고 싶지는 않고, 외국인과 쓰겠다고 신청을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처음에는 방을 혼자 썼고, 마지막 1주일만 대만인과 함께 방을 썼다. 일주일 함께 지낸 대만 청년은 30대 초반이었고, 의료기기 영업을 하는 청년이었다. 


저녁 9시에 수업을 마치고 헬스장에서 한 시간 운동을 하다가 저녁 10시 이후에 들어가면 피곤하기도 하고 다음날 수업 때문에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학원 내에 자그마한 풀장이 있었으나 한 달 있으면서 딱 한번 그 수영장을 이용하였다.                    


필리핀에 도착한 첫 주말과 한국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주말을 제외하면 3번의 주말만 관광을 할 수 있다. 나 혼자 학원에 등록해서 갔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 학원은 1/3은 한국인, 1/3은 일본인, 1/3은 중국인이었고 간혹 서양인, 어린 학생, 성인 학생이 있었고 나머지 대부분은 대학생들이 주류였다. 


처음에는 한국인 대학생들의 주말 관광에 합류할 생각이었으나, 나이 차이가 있어서인지 조금 불편해하는 것 같아서 따로 행동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수업도 모두 다른 수업이라 어울릴 기회가 없으니 더욱 서먹했다.                     

나는 몇 년 전에 아내와 왔던 보라카이 여행 며칠을 빼면, 필리핀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어학원 내에서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고민하다가 1:1 클래스 필리핀 선생님 중에서 가장 발음이 좋아 호감 가는 선생님에게 고민을 얘기했다. 주말에 관광을 하고 싶지만 같이 할 사람이 없으니, 주말 관광에 가이드 역할을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주말 시간을 뺏는 거니까 가이드 비용을 사례하겠다고도 했다. 그녀는 사례비는 받지 않겠다고 하면서, 대신 친한 친구들과 함께 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Bea 선생님은 크지 않은 키에 귀여운 둥근 얼굴이고 스마트했다. 선생님이지만 우리 나이로 26세 정도니 아들 또래이다. 나는 수업에서 선생님을 며느리 삼고 싶다고 여러 번 농담을 하기도 했다. 나는 정말 예의 바르고 스마트한 그녀라면 외국인이지만 며느리로 환영하고 싶었다. Bea 선생님은 한국보다는 영국을 동경했다. 영국을 가고 싶어 했지만 비자받기가 어려웠다. 주말에 Bea 선생님은 자신의 엄마 차를 끌고 왔다. 그리고 절친 2명과 함께 왔고 그중 한 명은 또 다른 선생님이었다. 나머지 한 명도 어학원 선생님이었고 인사만 나누던 아는 얼굴이었다.                     


Bea 선생님 덕분에 세부 시내 구경, 백화점 구경, 전통 시장 구경을 했다. 그리고 한 번은 조금 멀리 배를 타고 유명 관관지인 보홀 섬 투어를 하기도 했다. 서로 장난치고 재잘거리는 26살 여자 선생님 세 명을 모시고, 맛있는 거 먹고 관광하면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나는 돌아오기 전에 그녀들이 주말 시간을 허락해 준 대가로 충분할 만큼 사례를 했다. 한 달 필리핀 어학연수를 통해 영어 선생님과 1:1 대화시간을 통해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들의 어려움, 생각, 문화 듣고 이해하고, 궁금한 점 들을 질문할 수 있었다. 영어로 사람들과 대화하고 그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 내가 얻은 성과이다.                     


어학연수는 한동안 잊고 지냈던 어릴 적 꿈이었다. 작은 것이지만 꿈이 이루어졌다. 어른이 되면서 벅찬 현실과 싸우느라 나의 꿈은 정지 상태로 있었다. 나는 더 이상 꿈꾸지 않았다. 작지만 어학연수의 꿈을 이룬 다음 새로운 꿈이 자라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공부에 매진하는 어학연수는 경험해 보았다. 


앞으로는 여행을 하면서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하면서 영어 실력을 키우고 싶다. 가능한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싶고, 겉모습만 보는 여행이 아닌 그곳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여행을 해 보고 싶다. 나는 개도국 사람들을 돕는 해외봉사를 하고 싶다는 꿈도 있는데, 영어 소통 능력을 키우면 좀 더 효과적으로 해외봉사도 할 수 있다는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꿈이 꿈으로서만 멈추어 있어서는 안 된다. 꿈은 이루어야 하고, 계속 새로운 꿈을 꾸어야 한다. 박제되어 장식장에 들어 있는 꿈은 죽은 꿈이다. 꿈은 나를 가슴 뛰게 만들어야 살아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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