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quidityChase Feb 08. 2020

한편으론 부러운 허술함

아이오와 코커스에 대한 단상

정말 2020년 초반은 정말 시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만한 글로벌 이슈가 넘쳐 흐릅니다. 이란 사태, 신종 코로나, 영국 EU의 이혼 등. 시장의 반응은.......허허... 생각할 것도 많고 정리할 것도 많고 하네요. 오늘은 그 동안 이런저런 생각은 많지만 정리가 안 되서 글로 쓸 수 없던 것들에 비하면 좀 단순한 것 하나를 적어볼까 합니다.

며칠만에 발표된 아이오와 코커스 개표결과, source : https://results.thecaucuses.org/

지난 2월 3일 미국에선 대선 경선 여정의 문을 여는 아이오와 코커스(caucus)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오늘이 2월 7일인데 민주당 경선의 개표 결과는 오늘에야 나왔습니다. 어제 저녁까지 97% 정도였는데 오늘 일어나보니 100%가 되어 있더군요.

https://news.joins.com/article/23697745


코커스는 주민들 누구나 신청하면 참여할 수 있는 프라이머리와 달리 등록 당원들만 참여하는 투표이면서 공개 투표 방식입니다. 등록 당원이 또 경선 투표에 참여하겠다고 신청을 해야하고, 투표 방식도 당일 현장에 나가 각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토론을 듣고 최종적으로 지지하는 후보를 공개적으로 표시하는 것이죠. 어쩌면 바쁜 일상에 쫓기는 대도시 시민들에겐 실현하기가 어려운 별나라 방식 같은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어쨌든 최종 결과는 부티지지가 26.19%로 1위, 샌더스가 26.12%로 2위, 워렌이 17.98%로 3위, 바이든이 15.84%로 4위입니다. 저 수치가 약간의 차이로 뒤집히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중요할까요? 사실 미국 전체 경선 대의원 수의 1%가 아이오와 주에 배정되어 있으니 어떤 사람들은 이제 아이오와 코커스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홍보 효과가 필요한 후보에게는 여전히 굉장히 중요하고, 이미 인지도가 있는 후보에게는 실제로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 맞다고 말이죠. 아니 이미 인지도가 있는 후보는 오히려 계륵 같은 이벤트이기도 하죠. 이기면 본전, 지면 타격을 입을 수도 있거든요. 확실한 건 전국적 지명도가 낮은 신인에게는 아주 중요한 이벤트임이 확실합니다. 소위 흥행, 바람몰이의 시작이란 말이죠. 아이오와 자체도 1타로 경선을 시작하고 코커스를 유지하는 것을 바꾸지 않을 겁니다 아마.


 오바마는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38%의 대의원수를 확보하면서 1위를 차지하면서 전국구로 이름을 알린 후 결국 힐러리를 꺾고 경선에서 승리했습니다. 반면, 2016년의 트럼프는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2위에 그쳤습니다. (테드 크루즈 27.7%, 트럼프 24.3%) 하지만, 말씀 드렸듯이 트럼프는 이미 전국구였으니 아이오와 코커스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2위라는 성적 자체도 정치 신인 트럼프에게는 나쁘지 않은 성적표이기도 했구요. 2016년 민주당에서는 힐러리 클린턴과 샌더스가 박빙의 싸움 (49.8%와 49.6%... 엥?)을 벌였는데 최종적으로 샌더스가 힐러리의 조직력을 당해내지는 못했지만, 어찌보면 진정한 승자는 샌더스죠. 힐러리는 은퇴했지만 더 고령인 샌더스는 이번 대선에서도 유력 후보로 남아 있으니까요.


 이렇게 보면 결과적으로 이번 아이오와 코커스의 최대 승자는 대의원 확보율을 떠나서 어쨌든 피트 부티지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차이가 0.1%냐 0.2%냐 아니 설사 1,2위가 바뀐다고 해도 말이죠. 선거 결과 사이트를 보던 중 '1등 이름 특이하네 부티기에그? (Buttigieg) 개그맨인가?' 하는 저희 신랑 같은 사람에게 부티지지는 이름을 확실히 알린 거니까요.


 좌로 많이 치우쳐 있는 샌더스나 워렌에 비해 좀 더 중도적인 목소리를 대변하는 부티지지가 만약 여러모로 한계가 있는 바이든을 대체한다면 흥미로운 판이 열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듭니다만........ 어쨌든 미국인들의 선택이 어떻게 되는지를 관찰하는 것은 돈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인 것은 확실합니다. 수십년의 역사가 증명하죠.



자 서론은 여기까지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죠.

도대체 자그마한 선거 개표를 하는데 왜 4일이나 걸렸을까요? 선거부정? 대형사고? 물론 누가 뭐래도 민주당이 잘못했겠죠. 기술적으로도 새롭게 앱을 만들었는데 미리 배포하고 테스트해보지도 않고 (아마 퀄리티도 허접하기 짝이 없다에 한 표입니다), 선거 방식을 바꾸고 (15% 룰 도입 및 2차 투표 실시), 개표 집계 방식조차 바꿨는데 (기존에는 최종 득표율과 배당 대의원수만 공개했다면, 이번에는 1차 투표 득표수, 2차 투표 득표수 모두 직접 공개) 이 역시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지 사전 교육은 커녕 시뮬레이션도 제대로 해보지 않았을 것이다에 만원은 걸 수 있습니다.  


2020년 경선부터 민주당에서 새롭게 발표하는 아이오와 코커스 지역구별 득표 결과, source : https://results.thecaucuses.org/

 위의 그림은 이해를 돕기 위해 선거 결과를 최종적으로 공개한 표 중 극히 일부분입니다. 잘 안 보이니 설명을 드리면 Allamakee라는 county에 11개의 선거구(precinct)가 있는데 그 중 waucon3라는 한 선거구의 결과를 보면 바이든이 1차 투표에서 8표, 2차 투표에서 12표를, 부티지지는 1차 투표에서 9표, 2차 투표에서 12표를 획득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 11개 선거구 총합인 county total 항목을 보면 바이든이 1차 투표에서 총 69표를 얻었는데, 2차 투표에서는 59표로 10표가 줄었고, 부티지지는 151표에서 173표로 22표가 증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Allamakee county, 3 pct (Waucon3) 결과 요약, 0표 후보는 제외, source: 상동

 저 그림에서는 다 볼 수 없지만 waucon3라는 선거구는 총 41명이 모여서 투표를 했습니다. (참 아담한 선거구죠? 뭐 마을 회관이나 이장님댁 마당에 모일 가능성이 충분해 보입니다.) 이번에 새롭게 도입된 15%룰에 의하면 1차 투표에서 득표수가 15%에 미달하면 2차 투표에서 그 후보에게 투표한 사람들은 다른 후보에게 투표를 해야 합니다.  

 41명에 15%이니 6.x명이죠. 앤드류 양이 안타깝게도 1차 투표에서 6명의 지지를 얻었으나 15% 룰에 의해 2차 투표에서 그 6명은 새로운 후보를 선택했습니다. 3명의 후보 (Bennet, Steyer, Yang)가 이렇게 15%를 넘기지 못했고 총 9명 (베넷 1, 스타이어 2, 양 6)의 유권자가 2차 투표에서 다른 후보로 갈아탔습니다. 그 결과는 바이든 4, 부티지지 3, 샌더스 1, 기권 1 이렇게 배분되었다는 것이 최종 결과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대의원 수가 배분됩니다.  


 그런데 저 41명이 투표하는 작은 선거구 (저도 무지 바쁜 사람입니다. 저건 정말 제일 위에서 그냥 사람 수 적은 선거구를 하나 찍어서 본 겁니다.)에서만 봐도, 게다가 최종 결과라고 3일 이상을 점검해서 내 놓은 결과가 뭔가 이상하죠? 1차 투표에서 샌더스도 6, 양도 6인데 양은 컷오프 됐고 샌더스는 남았습니다(????).


아이오와의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밭

 아이오와의 면적은 우리나라의 약 1.5배 정도 됩니다. 그런데 인구는 300만 정도입니다. 약 200만의 유권자 중 대략 30%가 민주당원, 31%가 공화당원, 38%가 어느 당에도 속해 있지 않다고 합니다.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 밭에서 알 수 있듯이 농업에 필요한 물도 풍부하고 험한 산지도 없습니다. 옥수수와 콩, 바이오 에탄올, 돼지와 소를 키울 수 있는 사료. 한가한 전원 풍경이 그려지시나요?


 이런 한가한 전원 동네에 오랜만에 같은 당원 수십명이 동네 학교 강당 (정말 적은 곳은 당원 중 한 명 집 거실에 모이기도 한다네요) 같은 곳에 모입니다. 대략 4년에 한 번 있는 마을 잔치죠. 서로 안면이 있는 사이들일 가능성이 높겠죠. 이들이 각자 지지하는 후보에 대해서 서로 좋아 싫어 얘기를 하고 듣고 합니다.

우린 샌더스 오빠로 대동 단결이여~


여기서 끝나면 좀 밋밋할텐데 다른 후보 지지자가 등장합니다.  

하~ 아니라니까요. 제 말 좀 들어보셔요~ 우리 부티지지 형님이 말이죠.

아 놔 강하늘이라니 이거 정말 반칙.....


 최종 절차는 좀 허술하기 짝이 없습니다. 동네 학교 강당에 모여서 당 지역 책임자 (뭐 박씨 아저씨 같은 느낌일까요?) 바이든 손~! 8명~ 내려 주시고, 부티지지 손~! 8명 어 비겼네. 마지막 거기 김씨 아저씨 어떻할껴? 뭘 어쩌긴 난 둘 다 거서 거기여 그냥 동전 던질래. 뭐 이런 그림인거죠. 이렇게 보면 확실히 허술합니다. 아마 41의 15% 이런거 계산 잘 못해서 버벅거릴지도 모르고 덧셈 뺄셈도 한참 걸릴 가능성? 오 진짜 충분합니다.  


그런데 요는 그게 아닙니다. 중요한 건 의견을 듣고, 의견을 말하고, 때로는 그 과정에서 상대를 설득하고 상대에게 설득되는 과정이 저 곳에서 일어나기도 한다는 것이 코커스의 진미입니다. 아이오와 코커스가 대선의 풍향계라는 말이 괜히 나왔을까요?

 어떻게 보면 낮은 인구밀도, 어느 정도의 소득 수준, 인구의 정치적 성향의 균형 등의 조건이 갖춰진 덕분에 토론과 공개투표라는 방식을 유지할 수 있는 아이오와 코커스. 이거 좀 부러운 부분이 있지 않나요? 물론 허접한 시스템은 좀 개선해야겠지만 말이죠.


 그런데, 여담이지만 미국 우리 입장에서 뜯어보면 참 허접한 것 많아 보이지 않나요?


작가의 이전글 어느 쪽의 앞날이 더 험난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