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quidityChase Jan 23. 2020

어느 쪽의 앞날이 더 험난할까?

중국과 대만의 양안관계

이전 포스트에서 대만의 선거결과에 대해서 간략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요약하자면 대만의 독립을 전면에 내세우는 민주진보당 (차이잉원)이 어쨌든 대륙과 대만은 하나가 되긴 해야 한다는 입장의 국민당의 후보(한궈위, 물론 그는 양안관계에 대해서는 좀 모호한 입장을 취하는 편입니다만)를 물리치고 재선에 성공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에 대해서는 먼저 선거공학적으로 접근하면 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대만의 젊은층이 중국에 대해 높은 반감을 가지게 되었고, 홍콩 사태의 영향으로 젊은층의 높은 투표율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홍콩의 상황이 곧 대만의 미래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민주진보당에 대한 지지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렇게 단편적인 스냅샷만 보고 다 이해했다고 생각하면 더 중요한 것, 흐름을 놓치게 됩니다. 시계를 약 1년전으로 돌려보면 이번에 선거에서 패한 국민당의 한궈위 후보가 무려 '20-30대 젊은층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가오슝 (민진당의 텃밭입니다) 시장 선거에서 압승을 거뒀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153584


그 결과 한궈위는 특히 20∼30대 젊은 유권자들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가오슝 경제의 장기 침체로 일자리를 찾아 타이베이 등 북부로 떠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파고 든 것이 주효한 결과였다.  


2018년 11월, 2020년 1월. 딱 1년 남짓한 기간입니다. 대만의 젊은이들이 대만의 독립을 추구하는 민주진보당을 지지한다? 2016년 민진당의 차이잉원이 총통에 당선 되었고, 2017년초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서 대만과 미국은 급격히 가까워집니다. 아, 원래 먼 사이였다기보다는 중국이 만류하는데 본격적인 데이트를 시작했다는 의미에서 가까워졌다는 뜻입니다. 원래는 뒤로 손만 잡다가요. 그런데, 2018년 말에 국민당이 선거에서 대승을 거뒀습니다. 뭔가 큰 흐름이 민진당의 뜻대로 흘러가는 상황이라고 볼 것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내성인 외성인 


대만인들이 스스로를 생각하는 정체성(Identity)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족이라는 민족 개념으로 접근하는 태도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성인과 외성인 개념, 일본의 식민지배와 그 후 국민당 독재 시절의 본성인 탄압, 민주화 이후 시기 사고 방식의 변화 등은 모두 이것과 어떻게든 관련이 있긴 하니까요.  


 우선 내성인과 외성인 개념은 민족으로 구분하고 싶어하는 쪽에서 선호하는 방법입니다. 우린 모두 한족의 후손이야 이렇게 수렴하기 좋기 때문이죠. 내성인 또는 본성인은 한족은 한족인데 여러시기를 거치면서 본토에서 바다 건너 대만으로 건너가 정착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송나라가 금나라의 침략을 받아 장강을 건너 남송이 되면서 남쪽에 있던 사람들은 더 남쪽으로 쫓겨나고, 여러가지 이유로 도망치듯이 바다를 건너서 대만으로 갔다거나, 명말 청초 북쪽에서 밀고 내려온 청으로부터 밀려난 본토인들이 험난한 산지를 거쳐 남쪽의 푸젠성까지 밀려왔다거나. 

 잠깐 푸젠성의 지리적 특징을 살펴보면 '산에 의지하고 바다에 임해 있다.'(依山傍海)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는데, 산이 전체 면적의 80%를 차지하고, 농지가 10% 밖에 안 된다고 평가됩니다. 중국 전체에서 삼림 비율이 가장 높은 성으로 꼽히고 말이죠. 한편, 과거 명나라 시절부터 길게 펼쳐진 해안선과 동쪽과 남쪽으로 해로가 이어진 해상 교통의 요충지로 해로를 통해 남아시아, 서아시아, 동아프리카에까지도 도달할 수 있어 해상 무역의 집산지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정화의 남해 원정의 출발점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지형적으로 산악지대와 바다로 이루어져 있어 평원이 없다보니 농업이 발달하기 어려워 결코 먹고 살기 좋은 지역은 아니었기에, 대만과 가까운 푸젠성에서 명말청초의 혼란기에 본토인들이 건너간 곳 중의 하나가 지금의 대만이었고, 그들이 내성인 대다수를 형성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족의 입장에서 보면 오랑캐라고 할 수 있는 청에 의해 명이 망한 후에는 반청복명의 기치를 걸고 청에 맞서 싸운 역사를 가진 곳이라는 '중화민국'의 역사가 조명되기도 합니다.   


어쨌든 내성인이 그러하다면, 외성인은 같은 한족이지만 공산당에 패한 국민당 세력이 대만에 들어올 때 들어온 사람들을 말합니다. 90년대 기준으로 내성인이 약 85%, 외성인이 13%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민족적으로 봤을 때는 어쨌든 한족이 98%에 달하는 '단일민족!' 국가인 셈입니다. 


그런데, 이 내성인 중에는 흔히 '객가(客家, hakka)'라고 분류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백년이 흐르는 동안 이걸 도대체 어떻게 구분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마도 대대로 우린 하카야 하면서 후손들에게 알려주는게 아닐까 추측을 해봅니다. 이들 객가가 같은 한족임에도 불구하고 또 왜 중요해지냐하면.....


이들 객가는 말 그대로 유랑민, 이주민입니다.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확실히 한족이긴한데 수백년에 걸쳐 여러 왕조의 교체기를 거치면서 주로 남부 산악지대로 들어가야했던 이주민들이라는 말이죠. 이주민이다보니 토지를 소유한 호족이 되긴 힘들었기 때문에 구릉지에서 농업에 종사하거나, 그들만의 네트워크를 활용한 상업에 많이 종사했다고 합니다. 동아시아에 흩어져 있는 화상(華商)들을 떠올리면 되겠죠.   

 그런데 이들 객가의 후손들이 중국에만 사는게 아니라는게 문제라면 문제입니다. 리콴유도 객가입니다. 그리고 말레이시아나 싱가폴의 중국계들이 대부분 객가인이나 푸젠성 광동성 출신들입니다. 이들도 한족이긴 하지만 그들 스스로를 싱가포리언, 말레이시안이라고 생각하지 차이니즈 싱가포리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딜 카운터파티인 한 여성 중국계 싱가포르인과 식사를 하다가 이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어서 인상깊게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본인은 차이니즈자 빼고 그냥 싱가포리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아직 중국에 친족들이 있는 사람들도 있고, 중국과 문화적으로 공유하는 부분도 꽤 있고, 비즈니스 기회에 있어서는 여전히 중국을 지향함에도 불구하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습니다.  


자 그러면, 만약 중국과 국민당이 우린 모두 한족이니 통일이 당위라는 논리를 내세운다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중국계가 75%를 차지하는 싱가포르도 통일하자? 오히려 그 반대죠. 한족이 75%인 싱가포르나 25%인 말레이시아의 광동, 푸젠성 출신 한족의 후예들이 자신들은 중국인이 아니라고 할 때 대만인들 역시 중국인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민족의 개념으로는 막을 논리가 없어집니다. 중국 입장에서는 무리해서 '우리는 한족'이라는 접근 방식을 취할 리 없습니다. 레토릭일 뿐이죠. 역사적으로도 중국은 그렇게 접근하지 않았죠. 

 

기미(羈縻)정책과 일국양제


기미(羈縻)란 말과 소의 고삐를 잡아 끈다는 말인데 당대 이후 중국 왕조가 이민족을 관리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서양에서는 Barbarian management라고 하기도 하는데요. 북쪽의 거친 유목민족의 끊임없는 도전을 받아온 중국 왕조는 주위의 다양한 민족들에 대해 무력을 쓰지 않고 (사실 일일이 무력 대응을 하면 나라가 버텨나질 못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임이 더 정확할테지만) 그 민족의 유력자를 회유하여 그에게 중국의 관직이나 돈을 주고 대신 조공을 받으면서 그 유력자로 하여금 그 민족의 풍습을 따라 자치하도록 한 방법을 말합니다. 미국의 극우세력은 중국이 미국에 대해서도 같은 방법으로 투자은행가들, 정치인들을 회유했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이런 기미정책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민족에 대한 중국의 관점은 거역하지 않으면 지배하지 않아도 좋다는 쪽에 가깝습니다. 


일국양제라는 어찌 보면 상상만으로도 극도로 불안정해서 당장에 폐기되어야 할 것 같은 아이디어를 자신있게 밀어붙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런 오랜 역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이민족이라 할지라도 그 민족의 풍습을 용인하는 자치를 허용하면서도 왕조를 이어온 역사가 있는데, 서로의 친척이 멀쩡히 살아 있는 같은 민족인데 자치를 인정하는 것이 불가능할 이유가 없다는 사고방식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죠. 


 일국양제의 시행이 기미정책과 흡사하게 진행될 거라고 본다면 유력자에 대한 회유, 관직이나 경제적인 Favor의 제공, 거역하지 않으면 자치를 인정하는 형태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음을 예상할 수 있겠죠. 대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앞의 두가지, 즉 유력자에 대한 회유와 경제적 Favor의 제공이 바로 중국이 대만과의 경제교류를 시작하면서 시도한 것들입니다.


3통4류(三通四流)와 혜대정책


1세대 경제특구 4개 지역은 화교 경제권을 목표로 홍콩, 마카오, 대만 바로 맞은편을 선정했다. 태평양 너머에서 볼커가 인플레이션과 싸우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던 상황을 고려하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홍콩, 대만, 싱가포르의 중국 출신 거주민들에게 상하이, 선전 등은 그들이 이주하기 전 살던 곳이었기에 투자를 결정하기도 쉬웠다. 경제특구를 설치하고 10여년이 지난 1991년까지 중국의 외국인 직접 투자에서 화교 경제권, 나아가 아시아 경제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었다.
1991년 중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 투자(FDI) 유입총액에서 홍콩과 대만의 비중은 65% 이상이었다. 한국이 1962년부터 약 40년간 FDI 누계 금액 기준으로 미국, 일본, 유럽으로부터의 투자 비중이 70% 이상이었던 것과 비교해보면 90년대 초반까지 중국의 개방 정책이 거의 전적으로 화교 경제권에 의존해 추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달러 없는 세계, 6장 잠에서 깨어난 중국, 209쪽

 1979년 중국은 양안관계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사업 방안으로 통우, 통항, 통상의 3통과 경제교류, 과학교류, 문화교류, 체육교류의 4류를 제시합니다. 이 중에서 핵심은 누가 뭐래도 경제교역을 의미하는 통상(通商)이었습니다. 양안교류 초기 홍콩 등 제3국을 통한 간접교류 방식으로 통우와 통항의 발전을 유도한 것이 통상이었습니다. 1세대 경제특구 4개 도시 중 푸젠성에 위치한 샤먼(厦門)이 바로 대만 맞은 편에 위치한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대만의 자금은 중국 본토로 향합니다. 글로벌 공급망의 확대가 동시에 일어났죠.


 누구보다 중국의 이런 방법을 잘 아는 것이 대만의 지도부였으니 리덩후이 총통 같은 경우 계급용인(戒急用忍, 인내심을 가지고 급함을 경계함) 정책을 주장했지만 대만의 대중국 투자는 시간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커졌습니다. 중국은 대만에 대해 기본적으로 혜대(惠臺, 대만을 우대함) 정책을 취했습니다. 대만 기업들의 수출을 통한 흑자 증가 역시 눈덩이처럼 커졌지요. 또한 금융위기 즈음까지만해도 미국과 중국의 밀월관계는 최고조에 달해 있었습니다. 미국도 중국에 투자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데 대만이 아무리 경계한들 별 뾰족한 수가 있었을리 만무하겠죠?


 세계화의 물결 앞에서,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중국이 대규모로 경기를 부양해서 세계에서 유일하게 침체를 방어하는 입장이었던 시기에 대만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마잉주는 양안교류를 확대하는 선택에 나서야만 했습니다. 선거 과정에서부터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공약으로 내세우는 등, 양안의 교류협력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고, 실제 2008년 당선 후 대삼통(양안의 경제교류 뿐만 아니라 해운, 항공, 우편 등의 직접 교류)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이 때부터 양안 사이의 경제, 문화, 체육, 과학기술 분야에서의 직접적인 교류 (4류)가 급증하게 됩니다. 그리고, 재선까지 합쳐 8년간 그가 총통으로 있던 시기 (후반 4년은 지지율이 안습이었습니다만) 대만의 무역흑자는 흐뭇하게 증가했습니다. 

대만의 무역수지, 1995-2019, 단위 million USD


그리고, 그 무역수지 흑자 상위국을 보면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을 쉽게,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2018년 대만의 무역흑자 상위 15개국, Bureau of Foreign Trade, Ministry of Economic Affairs of TW


좌절과 분노


 2016년 1월 대만 총통선거에서 20~29세 청년층의 투표율은 74.5%로 전체 투표율 66.27%를 웃돌았습니다. 이는 2012년 총통선거의 청년층 투표율 60%를 크게 웃도는 수치였습니다. 2020년 이번 투표율은 75%로 더 높아졌습니다. 이 역시 청년층 투표율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의 청년층 투표율은 홍콩 덕분이라고 친다고 해도 2016년 투표율의 상승은 중국에 대한 반감으로 해석하긴 어렵습니다. 게다가 2018년 선거에서 국민당 후보들이 민진당의 텃밭에서 당선된 것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대만의 대졸 초임 평균은 우리돈 100만원 근처입니다. 이게 사실상 최저임금이고요. 그런데, 부동산은 80년대 이후 우리와 마찬가지로 부동산 불패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다른 나라의 부동산이 조정을 거쳤던 반면, 대만은 중국과의 본격 교류와 함께 오히려 부동산 가격이 더 오르고 말았습니다. 물론 결과적으로 보면 대만 뿐만 아니라 그냥 전세계 부동산이 다 올랐죠 결국.   

 대만은 수십년간 우리나라의 종합부동산세와 같은 다주택 소유자에 대한 과세도 없고 0.1%도 안 되는 보유세와 3% 미만의 거래세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주택 관련 세금 정책을 유지했습니다. 부동산을 소유한 부자들은 당장 집이 팔리지 않더라도 집값이나 임대료를 내릴 이유가 없죠. 여기에 2010년대 들어오면서 홍콩으로부터의 이민 수요 증가와 시진핑의 반부패 정책과 중국과의 교류 확대에 따른 중국 본토 자금이 유입되면서 부동산의 상승이 이어졌습니다.  

 수출기업들에 대한 다양한 혜택으로 무역수지 흑자는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임금은 제자리 걸음이고 일자리는 부족한데, 기성세대는 자산을 보유하고 있고 그 자산의 가치는 계속 증가해 청년층에게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 이거 다른 나라 이야긴가요? 결코 대만에 국한된 스토리가 아니죠? 꾸준히 증가해온 빈부격차, 친기업적인 조세정책, 양질의 일자리 창출의 어려움. 누구든 문제제기는 할 수 있지만 현재까지 어느 곳에서도 뾰족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들입니다. 마잉주의 지지율이 한 자리수까지 추락했던 근본적인 이유도 이것이었지만 차이잉원 역시 근본적으로 해결책을 제시하긴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신남향정책과 미중 무역분쟁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를 낮추는 것은 민진당 정부의 주요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나온 정책이 신남향정책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신남방정책을 추진 중인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마침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중국과 무역 전쟁을 시작합니다. 트럼프는 이전의 오바마나 부시와는 달리 대만에 대해 대놓고 중국을 자극합니다. 하나의 중국이고 뭐고 내가 하겠다는데 어쩔건데 하는 트럼프 특유의 방식이 빛을 발합니다. 차이잉원 입장에서는 감지덕지죠. 물론 반대로 트럼프도 중국의 턱밑, 게다가 대만해협이라는 일본으로 이어지는 주요 항로를 차지하고 있는 대만에 반중 성향의 정권이 들어선 것은 너무 해피한 상황인 것은 마찬가집니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아들어갔습니다. 

 중국에 대한 관세 부가는 중국에 진출한 대만 기업들의 대만 리쇼어링을 자극하여 대만 국내 민간 투자를 자극했고, 일부 공급망을 인도나 동남아로 이동하게 만들어 2019년 미중 무역분쟁의 최대 수혜국이 대만이 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대만의 무역수지는 미국에 비하면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말도 못하게 큽니다. 그걸 아는 중국이 두 손 놓고 가만 있을까요? 

 중국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유엔 주재 중국 대사로 있으면서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 미국과 팽팽하게 맞선 경력의 류제이(劉結一)를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주임으로 임명합니다.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는 인사였는데 하나는 대만과의 양안관계 문제에 있어서 국제 외교 조율 기능을 강화하는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대만과의 양안 문제를 양자간 문제를 넘어 미국과의 외교전으로 보겠다는 측면입니다.  

 대만이 신남향정책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중국이 외교적으로 동남아 국가들을 압박하여 대만을 고립시킬 경우 이는 사실상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대일 FTA 체결도 어렵지만 RCEP, CPTPP와 같은 역내경제통합이 진행되면서 여기서마저 고립될 경우 산업 경쟁력의 유지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비록 미중 무역분쟁 덕분에 대만의 대미 수출량은 증가했지만 전체 수출량은 감소했고, 마찬가지로 신남향정책을 추진했지만 대아세안 수출량 역시 증가하는 상황이 아닙니다. 민진당 정부가 웃고 있을 상황이 전혀 아니라는 겁니다.


과연 누가 더 지속가능한 접근을 하고 있는지, 상황의 변화에 따라 쓸 수 있는 카드가 많은지는 앞으로 나오는 뉴스들을 보면서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적어도 차이잉원 정부의 앞날이 순탄해 보이진 않습니다. 하지만, 아마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동아시아의 나라들은 대만이 독립을 하든, 모호한 상태를 유지하든 관계없이 그 자리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의 팽팽한 긴장을 유지시키는 역할을 지속해주는 것을 바라고 있을 겁니다. 그게 민진당이냐 국민당이냐는 상관 없이 말이죠. 





작가의 이전글 깊어가는 대만과 미국의 밀월관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