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총선 결과
사실 다당제 민주정치의 도입으로 공산당을 자극한 것은 대만이었다. 1949년 대만으로 피신한 국민당 정부는 쑨원을 계승한 정통 정부를 표명하며 본토의 공산 정권을 타도의 대상으로 선언하고 계엄령을 선포한 후, 본토와 마찬가지로 국민당 일당 독재 정부를 이어가고 있었다. 1975년 장제스가 사망하고, 1978년 그의 아들 장징궈가 총통에 취임할 무렵 중국에서는 덩샤오핑이 정권을 잡았다. 덩샤오핑과 장징궈는 1920년대 모스크바에서 함께 수학하며 형님 아우 했던 기억이 있는 관계였다. 덩이 먼저 양안관계의 회복을 위해 화해의 공을 던지자 장징궈 역시 어느 정도 화답하면서 분위기가 무르익어 갔고, 덩이 다시 일국양제 통일 방안을 제시하자 장징궈가 다시 대륙여행금지령 철폐로 화답하여 양국의 관계 개선은 급물살을 탔다.
이 과정에서 장징궈가 던져 놓은 가장 큰 견제구가 1986년 9월 민주진보당 창당을 용인한 정치 개혁이었다. 근본적으로 일국양제란 통일이 되었을 때 대만의 체제가 중국과 확연히 달라야 성립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 대만 역시 36년을 국민당 일당 독재를 이어오고 있었기 때문에 장징궈는 자신의 사후 국민당의 노선이 친공산당화 된다면 일국양제는 사실상 물거품이 되고, 공산당을 중심으로 흡수통일 되는 양상이 될 수도 있음을 예상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중국 본토와 교류가 시작되었을 때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장징궈가 던진 승부수가 대만을 다당제로 전환시키는 것이었다. 여기에 이듬해 우리나라에서 6월 항쟁의 결과로 얻어낸 대통령 직선제 달성이 더해져 일으킨 파장이 중국의 톈안먼 사태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실제로 2019년 현재 국민당은 친중파고 민진당이 대만독립파인 상황이다. 일국양제를 먼저 시행한 홍콩 시민들의 자치권 수준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어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30년전 장징궈가 던진 정치 개혁이라는 견제구가 얼마나 시의적절했던 것인지를 새삼 알 수 있다.
달러 없는 세계 6장 : 손뼉을 마주치다 : 차이메리카의 형성, 217p
오늘은 졸저 ‘달러 없는 세계’의 일부를 인용하면서 포스팅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지난 토요일 대만에서는 총선이 있었습니다. 워낙 모두가 예상할 수 있는 김빠진 선거였기 때문에 선거 결과 자체는 뉴스라고 할만한게 없습니다. 차이잉원 총통이 재선에 성공했죠. 그리고, 바로 이어서 자신들의 최우방이라고 할만한 미국과 일본에 관계를 격상하자고 했다는 뉴스가 나왔네요.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200114/99210788/1
중화민국의 명맥을 이어왔던 국민당 정부는 아시다시피 친중파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습니다. 덩샤오핑은 대만의 자본과 기술이 필요했고, 국민당 정권은 자본과 기술을 중국에 투자하는 대가로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친중 성향의 국민당 소속의 총통이었던 마잉주가 8년간 집권한 후인 2016년을 기준으로 보면 대만 전체 수출의 약 40%가 중국 및 홍콩을 대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차이잉원이 집권한 후인 2018년 기준으로는 30%까지 낮아졌습니다만 여전히 대외 투자의 약 40%가 중국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홍하이는 중국의 개혁개방 시기에 Apple 덕분에 유명해진 Foxconn을 선전에 설립하여 급성장할 수 있었죠. 그리고 홍하이의 회장인 궈타이밍은 국민당 소속의 친중파 후보로 이번 총통선거 경선 후보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여담이지만 대만의 국민당은 보수우파인데 친공산당 성향입니다. 보수우파가 친공산당이라니 참 거대한 아이러니인데요. 민주진보당은 대만독립, 즉 제갈길을 가자는 입장인데 반해 국민당은 애초에 중화민국의 설립부터 정통성 있는 참중국은 바로 중화민국이므로 언젠가는 본토를 차지하고 있는 중화인민공화국을 해방(?)시켜야 한다(즉, 통일을 하긴 해야한다)는 것이 기본 강령이기 때문에 이런 아이러니가 성립합니다.
하지만, 국민당 입장에서는 이미 중화민국 건국 후 3세대를 지나 4세대에 접어들고 있는 대만 젊은이들은 전혀 국민당스럽지 않다는 것이 문제죠. 대체적인 대만의 여론조사 결과를 분석해보면 많은 대만인들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물론 지금은 좀 더 반중 성향이 높아졌겠지만 기본적으로 ‘현상유지’를 가장 원한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중국(일국양제)도 싫고 완전한 독립도 싫고 적당히 애매한 ‘중화민국’으로 지내는 것에 가장 만족한다는 것입니다. 같은 언어와 비슷한 문화를 가진 중국에 투자해서 이익도 내고, 수출도 하고, 관광객도 많이 찾아오고 반대로 언제든 방문도 할 수 있는, 어쩌면 경제적으로는 득이 되면서 체제는 간섭받지 않는 그런 상태 말이죠. 굳이 완전히 독립을 시도해서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것도 싫고, 반대로 홍콩처럼 일국양제로 가는 것도 싫다는 말입니다.
어쩌면 그저 철저하게 실리를 추구하겠다는 심리로 보면 설명이 쉬워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언어와 문화가 비슷하니 투자하기도 쉽고 교류하기도 쉽죠. 즉 중국이라는 거대한 이웃을 다른 어떤 나라보다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죠. 하지만, 그렇다고 중국의 간섭은 받기 싫은 것이죠.
마잉주의 시대 (2008-2015)는 대만 경제의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높아지던 시기입니다. 말 그대로 대만은 중국과의 교류에서 많은 이익을 보면서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홍색 공급망, 즉 수출 산업의 공급망의 일부가 되면서 얻어낸 이익이었죠. 대만인들은 굳이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원하지 않았죠. 하지만, 전세계 경기는 점차 어려워지고 대만 경제의 중국에 대한 의존도는 계속 커지면서 결국 쌓인 불만이 터져 나왔죠. 더 이상 중국에 의존해봤자 추가적인 성장은 나오질 않고 빈부 격차는 커지고.....민주진보당이 대만의 독립을 주장한 전략이 먹힐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입니다. 2016년 1월 대만 독립을 주장한 차이잉원이 총통에 당선되자 시진핑은 즉각 한한령을 내린 것보다 앞서서 중국 관광객의 송출을 제한하면서 압박을 가했습니다. 대만도 힘들었죠.
그런데, 2016년 말에 무슨 일이 있었죠? 바로바로 트럼프 아제가 바다 건너에서 대통령이 됐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차이잉원에게 트럼프는 엄청난 동아줄이었고, 트럼프에게 차이잉원은 최고의 전략자산이었습니다. 게다가 이번 선거는 홍콩 덕분에 차이잉원은 손도 안 대고 코를 풀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선거결과가 과연 시진핑의 중국에 큰 타격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아… 너무 길어져서 다음에 다시 이어서 쓰도록 하겠습니다. 아이들이 성화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