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마주 보기
나는 읽는 사람입니다.
읽는 사람이었지만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글을, 책을, 오늘 하루를, 세상을 읽으며 살아왔습니다.
많은 걸 보고 읽었습니다. 충분히 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쓰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내가 눈을 보았던, 피부로 느꼈던 이 세상을 글로 옮겨적고싶었습니다. 내가 경험했던 이야기들을 또 다른 읽는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내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세상에 대한 나열이었습니다. 내 글 안에 ‘나’는 없었습니다.
충분히 읽었다고 생각했지만, 읽는 걸 관두고 쓰고 싶었던 나지만 정작 내 마음을 읽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내 마음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나 봅니다
나에게 솔직해지는 게 무섭습니다. 상처 가득한 내 마음을 똑바로 직시하고 읽으면 내가 무너져버릴 것 같았습니다.
타인의 말에서 마음을 읽고 알아주는 것이 어쩌면 더 쉬웠을지도 모릅니다. 타인의 상처를 들어주는 것이 내 마음을 말하는 것보다 편했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제 마음은 상처로 곪아갔나 봅니다.
쓰는 사람이 되려면 내 이야기를 알리고 싶으면 내 마음부터 차분히 바라봐야 했습니다. 이제야 내 마음을 조금씩 바라보고 있는 게 너무 후회스럽습니다.
신기하게 눈길 한번, 마주침 한번으로 상처는 낫고 새살이 돋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나를 인정하고 싶어서 읽고, 쓰고 싶었던 것 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인정하고 싶은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