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땡요일 Oct 12. 2022

무례해도 괜찮은 선의는 없다.

아침부터 발목이 심상치 않았다. 분명 어딘가에서 삔 건지 아니면 최근 늘어난 살을 견뎌내지 못하고 시위를 하는 건지 복숭아뼈 근처가 걸을 때마다 시큰시큰거리는 거라 생각했다. 평발인 나는 자주 넘어져서 그러려니 했다. 직업 특성상 내부에서 걸어 다닐 일이 많은데 오늘 조금 무리를 했는지 발목은 급속도로 자신의 아픔을 알아달라고 말하는 듯 통증은 커져만 갔다. 오늘 저녁에 있을 약속을 생각하며 적게 움직이려고 했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이 있듯 하필 해야 하는 업무가 굉장히 많은 하루였다. 결국 퇴근할 때는 내일은 꼭 병원에 가리라 다짐하며 커져만 가는 통증을 참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퇴근버스에서 좌석에 앉기를 기대한 게 어리석었다. 손잡이 하나에 의지한 체 무거운 가방과 내 몸을 버텨내는 발목은 당연하게도 욱신욱신거렸다. 당장이라도 버스에서 내려서 약속을 취소하고 집으로 향하고 싶었다. 하지만 발에 일어나는 통증을 참는 법을 잘 아는 나였기에 최대한 발을 쓰지 않으며 중심을 잡고 무거운 몸을 이끌었다. 


친구와 만나서는 최대한 걷고 싶지 않은 내 사정을 말했다. 그렇게 조용하고 1층에 위치한 카페에 가게 되었다. 커피를 마시다 내 발목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너 평발 아니야?”라는 친구에 물음에 나는 억지로 대답을 했다. 아픔의 원인이 평발이라는 생각을 해보진 않았기 때문이다. 분명 내가 삔 걸 까먹고 그랬던 것이라 이야기했다. 굳이 내 몸상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남들에게 평발이라고 말하면 발을 보여달라거나 진짜 걸을 때 힘드냐고 물어보는 질문들에 질려서 이제는 굳이 물어보지 않는 이상 내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다. 사실 “너는 평발이야?”라고 물어보는 사람은 극히 드물기에 이야기가 잘 나오지 않는다. 나는 평발이라는 것에 불편한 것을 잘 못 느꼈다. 자세히 말하자면 태어날 때부터 이랬던 나는 그냥 남들처럼 잘 걸어 다녔다. 나는 이렇게 23년을 걸어왔으니 말이다.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오래 걸으면 발목이랑 무릎이 아프고 다리가 조금 붓는다는 것과 오래 서있는 것을 힘들어한다는 것 정도가 있다. 평발이라 그렇다는 것을 알기 전에는 그냥 다들 이렇게 사는 줄 알았다. 나는 내 인생 중 평발이 아닌 적이 없으니 말이다.



평발이라서 불편한 것보다 지금 발목이 아파서 걷는 게 힘든 것이 지금 내겐 더 큰 장애물이다. 평발은 당장의 나를 힘들게 하지 않지만 이 고통은 당장 내 걸음걸이 자체를 바꿔놓는다. 이 고통이 있다고 사람들이 내게 “얼마나 아파? 많이 힘들겠다.” 같은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는다. 나 역시 이렇게 살아왔는데 평발이라는 이유로 위로를 받고 싶지는 않다. 이게 왜 타인에게 무례한 위로를 들어야 할 이유인지 잘 모르겠다.


위로는 다른 말보다 더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로의 말은 타인의 상처를 직접적으로 만지는 말이기에 더 고민하고 더 다듬어서 말해야 한다. 상처를 맨손으로 그냥 만지는 것보다는 그냥 아물게 놔두는 것이 낫듯 위로의 말도 때론 아끼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다. 무례한 위로, 말뿐인 위로는 아물고 있던 상처도 벌어지게 만들기에 그 사람을 진정으로 위한다면 위로는 진지한 고민의 결과여야 한다. 



무례해도 괜찮은 선의는 있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의 아픈 곳에 다가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에 세심하고 정교해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누구나 가슴속에 순수함은 살아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