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 은행나무들이 잎들을 아낌없이 떨군다. 겨울을 준비하는 모양새다. 순리를 따르는 것이 그저 평화롭게만 보인다. 한해 끝자락에서 되돌아보니 엇갈리고 부딪히며 걸어온 자국들이 선명하다. 아직도 풀리지 않는 갈등 속에서 길을 잃고 만 모습 앞에서는 힘이 빠진다.
갈등의 의미를 들여다본다. 칡을 의미하는 갈(葛)과 등나무를 의미하는 등(藤)을 말한다. 칡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감고 등나무는 시계방향으로 감고 올라가기에 둘이 서로 한 숙주를 오를 때 부딪히고 만다는 뜻이 담겼다. 대립 상황과 맞닥뜨릴 때 이를 두고 갈등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일어날지 말지를 시작으로 잘지 말지를 고민하며 끝맺는 하루하루다. 그 하루란 크고 작은 갈등의 연속이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타인과 나 사이는 물론,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어찌해야 할지. 딱 부러지게 해답을 말할 수 있기보다 이래야 하는지 저래야 하는지, 이게 맞는지 저게 맞는지 종잡을 수 없을 때가 허다하다.
칡과 등나무는 부딪히며 꼬일 대로 꼬이면서 각자 제 갈 길을 갈 것이다. 타협도 이해도 없이 오직 정해진 한 길만을 서로 우길 게 뻔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들은 그나마 조용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어떤가. 내 말이 맞아, 우기고 이기려 덤비다가 부딪혀 나가떨어지기 일쑤다.
하나같지 않은 이들이 만나 하나 같이 힘을 모아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번번이 하나가 되기는커녕 갈등을 피하지 못하고 그 굴레에서 헤매곤 한다. 다른 우리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 체 말이다. 지극히 당연한 현상 앞에서 당황했던 경험이 적지 않다.
생각해 보면 칡과 등나무는 우리가 생각하는 갈등 상황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칡은 칡으로 등나무는 등나무로 서로를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을까. 그래서 그냥 그렇게, 어우렁더우렁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건 아닐는지. 사노라면 비켜 갈 수 없는 갈등이다. 피하기보다 어떻게 잘 풀어가야 할지. 그 지혜를 오히려 칡과 등나무에게서 배워야하지 않을까 여겨보는 아침이다.
2025. 11. 28. 07:01
현경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