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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Oct 13. 2021

분실물

잊은 걸까? 버린 걸까?  

분실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잃어버린 물건



11시 펜션 손님들의 퇴실시간이다.

전날 늦게까지 즐겼다면 이른 퇴실시간. 일찍부터 잠자리에 들었다면 적당한 퇴실시간이다.  

외부 CCTV를 확인하고 주차장에 차가 사라지고  손님 퇴실이 확인되면 청소를 위해 객실로 들어간다.

손님이 늦을 수도 있기에 적당하게 여유를 가지고 들어가는 편이다. 커피도 한잔하고 청소비품도 챙기고 널어둔 걸레도 모으고 비장하게 고무장갑을 끼며 오늘은 과연 얼마나 더러울까.  깨끗하게 써주셨을까. 방명록은 남겨주셨을까 하는 긴장과 기대감으로 객실로 들어간다.  



많이 급하셨나 보다.  청소하러 도착하는 우리를 보고 후다닥 도망간듯한 손님의 자리도 있는 반면

처음 준비해둔 그대로 최선을 다해 정리해두신 분들도 있다.

진심으로 고마운 분들도 있고 설거지를 이런 식으로 하실 거면 그냥 하지를 말지 싶은 그릇들도 가끔 나를 기다린다.



남편은 객실을 나는 주방과 화장실. 각자 맡은 구역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청소를 시작한다.

청소를 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분실물들을 마주하게 된다.



1. 양말

보통 양말은 버린 것으로 예상된다.   청소하면서 남이 버린 건지 깜빡한 건지 모를 양말을 구멍이 났나 안 났나 살피는 것도 우습고 손님이 양말을 찾으러 다시 이곳까지 올 것 같지도 않아 주로 두고 간 양말은 쓰레기통에 버린다.   양말 한 켤레 분실로 택배를 보내달라 하실 것 같지도 않고 말이다.  




2. 인형 혹은 아이들 소품

아이 동반한 가족여행객들이 왔다 가면 아이들 소품이 하나씩 떨어진 경우가 많다.   특히나 아이들의 애착 인형으로 예상되는 귀여운 인형들을 두고 갈 때가 많다.  아이에게는 소중한 애착 인형일 수 있기에 일단은 보관한다.  아이가 크게 찾지 않았나 보다. 아직도 그대로 우리 펜션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걸 보면.  

그래도 혹시나 싶어 아이들 소품은 보관한다.   어른들에게는 세상 쓸모없는 물건이지만 아이들에겐 또 다른 소중함이 있을지 모르니.  




3. 반지 귀중품

의외로 귀중품도 종종 발견된다.  가격이 비싸고 저렴하고를 떠나 귀금속은 꼭 연락하고 꼭 찾아드려야 한다.

지금까지 많지는 않았지만 반지를 두고 가신분은 반나절만에 찾으러 오셨다.  뒤늦게 발견하고 연락을 드리기도 하고 먼저 연락이 오기도 한다.  귀중품이니까 꼭 찾아드려야 하는 분실물 1순위.




4. 속옷

이걸 왜?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속옷과 수건들. 개인 위생용품 분실물이 참 많다.

비누, 칫솔, 세정제 뭐 등등 딱 봐도 크게 찾을 것 같지 않은 물건들은 바로 버리는 편이고 귀중품은 말 그대로 귀중품이기에 바로바로 찾아드려야 하지만 속옷은 참 난감하다.


누가 봐도 빨래를 하고 널어두고 깜빡하고 챙겨가지 않은 듯한데 이걸 두고 가셨다고 연락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찾으러 오신다면 이걸 투명 비닐에 넣어야 하나 검은 비닐에 넣어드려야 하나.

내가 잘 접어 드려야 할까 그냥 툭 넣어 드려야 하나.   팬티 한 장에  이게 머라고 고민이 된다.



손님 팬티 두고 가셨어요 연락드리는 우리도 민망하지만 손님 입장에서도 먼저 연락하셔서 제가 팬티를 두고 갔어요 라고 말하기에도 민망해서인지 물론 연락은 없더라.  



만약에 이게 엄청 비싼 속옷이거나 아끼는 속옷이라면?   내가 먼저 연락을 해야 하나? 손님이 연락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그 어떤 분실물보다 마주했을 때 괜히 머쓱한 것. 속옷.



+ 나의 분실물

퇴실 후 나에게도 분실물이 종종 생긴다.

손님이 작정하고 가져갔다고 의심되지는 않는 것들.

분실물 정의처럼 말 그대로 본인도 모르게 짐 싸며 휩쓸려 떠나버린 것들.


나의 분실물은 핸드폰 충전선과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체온계다.

손님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분명 손님도 집으로 돌아가 아차!  싶어도 나처럼 먼저 연락을 드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계실 것 같다.


돌려주기엔 육지에서 제주까지 물건값보다 택배비가 더 비쌀 것이라 생각하실 테고

의도한 건 아니지만 연락하기엔 머쓱해지는 그것들.  


비대면 체온계는 그래도 꼭 돌려주시면 좋겠다. 나의 분실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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