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yun Aug 25. 2023

제비새끼의 입 모양이 하트라는 걸 2년 만에 알았다.

올해도 어김없이 날아온 그 녀석들. 작년에도 재작년겨울에도 여름 내내 일거리를 더 만들어주었던 제비들이라 매년 떠나면 꼭 집 철거한다 했었다.  하지만 막상 뺀질거리는 얼굴도 안 보이고 시끄럽지도 않은 겨울이 되고 바닥에 떨어진 똥 청소할 일이 없으니 집철거 후 철거반 일이 더 힘들 것 같아 하루하루를 미뤘다.  


다시 두 번의 봄이 왔다. 두 번의 봄 어디를 갔다가 귀신같이 다시 돌아왔다.  작년에 왔던 녀석이 새로 시집장가갔다가 돌아왔는지 장가가서 와이프를 데리고 고향집으로 돌아온 건지 그들의 가족관계는 알턱이 없지만 분명한 건 수도 없이 많은 자녀가 또 태어나고 자라 고를 반복한다는 것.  어찌나 금실이 좋은지 올해는 작년보다 새끼가 더 많은 느낌적 느낌이다. 아 제비 또 왔어하는 사이 작년집은 던져두고 또 새로 집을 지어 올린다.   어디서 물어오는지 진흙이 곳곳에 떨어져 있고 나뭇가지와 부스러기들이 새집 아래 덕지덕지 붙어있다.  전자담배 피우면서 마당청소하는 남편은 구시렁거리면서 애들 안부를 살폈다.  매번 구시렁거리면서 새집의 부스러기를 또 치워주고 있다. 작년 겨울에 진즉 철거했으면 좋았을걸.  흥부 라이프를 자진해서 하고 있는 남편의 자업자득이다 싶다. 



새 부부인지  헌부부인지 중년인지 청년인지 알 수 없는 제비부부 녀석들이 쉼 없이 집을 짓고 또 짓는다.  입주 초기에는 진흙과 나뭇가지들로 청소하게 만들고 입주가 끝나면 본격 애정행각에 돌입한 건지 어느 날부터 새끼들이 가득하다.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제비 새끼들이 좁은 집안에 있으니 똥을 집안에서 해결한다는 것. 똥을 집안에서 싸는데 배수처리가 안되는지 아님 밖으로 엉덩이를 빼고 싸는지 목격하지 못했으나 하수처리 불가한 집구석 아래마다 흰색과 검은색이 콜라보된 제비똥이 수도 없이 많다는 것. 



그게 한집이면 정말 좋게?  얘들은 단체 입주를 했는지 도대체 몇 커플이 새로 입주를 했는지 집 곳곳에 새집을 지었고 그곳에 알을 낳았다.  전입신고도 없이 쳐들어와서는 좁아터진 집구석에 오밀조밀 모여 살면서 출생신기도 안 하는 녀석들. 집은 철거해야 마땅하고 쫓아내야 마땅한데 흥부 마음과 같은 남편은 쫓아내지도 못하고 맨날 보고 있다.   첫해는 그리도 화내더니 이제는 제비랑 얼굴 튼 주인아저씨 마음도 좋구나.  놀부마누라 같은 나는 아주 보고 있으니 가관이다.   올 겨울에는 내가 직접 철거하리라 결심한다. 손님들 가득 모시고 오라 했더니 와서 새끼만 가득 놓고 똥만 가득 싸고 도대체 새끼가 몇 마리인지 아주 빼곡한 제비밀도에 경악하겠다.  심지어 알에서 깨고 나온 새끼들이 꽥꽥거릴 때는 소음까지 아주 신고해야 마땅한 녀석들을 이제는 어느 정도 받아들인 남편이 말한다. 이제 곧 다 떠날 거라고.   새끼들이 크고 날기 시작하면 똥은 밖에서 싼다고.  미안하지만 놀부마누라는 관심 없다. 



비 오는 날 CCTV를 보면 조명줄에 딱 앉아 뺀질거리고 있다. 불법 이주자 아비인지 어미인지 모르겠지만 불법체류로 싹 다 잡아가야 할 녀석들. 몽타주까지 내가 다 아는데 현장에 갈 때마다 애들만 두고 사라지는 독한 녀석들.  심지어 다 똑같이 생겨서 어느 놈이 대장인지 알 수가 없다.  시끄러운 제비 녀석들과 올해 여름을 또 함께 보냈다.  올해는 꼭 철거하리라 생각하며. 



어느 날 CCTV를 확인하던 중 젊은 남자손님들이 계속 마당을 맴돈다.  밖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도 아니고 지붕 아래를 계속 올려다보는 것이 심상치 않다 싶다.   계속 보고 있으니 착한 흥부의 후손들.  새끼가 떨어졌는지 창고 앞에 둔 사다리까지 챙겨 와 제비집을 찾아주고 있더라.   아마도 그들이 고민한 건 작년의 우리 집 흥부아저씨와 같은 문제였을 것이다.  엄마아빠 잃어버린 고아제비가 있는데 당최 집을 못 찾아주는 그 마음. 이 집 저 집 사다리 옮겨가며 어느 집인지 찾아보지만 다 똑같이 생긴 비주얼과 좁아터진 방구석에 집을 찾아주지 못하는 그 답답함.  그 젊은 총각들은 결심이라고 했는지 가운데 집에 그 녀석을 넣어주었다.  아마 그들은 그 집이 진짜 집이 맞는지 아닌지 옆집 아주머니집에 넣어뒀는지 알 수는 없지만 뿌듯해하며 객실로 들어가더라. 



다음날 객실 청소하러 가서 다시 그 집을 올려보니 유독 혼자 큰 사이즈의 새끼가 있더라. 이 녀석인가. 형제자매들과 다르게 독보적 사이즈를 보이는 자이언트 제비 녀석. 혹시 어제 손님이 넣어준 그 녀석이 이 녀석인가 싶어 한참을 올려다보았다.  그래 이 녀석아 적당히 밖으로 내밀고 있었어야지.  그렇게 올해도 떨어진 제비 새끼까지 호수가 틀렸다 할지언정 또 집을 찾아주었다.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며 이제 똥청소도 끝나가는구나 싶은 요즘.  어느 날 흥부 장착 남편이 와서 말한다. 




"그거 아나? 제비 새끼 입모양... 하트더라?" 

사진을 찍어와 보여주는데 충격 그 자체. 제비를 만난 지 2년 만에 그들의 주둥아리가 하트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전 09화 강남 갔던 제비가 다시 돌아왔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