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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Dec 13. 2023

마흔 그리고 하나

내 인생에 마흔은 멀고 먼 세상일 줄 알았다. 내 나이 마흔 하고도 한 살을 더 먹었다. 충격적인 건 어느 순간부터 몇 살이냐는 질문에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태어난 해를 말하는 게 오히려 편해진 나이. 불혹이라 함은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라는데 불혹 하고도 한 살 더 먹은 나는 아직도 판단이

 흐리고 어리석은행동을 한다. 나이를 그냥 먹었나?  삼일전 입은 옷이 생각이 안 나고 지난 여행에 돌아와 잘 정리해 둔 여름슬리퍼가 어디에 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맥주를 좋아하니 알콜성 치매인가 싶다가도 안 먹은 날도 별차이 없는 거 보면 나잇값인가 싶기도 하다.



고교시절 동네 명품매장 앞을 지날 때마다  내 나이 서른이면 이곳에서 풀장착 옷을 사고 멋진 내차를 끌고 다니는 어른이 될 줄 알았다.  서른에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서른 하고도 십 년을 넘게 살아온 나는 여전히 명품매장이  멀다. 옷방에 나뒹구는  옷들은 나와 십 년 넘게 나이차이 나는 젊은 동생이 구식이라며 작아졌다며 싫증 난다며 언니 입으라며 던져준 옷들로 가득하다.   이십 대 내 옷을 입고 몰래 학교에 가서 떡볶이 국물 흘려와 극대노 하게 만든 그 동생 옷을 이제는 내가 한벌씩 얻어 입고 있는  내 나이 마흔 그리고 하나다.  동생이 두고 간옷 유행 끝났다며 던져둔 옷, 본인 옷장 좁으니 언니나 입으라며 준 그 옷들 중에 나는 오늘도 뭘 입을까 고민을 한다. 이건 내가 봐도 촌스러우니 펜션 청소하러 갈 때나 입어야겠다.  이건 그나마 예쁘니 외출할 때 입어야지.  마흔이면 백화점에서  쇼핑할 줄 알았던 나이인데 내 나이 마흔은 내가 생각한 것과는 참 많이 달랐다.



  이제 막 마흔이 된 사촌동생이 사주를 보니 마흔일곱이면 다 풀린다던데라고 한다.  어쩌냐 내 사주에도 내 나이 마흔에 사십 평대 집을 산다고 하던데. 그 사십 혹시 오지 않은 거니?   다 풀린다던 내 사주는  누구 사주 더냔 말이다. 아무도 점치지 못한 코로나 전염병이 돌았고 여전히 매달 자동차 할부금을 내고 매달 15일에 카드값에 한숨을 쉰다. 오늘 저녁은 뭘 해주나 내일 아침 국은 뭘 끓여야 하나 고민한다.  지인의 시부상에 부조를 얼마내야하는지 고민해야 하며 친구들 자식들의 학원 스케줄을 듣고 생각에 잠긴다.  이번에 친정 가면 백화점이 아니라 이십 대 동생방에서 입을 옷 없나 두리번거리겠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많이 다른 마흔의 삶.



오늘도 알람소리에 점점 무거워지는 몸을 일으키고 아들의 아침식사 고민을 시작하며

비 오는 날 종아리까지 아파오는 내 나이. 전날 저녁에 조금만 많이 먹으면 이제 소화까지 안 되는

이제는 AS도 안 되는 몸둥어리.  마흔 그리고 하나 더 이제 곧 하나 더 추가 되는 날이 코앞이다.

내가 기대했던 불혹의 모습은 아니지만 이제는 냉장고에 재료들을 휘리릭 꺼내 유튜브 없이도 요리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좋은거보다는 나쁜게 더 많은것 같은 느낌이지만 그렇게 서서히 익어가겠지.

십년이 넘는 기간동안 블로그를 운영하며 열심히 하고 있다 생각하지만 가끔 20대 젋은 친구들의 피드에 늘어나는건 한숨뿐이네.  하늘의 명을 깨닫는다는 오십이 오기 전에 철 좀 들어야 할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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