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이름 이야기를 하자면 사실 한도 끝도 없다.
중성도 아니고, 듣는 순간 “남자인가?”라는 질문이 먼저 나오는 이름으로 나는 40년 평생 꽤 피곤하게 살았다.여성성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하지만 내 이름은 누가 들어도 남동생을 간절히 바란 누군가의 작품이었다.
차라리 어머님들 이름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자, #숙, #화
촌스럽다 불리던 이름들.지금 생각하면 그게 훨씬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럼 내 이름의 희생으로 남동생이 생겼느냐고?
그것도 아니다.열세 살 나이 차.
사춘기 극성수기 초입에 동생이 태어났다.그때, 첫 번째 기회가 왔다.이름을 바꿀 수 있는 기회.
학창 시절 이름으로 너무 많은 놀림을 받았기에 엄마는 동생 출생신고와 함께 내 이름도 호적에서 바꿔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중학교 1학년이 되던 그 시절,이름을 바꾸는 데는 돈이 들었고 수백만 원을 쓰고 싶지 않았던 엄마는 “집에서만 다른 이름으로 불러줄게”라는 타협안을 내놓았다.
그렇게 나는 집 안에서는 철학관에서 덤으로 지어온 이름으로,집 밖에서는 여전히 놀림받는 남자 이름으로 이중생활을 시작했다.어린 동생은 집으로 전화가 오면 “그런 사람 없어요”라며 끊어버렸다.그 아이는 클 때까지 언니가 밖에서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지 본명을 알지 못했다.
두 번째 기회는 청첩장을 만들 때였다.
“신부 이름이 왜 이래요?”
“이거 신랑 이름 아니에요?”
우편물이 오면
“남편분은 안 계세요?”라는 질문이 따라왔고,
이름을 불리는 자리마다 얼굴 확인은 늘 필수였다.
학부 시절, 친구들의 남자친구들이 군대로 떠났을 때는 나는 이상한 역할까지 맡게 됐다.
“지금 누구랑 있어?”
“남자야?”
나는 내 이름을 증명하기 위해 나라를 지키는 그들의 불쌍한 남자친구들에게
목소리로 “너의 여자친구는 바람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했다.
그때 이름을 바꿨어야 했다.
지금은 무료로,내가 불편하면 이름을 바꿀 수 있는 세상이 되었지만 여권이며 신분증이며
내 이름이 들어간 모든 것을 바꿀 생각을 하면 솔직히 귀찮다.그리고 무엇보다,딱히 마음에 드는 이름도 없다. 놀리는 사람도 없다.
세 번째 기회는…내가 직접 발로 차버렸다.
세상 처음,내 이름이 새겨진 책이 출간되었을 때.
그때 바꿨어야 했다.귀찮아도, 번거로워도.
책이 나오면 인생이 달라질 줄 알았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심금을 울리는 대작도 아니고,강의를 부를 전문성도 없는 책이었다.그래서인지 출간 이후 내 삶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출판사에 피해는 주기 싫어 블로그며 SNS에 혼자 홍보를 이어가고,매일 예스24 판매지수를 들여다본다.지수는 오늘도 성실하게 내려간다.
전국 도서관에는 얼마나 들어가 있을까 싶어 검색하던 날, 나는 다른 이유로 경악했다.
전국 여러 도서관에 내 이름의 마지막 글자가 틀려 있었다.
‘수’가 아니라 ‘구’로.
처음엔 몇 군데만 그런 줄 알았다.
민망해서 문의도 하지 않았다.
첫 책 낸 저자 티 내는 것 같아서.
그날 밤,침대에 누워 조심스럽게 전국 도서관 도서 현황을 다시 검색했다.
설마… 또?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전국팔도 곳곳에 틀린 내 이름이 있었다.
이건 어디서, 누가 입력하는 것인가.
담당자 당장 나와!
누구인가~ 누가 내 이름을 마음대로 바꾼 것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