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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Aug 25. 2021

아버님  저희 괜찮아요.

제주에 내려온 지 올 겨울이면 꼬박 5년이 되었다.   

사실 제주를 와야겠다 결심한 건 채 몇 달이 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한달살이도 살아보고 몇 번에 걸쳐 제주에 와서 집을 보고 제주에 살아도 될지 말지

신중하게 고민하고 제주행을 선택한다.  

하지만 우린 그러지 않았다.  



아이가 4살이었다.  더 이상 어머님이 아이를 봐주실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우리 부부의  원래 직업은 수학강사였다.   주로 고등학생들과 함께 하기에 주말은 늘 바빴고

출근은 늦었다.  아이를 키우는데 전혀 맞지 않은 전혀 다른 생활패턴의 소유자들이었다.




어머님이 아이를 더 이상 볼 수 없었기에 육아는 오롯이 우리 부부의 몫이 되었다. 둘 중 하나는 수업을 접고 아이를 봐야만 했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잠시 제주여행을 왔다.

"우리 그냥 제주에서 살까? "

그리고 알게 된 사장님과 제법 괜찮은 거래가 오갔다.   당시엔 부업으로 하던 파티룸 운영으로 제법 비슷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고 취미로 하던 블로그는 제법 괜찮은 마케팅 수단이 되었다.  


"우리 수업은 잠시 쉬고 우리 펜션 관리해볼까?  "




그리고 두 달 만에 학원을 접었다.  수업을 듣던 아이들에게 무책임한 인간이 된 것 같아 정말 미안했다.

"너희 망했어? "라는 따가운 눈총과 말들보다

믿고 따르던 녀석들을 두고 제주에 내려오는 것이 가장 괴로웠다.   하지만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기대와 설렘도 함께 공존했기에 제주 오면 꼭 연락하라는 말을 남기고 아이들과 헤어졌다.



그리고 시작된 청소.  

아이 출산하고 모유로 온 몸에 에너지가 빨리는 동안 성인이 되고 최저의 몸무게를 찍은 그때의 몸무게를

갱신했다.  지금은 남편과 말한다. 최고의 다이어트는 청소라고.



육체노동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우리 부부는 그 일을 시작하고 참 많이 싸웠다. 왜 제주에 내려와서 이 짓을 하고 있는가..이게 뭐하는 짓인가..  




멀쩡하게 운영하던 학원은 다 때려치우고

제주에 내려와 한다는 게 펜션 청소라니.

육체노동이라고는 해본적도 없는 아들부부에 걱정스러움을 가득 장착하신

세상 걱정으로 똘똘 뭉친 시부모님이 내려오셨다.  

그리고 청소하는 며느리의 뒷모습을 본 시아버지는 조용히 눈물을 훔치셨다.  




그렇게 제주에서 삶이 흐르고 흘렀다.

다이어트에 좋았던 펜션 청소는 몇 개월 후 깔끔하게 그만뒀다. 처음 이야기와 많이 달랐던 그 사장과는 깔끔하게 헤어졌다.  

천 원짜리에 옹졸한 그 양반에게 인센티브를 받고 손님 유치하는 행위는 놀부에게 복주머니를 달아주는 격이었다.





그리고 제주에 온 지 5년.

내 건물은 아니지만 우리 이름을 걸고 펜션을 오픈했다.

우리가 운영하니까 그때보다 두배, 세배 더 깔끔하게 더 열심히 청소한다.

하지만 그때처럼 우린 싸우지 않는다.



오늘도 수고했어~ 하며

집으로 돌아가 땀으로 범벅된 몸을 씻고 시원하게 맥주 한잔을 마시며 함께 연구한다.  학원에 수강생 유치를 위해 고민하던 그때의 밤처럼.  




새로 펜션을 오픈했고 시부모님이 내려오셨다.

"예쁘게 했네~ 고생했네~ 이제 열심히만 해라"

좋은 덕담으로 가득했던 아버님.  





며느리 화장실 청소하는 뒷모습에 또 한 번 눈물을 훔치셨다.



근데요 아빠(며느리는 아버님을 아빠라 부른다). 저희 이번엔 정말 괜찮아요.


익숙해지면 다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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