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시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그 생각을 어떻게 이런 정확한 단어와 멋진 표현을 써서 글로 풀어내지?" 어떤 작가의 글은 감탄을 동반한다. 감탄에는 부러움과 동경도 약간 섞여 있다. 책과 글, 읽는 것과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같은 감정에 휩싸이게 될 산문집이 나왔다. 민음사의 새 에세이 시리즈 '매일과 영원'의 첫 번째 책인 『일기시대』다. 저자 문보영은 시인이다. 또한 일기를 메일과 우편으로 직접 보내주는 '일기 딜리버리' 서비스로 독자와 소통해 온 '일기주의자'다. 그가 쓴 일기, 일기에 관한 일기, 일기론을 모았다.
'시인이 쓴 산문은 과연 시만큼 좋을까.' 의문과 의심은 금세 사라진다. 귀엽고 괴팍한 방 그림이 있는 도입부의 글들부터 예사롭지 않다. 선배들의 따귀 게임에 휘말린 초등학생 시절 기억을 되살린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에서 독자는 책에 홀리기 시작한다. 별명 대잔치가 펼쳐지는 친구 출연 에피소드 중 운전면허 교육 수난기는 특히 유쾌하다. 어이없는 결말로 이어진 스토킹 기록을 실은 소설 『아이 러브 딕』 리뷰는 뾰족하다. 이외에도 '기회의 다른 말은 번거로움', '성과를 내지 않는 취미'처럼 옮겨 적게 되는 문구가 많다.
또 하나 눈에 띄는 점. 손 조루, 먹뱉, 쌩까는, 손절, 존버, 발라 버리기, 조지기. 많은 괄호와 줄임표. 등단 작가의 책치고는 낯선 표현들이 자주 등장한다. 위화감이나 어색함은 없다. '일기니까 상관없음'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매끈하게 책 전체에 녹아든다. 몇몇 표현뿐 아니라 모든 문장의 감각 그리고 이야기를 쌓아가는 방식 역시 평이하지 않다. 좋은 의미로 올통볼통 통통 튄다. 더없이 소셜 미디어 적이면서, 기존 문학 범주 안에서의 완결성도 뛰어나다. 자유분방함, 다채로움, 진솔함. 젊은 독자들의 '문보영 팬클럽' 가입 이유다.
『일기시대』를 읽으면 세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하나, 문보영이 소설을 쓰면 좋겠다. 읽는 사람을 쥐락펴락하고 S극과 N극 사이를 왕복하는 에세이를 쓰는 작가의 소설은 얼마나 짜릿할까. 둘, 문보영이 소설을 쓰지 않으면 좋겠다. 꿈과 현실, 내 얘기와 남 얘기, 허구와 실재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실험과 시도를 하기 가장 좋은 장르는 에세이다. 셋, 일기처럼 좋은 글은 없다. 누구나 쓸 수 있다.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상관없다. "일기일 뿐인 일기, 다른 무엇이 되지 않아도 좋은 일기를 사랑한다." (서문 중)